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와 묵상
설교자에게 묵상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은 기도와 묵상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친다는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 기도하는 것과 묵상하는 것입니다. 신학교수들은 기도하는 법과 묵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문에 대해 분석하고 여러 이론들을 비평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본문이 말하는 것을 듣고 경험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기도와 묵상은 개인이 힘써야 할 것으로 말할 뿐 실제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는 신학교수들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현대신학교육의 한계
신학교를 다닐 때는 다들 설교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을 때 자신이 배운 신학을 가지고 비평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설교를 잘 할 수 있다고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설교하면 많은 청중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상상하며 신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며 자신의 설교에 대해 비참함과 절망감을 뼈저리게 느끼기 전까지는 아직 설교를 배운 것도 아니며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설교는 설교에 대한 깊은 절망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 시작합니다.
신학교의 한계는 설교자의 한계
설교자에게 있어 특히 신학교육의 문제를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학교육의 한계가 바로 설교자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신학교에서 최고의 신학을 배우고 훈련받았다고 할지라도 기도와 묵상의 훈련은 언제나 개인적으로 몸부림치며 배우는 영역입니다. 만일 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기도와 묵상의 훈련을 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텐데요. 아프리카에서 목회자들을 키우는 신학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도와 묵상의 중요성입니다. 아무리 좋은 신학과 성경지식을 가르친다 할지라도 기도와 묵상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묵상은 참된 신학의 첫 단추
설교자에게 ‘기도훈련’과 ‘묵상훈련’은 모든 신학훈련의 첫 단추입니다. 기도와 묵상은 설교자의 설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토대로 건전하고 바른 신학이 뼈대를 형성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헌신 그리고 열정과 같은 성품과 함께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나타날 때 비로소 설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회중의 영혼을 울리는 설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묵상
묵상훈련은 설교자의 제일 훈련입니다. 아무리 성경본문을 많이 읽고 연구하고 분석하며 여러 신학서적을 읽을지라도 묵상이 아니면 그것은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묵상의 본질은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와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있는 깊은 것을 우리에게 열어보이시는데 그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계시의 영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려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설교자가 가져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열망하는 것,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는 것, 설교자가 추구해야 할 경건의 연습입니다.
신본주의적 설교의 본질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을 열어보이시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성품과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행하시는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가 묵상할 때나 기도할 때나 혹은 성경본문을 들여다볼 때나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성품과 원칙입니다. 설교의 본질이 다름 아니라 본문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을 잘 드러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을 드러내는 설교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본주의적 설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묵상의 네 가지 영역 (1) - 자연묵상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네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드신 자연만물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성품과 원칙)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창조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범죄하기 이전의 사람은 그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했고 그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사귐을 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묵상nature meditation입니다. 자연묵상은 원래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인간의 삶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묵상의 네 가지 영역 (2) - 말씀묵상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그 영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죽음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어 죽은 영을 살리고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말씀묵상word meditation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묵상함으로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금 바라보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죄인된 우리가 말씀묵상에서 자연묵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묵상의 네 가지 영역 (3) - 생활묵상
우리의 영적 눈이 밝아지게 되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계시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우리 삶속에 동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고 기르며 직장에 출근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모든 과정과 현장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세 번째 묵상의 영역인 생활묵상life meditation입니다. 설교자가 이 생활묵상을 잘 하고 있다면 인터넷이나 예화집에서 예화를 찾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삶속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청중과 함께 나누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강력한 예화는 없습니다.
묵상의 네 가지 영역 (4) - 성품묵상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영광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이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함이며, 하나님과 닮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the divine nature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 그래서 묵상의 네 가지 영역 중에서 마지막이자 궁극적인 묵상이 성품묵상character meditation입니다.
묵상은 설교자의 경건연습
설교자는 위의 네 가지 묵상의 영역에 대해 각각 배우고 연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설교자의 자기개발 혹은 경건의 훈련 중에서 위의 네 가지 묵상훈련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탁월한 신학을 배우는 것도, 탁월한 영성가에게서 배우는 것도, 탁월한 교회(?)에서 목회를 배우는 것도, 묵상훈련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배운다 할지라도 결국 자신이 기도하고 묵상하는 습관을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자가 자신의 기도습관, 묵상습관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책과 사람과 학교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너무 바빠서 묵상하지 못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보면 체계적으로 묵상훈련을 받은 분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고, 대부분 너무 바빠서 묵상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대부분 설교준비는 하루나 이틀 전에 시간을 내어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말씀을 소화시키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 미리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스펄젼에게 그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그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설교를 언제부터 준비합니까?” 스펄젼은 웃으면서 그 아내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 설교는 내 평생에 걸쳐 준비한 것이오.”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설교를 볼 때에 30년 동안 준비한 설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강력한 설교란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미리 준비하라
제가 설교자 훈련할 때 제안하고 가르치는 것이 있다면 ‘미리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연구를 위해 설교 전날에 시간을 내어 시간을 낸다면 언제 묵상한단 말입니까? 자신이 연구한 것을 언제 자신의 삶으로 녹여낸단 말입니까? 그러니 설교가 항상 개념만 전달하고 삶의 변화는 가져오지 않게 되고 늘 공허한 소리들로 가득하게 되며 공기만 진동시킬 뿐 영혼은 움직이지 못하는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연구는 몇 년 전에 미리 끝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속에 적용하고 또 적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살아보는 것입니다. 직접 진리의 맛을 보는 것입니다. 순종하라고 설교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순종하여 보는 것입니다. 진리를 여러번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가 어찌 설교자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자신이 한 설교를 그 다음날 잊어버리는 이유가 삶속에서가 아니라 책속에 준비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묵상을 거치지 못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묵상하지 않는다면
만일 설교자가 묵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설교자 자신도 자신의 설교를 잊을 것이고, 청중 역시 빛의 속도로 그 설교를 잊어버릴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통과하지 않은 설교는 공허하고 공기만 오염시킬 뿐입니다. 영혼을 울리는 설교는 깊은 묵상을 통과한 설교입니다. 최고의 설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듣고 ‘좋아요’라고 외쳤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직접 순종하고 적용하여 배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설교자가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였는데 어찌 청중이 그 설교에 성장할 것을 기대하겠습니까? 설교자가 묵상할 시간도 제대로 없는데 어찌 청중이 그 설교의 말씀에 묵상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습니까? 설교자가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의 청중은 새털처럼 가벼운 기독교의 자리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기독교의 가벼움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청중들이 하나둘 나타날 것입니다.
