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퀀텀신학 책 특강

등불지기 2024. 10. 6. 18:57

 

퀀텀신학 책 특강

 

1.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이 책은 제가 올해 2월부터 약 6개월 간 작업한 끝에 드디어 이번주(24910) 출간이 된 책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제가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만 다른 각도에서 제가 어떻게 해서 이 책을 저술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대해서 먼저 말하고자 합니다.

 

(1) 처음 저는 이 책을 내기 위해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설교원고나 강의안 등을 충실하게 작성하고 작성한 것을 잘 저장해둡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으면서 묵상한 내용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느낀 점들, 심지어 제가 요리한 것에 관해서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입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데 가끔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는데 그럴 때 연구한 내용을 아내와 딸들에게 나누기도 하고 주변의 지인들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럴 때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조언을 받기도 하는데 조언을 받는다고 무조건 출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에 대한 권유를 받으면 한번쯤 이것이 책으로 나오면 우리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은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한번쯤 생각을 하게 됩니다. 2월부터 관련된 책을 읽고 조금씩 내 생각을 글로 써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조금씩 출판에 대한 권유가 있었는데 출판하기로 다짐하고 출판사와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5월 중순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 글을 한번 읽어보고 괜찮다고 판단하였는지 계약조건을 보내왔고 제가 보기에 가장 무난한 조건을 선택하여 출판을 하기로 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약 2 달에 걸쳐 출판사와 여러번 메일과 통화를 주고받으면서 글에 수정과 교정을 하면서 글을 보완하고 다듬었고, 8월 말에 최종 출판 승인을 하였고 9월 첫 주에 인쇄와 각 서점에 배포가 된 것입니다. 8월 마지막 금요일에 인쇄가 들어갔고, 92일부터 예약을 받고 95일에 주문자에게 배송하고 6일에 수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저는 제가 믿는 바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15년 동안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제가 한 일은 가난한 흑인 목회자들에게 성경과 신학을 무료로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선교사가 들어가지 못한 마을에 들어가서 클라스를 개척하게 되면 그곳에서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저 혼자서 신학을 가르치고 훈련하였습니다. 흑인들에게 가르친 과목은 성경해석학-묵상이론-신구약66권 개론-강해설교학-목회학-조직신학-교육학-행정학-역사신학-선교학-비교종교학-제자훈련학-영성학 등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시간은 3시간 강의를 약 80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을 듣습니다. 시골지역에는 제 영어강의를 부족어로 통역하는 통역사를 학생 중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강의하다보니 어느덧 제 안에 가르치면서 정리된 저만의 신학체계가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철수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가 가진 신학체계를 한번 정리하고 싶은 열망이 컸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것을 제 딸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첫 번째 동기였습니다.

 

(3) 저는 새로운 시각과 용어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2월부터 아주 우연한 계기로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제가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선 저의 성향이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제가 쓰는 글의 성격도 수필이나 시보다는 토론과 논쟁을 좋아하는 논설 또는 논문형 타입이었기 때문에 양자역학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이 다른 어떤 문학서나 철학서를 읽는 것보다 즐거웠습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복잡한 수학적 공식이나 증명은 아직도 제겐 어렵습니다만 그 양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제게는 좋아보였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원리들은 사실 단순하며 많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양자역학의 원리들을 이해하면서 저는 양자역학의 관점과 용어들을 가지고 제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고 가르쳐왔던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진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빛이 양자역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하면서 제 생각을 글로써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도와 관련하여 저는 과정신학, 창조신학, 카오스신학,자연신학, 그리고 창조에 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 이를테면 유신진화론과 문자주의적 창조론과의 개념 차이 등에 대해 새롭게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4) 저는 양자역학이라는 최첨단 문명의 영역에 복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제가 화가 났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불교에서도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설명하고 있었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성공주의 그룹이나 심지어 의학이나 심리학에서조차 양자역학을 적극 활용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교계와 신학교들을 보면 이러한 부분에 관하여 너무 미지근하거나 혹은 너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만물의 본질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학문의 세계를 신학이 배척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는 문화에 대해 개혁하고 선도해야 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단절되고 스스로 고립되어 고사되어 가는 모습처럼 보이는 교회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많은 지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방황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과학에 진지한 지성인 크리스챤들을 위해 교회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들은 너무 바빠서 이런 주제에 관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신학교 교수들은 교단의 신학 정체성에 눈치를 보느라 이 주제에 관하여 담론을 과감하게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신학도만이 이 주제로 담론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5) 저는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뿐 제가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또한 신학자들에게도 요구됩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라는 미덕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고 가르치고 있는 바가 진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지라도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과학자도 신학자도 교권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담론, 이야기 소재를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든지 반박하고 반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주장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6) 마지막으로 저는 저의 딸들에게 그리고 젊은 지성인 크리스챤들에게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돕는 것--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의 전부입니다. 얼마든지 다른,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이 각각 나름대로 진리를 말하는데 이것이 서로 모순된다면, 서로를 부인하게 된다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누구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바를 자신의 말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소리를 낼지라도 서로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저에게 좋은 신앙과 신학의 유산을 물려준 선배나 선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 제가 믿고 가르쳐왔던 기독교 신앙, 또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부심이 있다고 계속 낡은 가죽부대에 담아둘 수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소중하다고 여길수록 우리는 늘 새로운 언어로 진술함으로써 개혁하고 또 개혁해야 합니다. 복음은 철저히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복음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급진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2. 이 책을 읽는 방법

