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 오면서 말못할 어려움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정착하는 첫 해에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비자문제, 아이들 학교문제, 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관계적으로,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외출할 때와 운전할 때 강도와 도둑을 만나지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파송 전후 3년정도 긴장과 걱정과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증상이 심해졌고, 아내의 경우 원인 모를 고통과 호흡곤란증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여러 종류의 고난을 겪으면서 내성도 생기고, 좌충우돌하면서 대처하는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고난대처하기(1)-사람 몽둥이는 정말 아프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66:10-12) 군복무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천 리 행군도 아니었고 내무반 생활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관계싸움보다 더 힘든 것은 없지요..누군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느낄 때 생각해야 할 것은..1)지금은 내가 단련되어야 할 때이다 2)내 안에 제련되어야 할 불순물이 있다. 3)지금 나를 정련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4)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은 주께서 보낸 사자다. 5)제련도구인 사람은 원망하지 말자. 6)정한 기간이 있다. 7)내가 주님의 마음을 배울 때 끝날 것이다. 8)내가 풍부한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올 해도 승리하게 하소서!!
고난대처하기(2)-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Js.1:2)" 여기서 '온전한 기쁨' '순수한 기쁨'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쁨을 말합니다.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쁨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 모든 시련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시련을 통해 내게 이루려고 하시는 그분의 목적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지혜인데요. 힘든 것은 몰라서 힘든거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힘들 때 주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지혜, 하나님의 목적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 모든 시련들을 주님이 보시는 것처럼 보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고난대처하기(3)-나를 업그레이드하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1)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되는 통로이다. 2)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은 위로자로 쓰임받을 수 있다. 3)고통 당한 자만이 고통 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다. 4)위로자로 사용하시려고 고통을 허락하신다. 5)고난 받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라고 부르신다.(사40:1) 6)위로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까닭은 고난 속에 위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7)잘잘못을 분석하고 따지는 것보다 함께 공감하고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올해는 멋진 위로자가 됩시다!!
고난대처하기(4)-감정을 억누르지 말라.
감정(emotion)은 e + motion, 즉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는다는 뜻이지요..어려움 겪을 때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축복입니다. 행동에 옮길 에너지가 생기니까요. 반대로 힘들 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감정적으론 죽은 상태입니다. 즉, 힘들 때 분노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란 뜻입니다. 고난의 때에 감정적으로 다운되는 것은 안 좋습니다. 힘들 때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유교문화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양반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있는데요..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감정을 감추지요..그러면서 점점 신앙의 침체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적침체는 감정을 억누른 결과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난을 겪으면서 침체로 이어집니다.
고난대처하기(5)-감정이 축복인 이유
그럼 왜 그런 감정(emotion)이 축복일까요? 그런 감정이 생길 때 어떤 행동에 힘을 불어넣는 것일까요? 시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감정에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지요.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신앙으로 승화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모든 감정은 하나님을 찾게 하는 힘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란 없습니다. 모든 감정은 축복입니다.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행동과 긍정적인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고난을 대처하려면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우리에게 롤모델이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감정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불경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특히 고난의 때일수록 말입니다.
고난대처하기(6)-하나님 앞에 감정을 토하라.
다윗의 노래 중에 저주시편이 많습니다. 109편을 가만히 보세요. 이유없이 말로써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2,3절) 그럴 때 다윗은 같이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싸우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4절) 나는 잘해주었는데 그것을 악으로 갚는 사람에겐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그럴때 어떻게 기도했는지 6절부터 보세요. "...그이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참 무서운 기도지요?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다윗의 삶은 시므이나 므비보셋에게 했던 것 처럼 원수들의 자녀를 보살펴주었지요. 다윗처럼 미움과 분노를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사용하십시오.
고난대처하기(7)-감정에 정직해진다는 것의 의미
의외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믿고 있는 거짓말이 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감정은 나쁜 것이야..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야..하나님 앞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불경한 것이야..하나님은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 나를 싫어하실거야..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점잖게 나아가야 해..하나님은 고상한 감정을 좋아하실거야..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거나 부정해야 해..기쁨같은 긍정적인 감정만 좋아하실거야..그러나 사실은 부정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부정적인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감정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단지 하나님을 찾아가게 만드는 에너지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고난을 대처하는 것은 곧 자신의 감정을 바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고 배웁시다.
고난대처하기(8)-끝날 때가 반드시 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약1:9)" 여기서 낮은 형제란 재정결핍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자를 말하지요. 돈문제와 고난은 깊은 연관이 있고요. 종종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시기 위해 재정을 거두어 가시기도 하시고요. 재정결핍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한데요..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YWAM에 있었을 때 무보수로 전임사역을 할 때였는데 많은 간사들이 없는데로 입으론 풍성하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도 행복하게 보이고요. 가진 사람이 의외로 인색하고요..YWAM 간사들처럼 없는데도 플로잉은 정말 넘치게 잘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을 알기 때문이지요..재정의 광야에서 낙심할지 아님 자랑할지는 내가 믿음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난대처하기(9)-비교하지 말라, 경쟁하지 말라.
