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클리닉

눈물의 설교자

등불지기 2013. 12. 23. 14:26

 

 

눈물에 관하여 묵상글을 올렸는데 설교와 설교자에 국한하여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눈물의 리더로서의 설교자

 

눈물의 설교자라는 표현은 단지 설교할 때 잘 울어야 한다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할 때 자주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그것이 설교에 매우 부정적이고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설교할 때 반드시 눈물을 보여야 할 필요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눈물의 설교자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이해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강단에서 자주 울먹거리는 모습을 연출하라는 뜻이 아니라 청중의 고통에 실제적이고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설교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섬기는 리더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면 자신이 이끌어야 할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고립되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 vs 교인, 혹은 리더 vs 추종자 혹은 설교자 vs 청중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도식화해버리기 쉽고 그런 관점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청중의 삶을 바라보면 판단하고 책망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데 사실 이것이 설교자에게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넓은 의미에서 설교자도 리더의 범주에 속하는데 리더로서 자신이 섬기고 이끌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고통에 직접 참여하려는 모습, 그러면서 그들의 아픔을 같이 느끼며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판단하려는 경향성을 주의하라

 

늘 설교하는 목사나 가르치는 선생이나 리더의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가르치려는 태도'가 몸에 배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역은 귀하고 거룩하지만 가르치려는 태도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선교지에서 선교사 vs. 현지인이라는 구도속에서 오래 사역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르치려는 태도가 몸에 배이게 되는데 이러한 태도는 선교에 아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합니다. 목사나 교사나 선교사나 넓은 의미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 항상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혹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계획하고 가르치고 주도하게 되는데 이런 일을 하는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판단하려는 경향성, MBTI의 용어를 빌면 J 성향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설교자로서 이 성향이 몸에 절로 배이는데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눈물'인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자신이 설교하는 교인들, 선교사로서 자신이 가르치고 훈련하는 현지인들의 삶을 바라보면 항상 지적하고 책망하려는 습성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을 눈물로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의 인성과 성품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로서 저는 아프리카 목회자들에게 신학과 성경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역을 하는데 종종 현지인들을 바라보며 분통이 터질 때가 한 두 번 아닙니다. 특히 목회학을 가르칠 때 책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잘 가르치고 잘 사역하는 것 같은데 제 마음에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현지인들의 아픔과 문제를 겉에서 바라보며 판단하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가슴아파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저는 다시금 한참 멀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판단하려는 경향은 리더로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배이는 것임을 알고 주의해야 합니다.

 

눈물의 설교준비

 

많은 목사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서재에 칩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하기 전날에는 설교준비를 해야 한다며 연락하거나 다른 심방일정을 잡지 말라고 아예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설교자가 설교하기 전 자신의 서재에 칩거하는 것이 오히려 설교를 듣게 되는 청중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킴으로써 설교의 접촉점을 잃어버리고 설교할 때 청중의 삶과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서재에서 멋진 설교 한 편을 작성할 수는 있겠으나 그 설교에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인가가 빠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입니다. 설교자는 항상 설교하면서 왜 그럴까 고민합니다. 답은 뻔합니다. 청중의 삶 속에 칩거하지 못하고 자신의 서재로 후퇴retreat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설교준비는 청중의 삶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아픔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하기 전에 서재로 후퇴하는 것보다 차라리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교인의 가정을 심방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같이 느끼며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올바른 설교준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자가 설교할 본문을 묵상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 겁니다. 자신이 전할 하나님을 자신이 전할 본문에서 만날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자신이 전할 복음에 설교자 자신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강력한 설교준비는 없을 것입니다. 복음의 감격으로 흘리는 눈물, 구원의 기쁨과 확신으로 인한 눈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눈물, 자신의 죄인됨에 가슴 아파하며 흘리는 눈물...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흘리는 이러한 눈물보다 더 강력한 준비가 또 있을까요?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눈물샘이 매말라 있지 않는지 항상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설교할 청중을 바라보며 그들의 고난과 아픔에 눈물로 참여해본 적이 언제인지..복음에 대해 감격해서 울어본 적이 언제인지..자신을 점검하며 자신을 쳐서 십자가 복음 앞에 먼저 자신을 복종시킬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의 설교자

 

저는 어릴적 교회에서 강단에서 설교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북받쳐서 눈물을 쏟아내시는 목사님을 자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목사님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목사와 설교자는 많아지는데 말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제 자신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설교자처럼 설교할 때 일부러 울먹거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강단에서 눈물을 보인다고 더 나은 설교자란 뜻이 결코 아니며 그렇지 못하다고 더 못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자신이 설교하는 청중의 아픔과 눈물에 얼마나 '공감'할 줄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과 아픔을 다 겪으심으로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설교자는 설교는 '공감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매우 논리적이며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설교자로서 '공감능력'이 부족한 설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정이 죽은 설교자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교인이나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교인의 가정을 심방할 때 긍휼의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무슨 죄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분석하려는 눈을 가진 설교자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설교에는 위로의 은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설교에는 책망과 정죄로 가득 차서 죄책감을 유발하는 메시지로 가득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설교가 '설교조' 내지 '훈계조' 혹은 '잔소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자신의 공감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바로 '눈물'입니다.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의 삶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얼마나 눈물을 흘려보았는지...청중을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처방하는 차가운 피를 가진 의사처럼 그저 직업으로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고통을 당하는 교인의 삶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면 공감능력을 상실한 설교자가 아닌지...감정이 죽어버린 설교자가 된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제게 눈물을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은혜와 긍휼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설교준비는 서재가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최고의 설교준비는 고난받는 청중의 삶속으로 깊숙히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교준비를 위해 서재로 후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설교를 듣게 될 청중을 심방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교인을 찾아보고 그의 가정에 그의 사업장에 찾아가서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강력한 설교준비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미국인 목사님은 설교준비를 할 때 자신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한다고 합니다. 강단에 오르기 직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가장 감격스럽고 가장 눈물겨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습관을 통해 자신의 감정emotion이 설교를 위한 에너지energy를 쏟아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추운 겨울날 자동차를 운전하기 전에 예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설교자는 설교하기 전에 자신의 눈물(공감능력)을 점검함으로써 최적의 설교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설교자들을 바라보며 눈물이 점점 매말라가는 것은 아닌지..

과연 나는 눈물로 설교원고를 적시고 있는지..

나의 공감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책망하고 판단하고 지시하는 것에만 익숙할 뿐 함께 울며 함께 가슴 아파하는 목사요 선교사인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던 예수님..

그리고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생각해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