 

제가 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제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을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한 명 있을까 할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의 초고를 제일 먼저 제 딸들에게 읽어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은 뛰어넘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글을 읽는 것은 어떻게 보면 노동과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독서가 몸에 배인 분들이라면 이러한 정신노동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처음부터 순서대로 따라가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 독서량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이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저자의 의도를 기록한 서문과 목차를 읽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의도를 이해하고 목차를 본 다음 1부의 마지막 파트인 [양자역학의 특징 10가지]를 읽으면 됩니다. 그리고 3부로 건너뛰면 됩니다.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것이 양자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것인데 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이 모든 만물의 근본이라고 주장했고, 그 빛이 양자역학으로 어떤 성질이 있는지 말하고자 했습니다. 2부의 두번 째 파트인 [만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의 세계]를 읽거나 아니면 3부의 [혼돈][창조의 첫째 날] 부분만 읽고 넘어가면 됩니다. 3부에서 저는 특별히 진화론의 문제, 하나님 존재 증명에 관한 신학적 담론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평소 고민을 해봤던 분들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4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신체의 본질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첫째 파트인 [최초의 인간과 생명의 본질]만 읽고 5부로 건너뛰어가도 됩니다. 5부에서는 [구원][속죄의 원리]만 읽고 나머지 부분은 스킵해도 됩니다. 특히 속죄의 원리에서 파동의 원리를 [상쇄간섭]의 공명현상으로 설명하는 부분을 주목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6부에서는 [영화][생명책] 파트를 읽기를 추천합니다. 양자역학의 얽힘 원리가 생명책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마지막 7부에서는 모든 아티클을 다 읽을 필요는 없고 목차를 보고서 자신의 흥미를 끄는 한 두 가지 주제를 선택하여 읽으면 됩니다. 저는 [다양한 우주관][시간을 구하라] 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추천합니다.

 

이런 순서로 읽으면 360 페이지의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을 때 이전에 건너뛰었던 파트를 읽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서문과 목차를 읽은 다음 챕터별로 중요한 한 두 가지 아티클을 읽고 빨리 스킵하고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1부의 [양자역학의 역사, 그리고 문제점][현대 물리학의 3대 이론], 그리고 책의 마지막 연표를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 조직신학의 뼈대를 배우고 싶은 분이라면 3부에서 6부까지 읽으면 됩니다. 만약 자신은 책을 집중하면서 읽는 습관이 안 되었다고 판단이 된다면 7부에서 고려해야할 여러 주제들 중에 흥미를 끄는 주제를 골라 읽으면 됩니다. 만약 창조론과 진화론 같은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3부만 읽어도 될 것입니다.

