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정신에 대해서 본 회퍼 목사님의 글을 중심으로
강의안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나는 섬김의 정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주님 앞에서 돌아보길 원합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섬김의 도
마귀는 늘 언제나 우리 곁에 다가와서 “누가 더 큰가?”라고 질문해댄다. 이러한 생각은 마귀로부터 오는데 공동체 안에 이러한 생각은 참된 교제와 봉사를 언제나 방해하는 주범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자신이 늘 옳다는 전제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남들과 싸우려고 한다. 자신은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은 항상 틀렸다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한번도 자신이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는다. 공동체 안에 다툼은 이러한 자기 의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야고보는 싸우는 정욕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죄인임을 잘 알기에 싸움을 피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본 회퍼 목사님은 [신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책에서 성도간의 섬김에 대해 7가지 원칙을 세웠다.
(1)혀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남을 섬길 수 있다.
혀를 훈련시키지 못하면 바르게 섬길 수 없다. 잘 섬기다가 말 한 마디 때문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 예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 성읍의 진흥은 의인의 축복에 달려 있다고 했다. 진정으로 섬기기 원한다면 먼저 혀를 단속할 줄 알아야 한다.
(2)온유함으로 섬겨야 한다.
섬기기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낮게,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지 않는 태도,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결에 맡기는 자세가 바로 온유함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긍휼을 한번이라도 체험했다면 남을 지배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는 줄을 참으로 안다면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옳다고 내세우거나 억지로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남을 섬기려고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낮출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죄 용서하심을 체험할 때 이미 자신의 지혜에 대한 신뢰를 끝장이 난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할 것이다. “서로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으면서 어찌 믿는다고 하리요”(요5:44)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어떤 모욕이나 상처와 비방에도, 알아주지 않음에도 투덜거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까지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만일 내 죄가 남의 죄에 비해서 적거나 작게 보인다면, 덜 구역질나 보인다면 나는 나의 죄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 죄가 가장 크고 무거운 것임을 안다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이 결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지 못할 것이다. 거짓된 겸손을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겸손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3)말없이 경청함으로 섬겨야 한다.
섬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경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게 되는 것같이 남의 말을 들어줌으로 남을 섬기며 사랑한다. 우리는 늘 남에게 무엇인가 말해주어야 하며 설교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경청하는 것보다 더 큰 봉사는 없다. 사람들은 자기 말에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다. 보이는 형제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을 경청하겠는가? 남이 할 말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진정한 사귐과 섬김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경청하지 못하는 것은 형제를 얕보는 것이고 무시하는 것이다. 형제를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반영해준다. 형제의 죄이 고백을 들어줄 때 어떻게 듣는가? 진지하게 듣는가/ 이것이 최대의 봉사이다.
(4)서로 도움으로 섬겨야 한다.
강도 만난 자를 보면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를 보는가? 자기 일이 중요하고 긴박하기 때문에 남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는가? 우리는 봉사를 함으로써 겸손을 훈련하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보면 도와주라. 그것이 겸손이다.
(5)서로 짐을 짊으로써 섬겨야 한다.
“서로 남의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갈6;2)고 했다. 남의 짐을 진다는 것은 서로 용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잘못을 무조건 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을 자유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남을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제가 넘어졌을 때 그것을 비방하거나 비웃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주는 것이다. 세워주는 것이다. 동역자가 무엇인가? 함께 멍에를 매는 것이다. 함께 멍에를 매는 것은 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함이지, 그가 해야 할 책임을 나 홀로 다 지는 것이 아니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조건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심판해야 하는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형제를 잡아주어야 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6)말씀으로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하고, 하나님의 말슴으로 격려하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섬김은 없다. 그러나 먼저 경청해야 하며, 먼저 도와주어야 하며, 먼저 짐을 져주어야 한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책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먼저 남에게 말씀을 하기 이전에 동일한 말씀을 가지고 자신에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을 책망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말씀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7)섬김의 권위를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섬김에 권위를 두셨다. 우리는 개인숭배를 혐오해야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함으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섬김에 치명적인 독소와 같다. 평신도(?0은 은연중에 카리스마적인 인물됨을 목자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목사도 그렇게 자신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권위는 너무나 초라하게 보인다. “너희 중에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에게 있다. 자신을 발판으로 제공하여 남이 자신을 밟고 일어서도록 하는 사람이 진정한 권위자이다. 공동체 안에 이러한 섬기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왜곡되고 잘못된 권위의식을 버려야 한다. 사람들을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려는 시도들을 조심해야 g나다. 우리 모임에는 뛰어난 인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peacemaker, kingmaker가 필요하다. 뛰어난 인물보다 섬기는 인물이 필요하다. 영성의 깊이는 이 섬김의 깊이에 결정된다.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는 가에 달려 있다. 말슴의 권위 아래 자신을 두는 사람이 진정한 권위자이다.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고 싸운 것은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철저히 긍휼과 자비가 필요한 죄인이란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은 죄인이란 사실을 안다면 형제를 섬길 수 있다. 용서받은 죄인만이 바른 섬김을 할 수 있다. 용서받은 죄인임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상 자기 의로움을 위해서 일할 것이다. 자기 영광을 구하면서 말이다. 섬김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자, 다음과 같은 시금석으로 자신의 현재 섬김이 참된 섬김인지 아닌지를 점검해보라. 사람들이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내 감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때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도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만 구하면서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가? 남이 나를 비방하고 오해할 때도 낙심하지 않고 섬김의 길을 가겠는가? 부디 섬김의 직분을 자기 의를 위한 방편으로 삼지 말기 바란다. 오직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혜에 비하면 나의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기억하라. 오직 용서받은 죄인만이 공동체를 섬길 자격이 있다. 왜냐면 그는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섬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이들로부터 칭찬과 감사를 기대하기보다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칭찬과 상급을 온전히 기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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