아프리카에서 남아공은 GNP가 제법 높은 6위인 나라인데요(약 5천불) 가나의 경우 10분의 1인 500불 정도입니다. 그런데 가나 흑인들은 자신들이 제일 잘 산다고 생각하고 있고요..남아공 흑인들은 제일 못산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 이유는 남아공이 지니계수(빈부격차율)가 세계 1위이기 때문이지요..나보다 잘 사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비교하니까 자신은 늘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것에 행복해하는 것입니다.(딤전6:7-10) 주님, 주님이 계셔서 전 아무 부족함이 없고요. 주님 때문에 오늘도 내 잔이 넘치고 있습니다!!
고난대처하기(10)-모든 고난에는 목적이 있다.
고난에 대해서 test, pain, trial, temptation, suffering, trouble, distress, affliction, tribulation 등의 단어가 있는데요..나름 고난을 분류해보았습니다. 1)피해야 할 나쁜 고난-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벧전4:15), 2)배움을 위한 기회의 고난-욕망이나 정서적 미숙함으로 오는 고난(약1:14) 3)인내를 위한 아름다운 고난-오해로 인한 애매한 고난(벧전2:20), 4)축복을 위한 연단의 고난(시66:10), 5)성령충만을 위한 최고 단계인 복된 고난, 영광의 고난(벧전4:14,16)-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예수님을 따르면 고난은 필수입니다.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고난대처하기(11)..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당하는 고난은 참 고통스럽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핍박'이라고 하지요. 다윗은 그런 고통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그 주변에 그를 오해하거나 시기하여 비난하고 까닭없는 말로 험담하고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로 인해 다윗은 큰 고통을 겪었지요. 다윗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집중하고 기도할 수 있었는데요..성경과 역사를 찬찬히 보면은 의외로 불신자들이 신자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신자를 핍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지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고요,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였고, 또 기독교인을 핍박했고요, 카톨릭이 개신교를 핍박했지요. 그러고보면 핍박은 한 교회 안에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교회 안에서 말로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 참 많습니다..
고난대처하기(12)-하나님의 의를 알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3) 교회 안에서 같은 교인을 핍박하는 사람들의 특징은요..1)하나님께 열심이 있지만 지식이 없는 자(롬10:2), 2)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는데 관심 많은 자, 3)자신의 열심을 하나님을 섬기는 증거로 굳게 믿는 자입니다..반대로 그에게 핍박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알고 있는 자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핍박을 받을 때 억울하고 속상하고 함께 싸우거나 혹은 피해서 도망가고 싶겠지만 그럴수록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의를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그것에 대한 견고한 지식만이 나를 오해하고 미워하고 시기하여 황당한 말로 상처주는 그 '명목상 신자'를 긍휼히 여기며 축복할 수 있으니까요..
고난대처하기(13)-억누르지 말고 풀어놓으라.
저는 힘들다 싶을 때 취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1)푹 잠을 잔다. 2)좋은 영화를 본다. 3)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한다. 4)가족과 여행을 한다. 5)믿고 신뢰할만한 멘토에게 찾아가 신앙상담을 받는다..어떤 것은 일시적이고요..나이가 들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몇 가지 못하지만 그래서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혼자 산책하면서 주님이 곁에 계시다고 여기고 쓰라린 감정을 다 토해놓는 겁니다. 우리 아이 키우면서 토할 때 잘한다면서 등을 두드려주는데요 내가 주님 앞에 쓴뿌리를 토해놓으면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십니다..다 토해놓으면 기분이 상쾌해집니다..그리고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고난대처하기(14)-관점이 바뀌면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
이 나라 백인들 중에 서핑(파도타기)를 좋아하는 사람 많습니다. 파도를 향해 헤엄친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그러나 파도를 타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신납니다. 여기 큰 은혜의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도에 저항하며 힘들게 나아가고 있구요..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파도를 타며 즐기고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겪는 고난이 자신의 완고함과 고집 때문에 생깁니다.(시32:9)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실은 자기생각이지요. 따라서 자신의 명철을 내려놓는 것이 고난을 이기는 첫 단추이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두번째 단추입니다.(잠3:5,6)
고난대처하기(15)-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라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예수님이 지상에 교회를 두신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고난을 함께 견디기 위해서이지요.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반드시 세상 속에서 고난 받는 자들이 위로를 받고 견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서도 외로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교회가 제 기능을 못하기에 생기는 현상인데요. 교회성장학에서 말하는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을 '고난 속에서의 위로'에서 찾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공동체 내에서 제일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입장에서 평가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모든 시대에 꼭 필요한 교회는 모든 위로의 아버지의 그 풍성한 위로를 마음껏 쏫아내는 그런 교회입니다
고난대처하기(16)-교회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교회성장이 아닌 "세상 속에서 고난을 이기는 교회"를 꿈꾸는 그런 목회자들이 한국과 이 아프리카땅에서 많이 일어나기를 소원해봅니다. 그런 교회의 5가지 특성을 손가락에 비유해서 나열해봅니다..thumb-중요성, index finger-방향성, middle finger-리더십, ring finger-약속, 신뢰성, little finger-약자에 대한 케어..제 손을 바라보면서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있어야 할 것들을 늘 마음에 새겨봅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복음의 중요성을 심어주고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건강한 리더십 아래 서로 신뢰하며 죄와 허물을 서로 고백할 때 누설치 않으며 교회 내 약한 자를 관심과 사랑으로 돌볼 때 그 교회는 고난을 이기는 교회로서 제 기능을 다할 것입니다..