 

이처럼 책을 읽을 때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읽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꼭 저자의 의도와 전체적인 목차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흐름을 파악하고 빨리 건너뛰면서 신속하게 읽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러한 독서방식을 호핑이라고 부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저의 책이 과학과 신앙 모두 관심이 있는 크리스챤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독교 복음의 진수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 퀀텀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기초 과학 상식

 

1. 자유전자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습니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고, 핵 주변에는 전자가 움직이는 궤도(orbit)가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 초등학생들도 아는 상식입니다. 원소 주기율표를 보면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주기율표에서 가로줄은 전자가 돌아다니는 궤도의 수를 말하고 있는 주기(period)이고, 세로줄은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가진다고 해서 족(family)이라고 불립니다. 예를 들어 수소원자와 헬륨원자는 한 개의 전자궤도를 가직 있지만 수소원자는 한 개의 전자를, 헬륨원자는 두 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궤도에서 한 개의 전자가 있을 때는 불안정하여 다른 원자와 결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자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궤도를 가진 원자들은 안정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원자들과 서로 만나서 결합하려는 의지가 약한 반면에, 외곽에 있는 전자가 혼자 있을 때는 다른 원자와 서로 공유결합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최외곽 궤도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전자를 자유전자라고 합니다. 전자는 모두 짝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궤도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자유전자는 떨어져서 다른 원자에 있는 궤도로 쉽게 옮겨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원자가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물질을 혀성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유전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기가 흐르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최외곽 궤도에 있는 전자가 낮은 궤도로 순간적인 도약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우리가 말하는 빛이라는 형태의 전자기파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원자가 빛 에너지 즉 전자기파를 받게 되면 에너지를 흡수하여 높은 궤도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되면 한 가지 놀라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전자는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나름대로 안정감을 누리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고 직장도 다니고 열심히 일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마치 자유전자처럼 사는 사람도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안정감을 원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로이 사고하면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습니다. 만약 자유전자가 없다면 전기도 흐르지 않고, 물질의 생성과 같은 화학반응도 생기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원자 내 궤도에 짝을 이루어 잘 안착되어 안정감을 누리며 살아가는 전자가 아니라 핵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최외곽 궤도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전자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퀀텀신학]이란 책을 내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저를 마치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프리카에서 15년 살다가 이제 막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이고 한국에 모든 것이 반가우면서도 낯설어서 다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볼 때 마치 제가 하나의 자유전자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안정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 주변에 혹시 자유전자와 같은 그런 영혼이 있습니까?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눈은 자유전자와 같은 영혼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창조하실 것입니다.

 

2. 파동, 중첩, 얽힘

 

모든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을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으로 만물을 이해할 수 있고 만물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이해하는 유익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면 만물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과 능력을 드러내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3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파동(wave)입니다.

 

모든 만물은 파동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정지하여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고 떨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첫 단계입니다.

 

둘째, 중첩(superposition)입니다.

 

모든 만물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중첩의 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만물은 파동으로 존재하는데 관찰행위를 통해 입자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양자중첩의 원리는 양자역학의 또 다른 핵심 원리입니다.

 

셋째, 얽힘(entanglement)입니다.

 

