의뢰인의 관점에서 설교하기
[의뢰인의 관점에서 설교하기]
어느 농촌에서 유명한 건축가에서 마을회관을 지어줄 것을 의뢰했습니다. 건축가는 정말 멋진 회관을 지어주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벽돌이 아닌 큰 통유리에, 마당은 파란 잔디를 깔아놓은 멋진 건물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건축가는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만들었다고 확신을 하였습니다.. 훗날 그 마을을 다시 찾은 건축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의 통유리는 검은 비닐로 덮여져 있었고, 마당은 돌이 깔려져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회관을 이용하는 농부들에게는 밖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 불편했고, 게다가 잔디를 바라볼 때마다 풀을 깎아야 하는 귀찮은 노동으로 보여졌던 것입니다. 농부들에게 잔디는 쉼이 아니라 고된 노동을 의미했습니다. 그 건축가는 자신의 관점에서는 훌륭한 건물을 세웠지만 의뢰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비효율적인 건물을 세우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 건축가가 의뢰인의 수준 탓을 하면서 자신이 완성한 '그림같은 집'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푸념하고 있다면 그 건축가는 과연 훌륭한 건축가일까요? 이와같이 어떤 설교자는 자신이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훌륭한 설교'를 했는데 교인들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교인들의 수준을 탓하고 있습니다. 물론 설교에 있어서 교인들이 '의뢰인'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설교자는 성육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사람들의 일상언어를 가지고 사람들의 삶의 상황에서 가르치시고 설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성육신하신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설교와 가르침에 있어서도 성육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설교가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진리를 비유 속에 감추셨습니다. 앞으로의 설교는 명쾌하게 드러내는 설교가 아니라 은밀하게 감추는 설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멋진 설교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거의 시간낭비와 같은 설교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신에게 설교를 의뢰한 분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설교회복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진리를 전하라고 의뢰한 분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교를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설교하는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도에 충실해야 충성된 증인의 설교가 가능할 것입니다. 청중이 얼마나 만족하고 즐거워하느냐보다는 설교를 부탁한 주님이 얼마나 만족하고 기뻐하실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설교자가 설교하는 본문의 의도에 얼마나 충실했느냐를 가지고 분간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읽고 설교하는데 본문의 의도와 상관없이 "딴소리"를 하는 것은 설교를 의뢰한 주님께 '죄'를 짓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의 설교를 듣게 되는 청중 역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기대하고 있으므로 의뢰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중의 필요와 상황에 설교자가 민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청중의 삶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상황과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감하는 것은 필수라고 하겠습니다. 흔히 설교준비를 위해 토요일은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서재에만 칩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청중과 거리가 멀어지고 설교가 뜬구름 잡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서재에서 연구하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은 평소에 하고 설교하기 전에는 오히려 청중의 가정에 심방하고 상담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설교준비일 수 있을 것입니다.
1. 의뢰인의 마음을 헤아리라.
2. 의뢰인과 공감하라.
3. 의뢰인의 언어를 사용하라.
4. 의뢰인의 삶의 자리에서 설교하라.
5. 의뢰인의 관점에서 다시 보라.
(계속)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