고난대처하기(17)-기도를 부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5:16)" 현대교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상호 죄고백과 상호 치유기도일 것입니다..육체적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고난이지요. 예수님께서 특히 병자들을 위해 많은 치유사역을 행하셨는데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 성경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마8:17). 모든 종류의 고난은 누군가 함께 해주기에 극복되는 것입니다. 치유기도도 그런데요..기도하는 사람이 기도 받는 사람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역사하는 힘이 적지요..그래서 치유의 은사를 사모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요..아무튼 고난극복의 열쇠는 단 한 가지, sympathizing입니다(히4:15).
고난대처하기(18)-실컫 울라.
눈물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저희 집에 심방오셨는데 예배 중에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 흘리신 그 눈물로 저희 가정은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분이 있는 것은 축복이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동정의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것은 능력이지요. 고난을 통해 우리는 동정하는 법을 배우고요 매마른 눈물샘이 다시 터지게 되지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 언제나 compassion 후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마14:14) 가르침도 긍휼 뒤에 있었고요(막6;34) 죽은자도 눈물 뒤에 살아났지요(요11:35) 예수님 자신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고난을 이기셨구요(히5:7) 눈물의 힘은 고난 중에 기적을 낳는 또 하나의 열쇠입니다.
고난대처하기(19)-노래를 바꾸면 상황도 바꿀 수 있다.
찬양의 힘을 사용하라..전에도 언급했지만 노래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상황을 바꾸기도 합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들은 보통 슬픈 노래를 부르지요. 상황과 감정에 이끌리는 그런 노래는 누구나 부를 수 있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식의 노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슬플 때 기쁜 노래를, 고난의 때에 힘찬 노래를 부르는 것은 믿음 없이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그런 노래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매를 맞고 옥에 갖힌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가 힘찬 찬양으로 옥문을 열었듯 말입니다..그러니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는 식의 노래를 부르지 말고 상황과 감정을 재창조하는 노래를 불러보세요. 놀랍게도 노래는 내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사대로 내 운명이 결정지어집니다!!
고난대처하기(20)-피하지 말고 환영하라.
피할 수 없다면 환영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레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대 왕들이나 귀족들은 아들을 키울 때 혹독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자신의 기업을 맡기기 위해서였지요. 자식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품기만 하는 것은 결국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인데요. 고난은 최고의 스승입니다. 많은 고난 중에 왕이 된 다윗과 고난 없이 단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왕이 된 솔로몬의 차이는 그 종말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고난이 찾아오면 '아, 스승님이 오셨구나! 이번엔 무엇을 가르쳐주실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 100만불짜리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 지금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려 하십니까?" 배우려는 자세로 고난이란 이름의 스승을 환영하는 것, 그것이 고난에 대한 바른 태도이지요
·
고난대처하기(21)-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라.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63:1,2)" 다윗이 사울을 피해 유다 광야로 도망 다닐 때 지은 시편이지요. 다윗은 광야를 성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재미도 없고 황량한 곳을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sanctuary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야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우리는 광야생활을 환영할 수 있습니다. 이 성소에서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광야는 지성소입니다.Remove Post
고난대처하기(22)-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울 때이다.
"Because your love is better than life, my lips will glorify you.(Ps.63:3)" 그런데 다윗은 life 생존의 문제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love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인자'라고 번역되었는데요,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날개'라고 직역될 수 있지요. 그래서 다윗은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7)"고 노래합니다. 주님의 그 덮는 날개로써 뜨거운 광야에서 나를 덮어주시는 그 사랑,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주님만이 도와주시는 그 사랑을 경험한다면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리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날개는 광야에서만 보입니다.
고난대처하기(23)-100만불 짜리 질문
어려움을 만날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누구 잘못이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보통 사람의 경향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가장 빨리 해결하는 가장 좋은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 이것을 통해 제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입니다. 이 질문은 100만불 짜리 질문입니다.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어려운 사람도, 그 어떤 고통도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고난에는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나의 스승과도 같습니다. "어이쿠, 선생님, 저를 찾아오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제가 좀 철이 들도록 좀 가르쳐주세요." 해보십시오.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을 빨리 배울수록 고난이란 이름의 학교를 빨리 졸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