모든 만물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자 내 모든 소립자들은 다른 소립자들과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렇게 얽힌 관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얽힌 관계는 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시공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4. 퀀텀신학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퀀텀신학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축복은 단연코 부활의 소망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영화]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을 때였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사로 살 때였습니다.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도 함께 동행하였는데 한국에 들어가는 순간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고 아내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좁디좁은 원룸에서 아내는 딸과 생활해야 했고, 아프리카에 있는 저는 두 딸과 함께 8개월 동안 따로 지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한국과 달리 매우 무식한 방법으로 팬데믹을 통제했는데 저는 두 딸에게 하루 세 끼 한식을 요리해서 먹여야 했고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잠시 동네 마켓에 들르는 일 외에는 외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해오던 강의사역도 올스톱 되었습니다. 현지 사역자들과는 전화통화로만 안부를 물을 뿐이었습니다. 타운과 타운을 잇는 도로에는 군인과 경찰들이 가로막고 있었고 정부에서 발행한 통행증이 있어야만 그 길을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빵과 채소를 구하기 위해 동네 마켓을 방문할 때에는 한참 동안 줄을 서야만 했습니다. 저는 아침에는 인터넷을 통해 요리 공부를 하고 온라인으로 공부를 하는 두 딸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또 요리공부를 하고 밥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8개월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이때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감염되어 죽었다는 소식, 장례소식들 뿐이었습니다. 정말 사망의 그림자가 사방에 드리운 것을 절실히 느끼는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간절히 그리고 절실히 붙잡고 묵상한 것이 '부활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사망의 그림자가 다가와서 위협하는 순간마다 부활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면서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재이고,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도 실재이며, 나의 부활도 너무나 실재라는 사실입니다.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 중에 핵심입니다. 이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복음은 없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은 막연한 어떤 기대감이 아니라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날마다 경험하는 실재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겪는 그 어떤 사망에 대한 두려움도 압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활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메시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일어날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들과 부활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메시지 등 주님께서 제게 부활에 대한 많은 깨달음과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그 지독한 팬데믹 기간을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원천적인 동기이자 에너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퀀텀신학이라는 책은 그래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주님께서 제 마음 속에 부어주셨던 부활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이 책은 양자역학, 창조론과 우주론, 시간론 등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사망의 그림자에 눌려 질식할 것 같았던 시기에 주님께서 제 마음에 부어주셨던 '부활에 대한 소망'입니다. 360 페이지를 다 읽기에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영화]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만 읽으실 것을 제가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부활의 소망!! 그것은 오늘도 제가 이 유한한 육체 가운데 살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5. 퀀텀신학 책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퀀텀신학이란 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진수인 부활의 신앙을 확고히 붙잡으려는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창조, 만물, 죽음과 영생 그리고 부활의 본질은 양자역학의 원리로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교리의 골격을 이해하려는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15년간 사역하면서 흑인 목회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셋째, 주일학교 학생들과 대학생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가 되면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배웁니다. 이런 시기에 기독교 세계관을 바로 정립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목적으로 이 책이 사용되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넷째, 창조론과 진화론, 시간론, 다양한 우주론, UFO, 퀀텀시크릿과 같이 흥미로운 주제로 특강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도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설교에 관심이 많고 설교학에 관하여 평소 독서를 즐기는 목회자들이라면 설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으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설교는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설교하는 시간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설교자 자신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섯째, 20세기 현대 문명의 변천을 한 눈에 이해하기 위해 양자물리학과 함께 천체물리학의 연표를 실었습니다. 양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분야입니다. 21세기 문명의 현주소를 한 눈에 보기 원하는 분들이나 세상과 우주를 향한 시야를 넓히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이 모든 것을 다 담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일곱째, 교회의 복음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과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과 과학이 어떻게 서로 연관될 수 있는지 고민을 한다면, 혹은 하나님을 알고 싶으나 교회 밖에서 방황하는 지성인들이나 혹은 교회 안에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 혹은 기존의 교회에서 들어왔던 가르침에서 벗어나 좀 더 새로운 관점을 얻고 싶은 모든 고민하고 방황하는 별들에게 기꺼이 선물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가정예배나 혹은 교회 공동체의 예배 중에 [나의 신앙고백문]을 사도신경을 대신하여 적극 사용할 것을 추천합니다. 이것을 암송하기보다는 눈으로 보면서 함께 읽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수정 보완해서 업데이트해나감으로써 교회의 고유한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의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는 일에 부족한 저의 책을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6. 밤하늘의 별처럼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2:13-15)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님 앞에 설 때에 빌립보 교회에 관하여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만일 빌립보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이 얼마나 수고하였는지는 우리가 사도행전 16장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 바울은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겪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빌립보 교회가 어려움이 찾아와서 믿음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렇게 수고한 바울의 수고가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때 빌립보 교회에 관하여 자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을 직역하면 15, 16절을 이렇게 번역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불평과 원망하지 않고 하기를 바란다. 만일 여러분이 생명의 말씀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마치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삐뚤어지고 반역하는 이 세대 가운데서 아무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밤은 가로등이나 아파트, 그리고 자동차의 불빛, 매연과 미세먼지와 같은 빛 공해가 많아서 별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조금 벗어나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하지요. 만일 산꼭대기에 올라간다면 별들을 더 잘 보일 것입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많은 별들이 보입니다. 처음 별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별의 이름도 모르고 별들이 다 똑 같은 별처럼 보인답니다. 휴대폰에 천체관측 앱을 설치한 다음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러면 내가 보는 별이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별자리가 어떤 이름인지 친철하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런 앱의 도움이 없이 맨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제일 밝게 빛나는 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달이 가장 밝은 보름달이면 잘 안보이다가 그믐달이나 초승달이 되어 달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보통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아보라고 하면 누구나 찾아내는 별이 몇 개 있습니다. 보통 목성(쥬피터)과 토성(새턴)입니다. 도시의 밤하늘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목성과 토성을 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목성과 토성은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부릅니다. 밤하늘에 밝게 빛이 난다고 해서 다 별이 아닙니다. 별은 태양과 같이 스스로 수소핵융합을 하여 빛과 열을 내는 천체를 가리킵니다. 반면, 목성과 토성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행성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태양계에 있는 행성 중의 하나입니다. 태양계에서 별은 태양 하나뿐이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이 여럿 있습니다. 태양 가까이서부터 수성(머큐리), 금성(비너스), 지구(어스), 화성(마스), 목성(주피터), 토성(새턴), 천왕성(우라누스), 해왕성(넵튠) 이렇게 8개의 행성이 별인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전하면서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별이 아니고 별인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행성입니다. 태양계에서 목성과 토성이 가장 큰 행성이므로 우리 눈에는 가장 빛나는 별처럼 보이지만 만일 태양이 사라진다면 이런 행성은 즉시 어두워지고 말 것입니다. 태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목성과 토성이 반짝반짝 빛을 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매우 큰 빛을 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스컴에서 매우 유명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달려가서 싸인을 받으려고 하는 연예인이나 가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사라진다면 목성과 토성 같이 큰 빛을 내는 천체가 갑자기 빛을 잃고 캄캄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밝게 빛이 나니까 좋아하는데 사실 태양과 같이 자기 속에서 핵융합을 일으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행성과 같은 사람들은 늘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태양의 주변에 머물러 있기를 늘 원합니다. 자신의 주변에 자신에게 빛과 열을 전달해주는 태양이 없으면 늘 불안해하지요. 이렇게 행성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불평과 원망을 잘하는 것입니다. 늘 자기 자신에게 빛을 비추어줄 무엇인가를 찾고 있고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별은 그렇지 않습니다. 별은 자신에게 누군가 빛과 열을 비추어줄 무엇인가를 찾지 않습니다. 그 중심부에서 끊임없이 수소원자가 서로 핵융합을 일으켜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캄캄한 우주 어디에 두어도 거기서 더욱 밟게 빛을 냅니다. 별처럼 사는 사람은 광야나 사막 한 가운데 떨어뜨려 놓아도 그곳에서 스스로 빛을 내며 살아갑니다. 별처럼 사는 사람은 결코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아요. 불평하거나 원망할 틈이 없으니까요.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무엇인가를 외부에서 찾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매워줄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항상 불평하고 원망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별처럼 사는 사람은 자신의 깊은 곳에서 계속 폭발하는 어떤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말하기를 그것이 바로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우주 전역에 가득 차 있는 수소 원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수소원자는 저절로 모여서 핵융합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중력으로 수소 원자를 한 곳으로 모으실 때 수소 원자는 핵융합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별로서 태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붙들며 그것을 계속 묵상할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깨달음과 이해됨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둔 세상에 밝게 빛나는 별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제게 와서 묻습니다. “목사님, 저는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제 삶은 계속 실패와 넘어짐의 연속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반복적인 실수와 넘어짐을 하소연합니다. 또는 어떤 분들은 제게 와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합니다. 교회를 옮겨야 할지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반대로 큰 교회를 출석하며 유명한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를 들으면서 만족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신앙수준이 그 설교와 그 교회의 수준인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위대한 설교를 들으며 큰 감명을 받으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목성이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이 사실 태양의 존재 때문인데 마치 자신이 밝게 빛나는 별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별처럼 빛나는 삶은 자신에게 빛을 비추어주고 뜨거운 열을 제공해주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자신의 주변에 없다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했던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지 못한다고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주변에 항성이 있거나 없거나 개의치 않습니다. 별은 오로지 자신 안에 있는 수소 원자를 끊임없이 핵 융합시켜서 빛을 내는데 바쁠 뿐입니다. 별은 다른 별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별은 자신이 작다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별은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무엇인가가 없다고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수소원자를 열심히 태우느라 바쁠 뿐입니다. 우리가 아는 태양은 매 초마다 수소원자 6.5억톤을 핵융합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막강한 핵융합의 에너지는 수 만 년의 세월을 거쳐 태양의 표면으로 여행을 해서 올라오며, 태양의 표면에서 819초의 여행을 하여 지구 표면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빛과 열기로 인해 인간과 식물, 그리고 동물들이 에너지를 얻어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별처럼 빛나는 하나님 자녀의 삶은 그 내면의 중심부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그리고 매우 분주합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의존할 겨를이나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으며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고, 주변 환경에 대해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하며 부단히 그 속에서 빛과 열을 낼 뿐입니다.

 

저는 자신이 늘 반복적으로 넘어지고 실수한다고 여기며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매주일 예배 때마다 자신의 죄책감을 토로하며 회개 아닌 회개를 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밤하늘의 별처럼 삽니까?” “혹시 행성과 같이 자신에게 열과 빛을 제공해주는 어떤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면서 살지는 않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며,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하고 있습니까?” 별처럼 사는 삶은 간단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연구합니다. 성경을 붙들고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끊임없이 물으며 묵상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때로는 고된 노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소 원자들이 중력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모여서 핵융합을 일으키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그냥 읽는다고 저절로 내 속에서 폭발하지 않습니다. 붙들고 씨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는 노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밤하늘의 별처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된 삶의 비결입니다.

 

 

7. 퀀텀신학 책 요약 및 소회

 

2천년 동안 형성되어 온 기독교 신학과 100년 넘게 발달하여 학문적인 체계를 갖게 된 양자역학이 서로 어떻게 관계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용어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할 수는 없을까? 물질세계를 다루는 물리학과 형이상학을 다루는 신학이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원자의 세계와 움직임을 연구하는 가운데 과학자들은 원자의 움직임이 매우 '신비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기독교 신학과 연결되는 접촉점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의 대전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다. 창조주는 로고스를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다. 가장 먼저 창조된 피조물은 바로 빛이었다. 그 빛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었다. 과학자들이 빛의 본성에 관하여 연구하다가 양자역학이 시작하였다.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모든 만물이 곧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만물은 빛의 절대적인 속도를 뛰어넘지 않는 방식으로 떨림과 울림을 반복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다. 모든 만물은 빛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빛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어느 하나도 떨지 않는 것이 없다.

 

기독교 신학에 의하면 모든 만물은 그것을 만든 창조주의 영광과 신성과 능력을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만물이 원자로 되어 있으며 원자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양자역학은 창조주의 영광과 신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는 학문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양자역학을 통해서 우리는 만물이 어떤 방식으로 창조주의 영광과 신성을 드러내고 있는지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빛으로 만들어진 만물의 모습, 최초 인간의 신체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을 가리는 죄의 본질을 추측할 수 있고, 다시 비추임을 받는 구원의 길에 관해서도, 구원의 결과 어떻게 회복될 것이며 결국 만물이 어떻게 새롭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과 신학의 세계에 색채를 덧입히기 위해 쓰여졌다. 이전에는 흑백 TV를 보았다면 이제는 칼라 TV를 보는 것처럼 교회에서 가르쳐왔고 믿어왔던 것이 새로운 언어로 진술됨으로써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썼다. 과학과 신학의 두 눈을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놀라운 구원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미래에 대해 선명하게 그려보는 것, 이것이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고 열린 마음과 눈을 가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부분이다.

 

덤으로 우리는 우리가 읽는 성경과 우리가 믿는 신앙고백의 차원을 뛰어넘어 우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우리 주변의 상황과 실재를 어떻게 볼 것인지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의 시야가 바뀌면 우리의 삶이 바뀔 것이고 우리의 미래도 바뀔 것이다. 우리는 미답지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개척자의 심장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창조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을 깨닫게 됨으로써 얻는 경외감, 즐거움과 함께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될 놀라운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감, 설레임으로 가슴 뛰게 만들어줄 것이다. 영광스러운 이 소망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것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글쓴이의 필력이 모자란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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