묵상하는 설교자
설교자의 묵상훈련은 그 어떤 세미나에서 훈련받는 것, 최고의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는 것, 최고의 스승 아래서 사사를 받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입니다. 묵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교자는 묵상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설교준비를 위해 서재로 가서는 안 됩니다. 서재에서의 연구는 몇 년 전에 이미 마쳐놓았어야 합니다. 설교준비를 위해 자연으로 가야하고, 삶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설교준비를 한다고 책방으로 들어가는 설교자가 아니라 깊은 묵상을 위해 청중의 삶의 자리에 깊이 들어가는 설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청중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설교자
이것은 본문연구를 소흘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설교자가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성품과 원칙)을 보고 감동하고 감격해 하며 그 영광에 사로잡히며 그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본문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본문이 자신에게 설교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본문이 설교의 객체가 아니라 설교의 주체가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본문에서 바라본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속에도 나타나고, 삶속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실제로 나를 변화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단계에 이를 때 비로소 설교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설교를 준비하려고 할 때에는 다시 본문을 연구하고 주석을 읽고 설교집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동안의 여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흐름으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묵상의 비결
“어떻게 하면 묵상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아프리카에서 목회자훈련을 할 때에 많은 현지인들이 묻는 질문입니다. 묵상에 필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묵상을 하려고 하면 더욱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것이 묵상입니다. 또한 열린 마음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때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도 없이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 안다는 마음, 교만한 마음, 그리고 온갖 편견에 사로잡힌 마음으로는 묵상이 결코 될 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깊은 사귐을 간절히 원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메모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억보다 기록을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려고 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여유를 잃지 말라
이 모든 것 중에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와 “시간”을 꼽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앞에서 스펄전 목사님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입니다.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가가 관건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바쁘고 분주한 삶속에는 묵상은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내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단 말입니까? 바쁜 현대인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데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십시오.”입니다. 설교준비를 한다고 본문연구에 시간을 들이지 마십시오. 본문연구는 최소한 몇 년 전에 했어야 합니다. 설교준비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묵상하고 적용해왔던 것을 어떻게 정리를 하고 어떤 흐름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은 어느 때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복잡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낸다는 것이 반드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둔 상태에서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는 그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내가 지금까지 해오던 그 일을 관조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묵상은 여행과 같다
묵상은 마치 여행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책이나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직접 여행하는 것입니다.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그 나라의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본문에 대한 연구가 전자와 같다면 묵상은 후자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 시간여행을 해야 합니다. 신학을 배우고 주석을 읽는 이유는 시간여행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여행을 할 때 혼자서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계시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령이 가이드가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가이드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가이드가 보여주려는 곳을 잘 보아야 합니다. 가이드가 들려주는 것을 잘 들어야 합니다. 묵상의 가이드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 그 아들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묵상을 잘 했다는 것은 이처럼 마치 여행을 잘 하고 돌아온 것과 같습니다. 책이나 영상을 보며 그 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설교자보다는 직접 보고 만져보고 경험한 설교가 훨씬 더 강력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통과한 설교
그러므로 설교자에게 묵상은 매우 중요한 경건의 연습입니다. 깊은 묵상이란 많은 책을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을 분석하고 깊이 연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깊은 묵상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영광에 사로잡히기까지 충분히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영광이 삶속에서 어떻게 계시되는지 충분히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삶속에 직접 적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까지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개월 몇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길이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내 뼈와 살과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오기까지 묵상하는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통과한 설교가 영혼을 울리고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통과한 설교는 머리에서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설교가 될 것이고 청중의 마음을 만질 것입니다.
묵상학교를 제안하며
저는 YWAM 대구지부에서 전임간사로 섬길 때 12주간에 걸쳐 [묵상학교]를 인도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3박 4일간 청년부 수련회를 [묵상수련회]로 인도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교회에서 묵상강의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12주간의 [묵상학교]를 지역교회 내에서 인도하면서 제가 확신한 것은 [묵상훈련]이야말로 모든 신학교 신학생들에게 매우 필요한 훈련이며, 지역교회 내에서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는데 매우 적절한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의 3-4주 동안에는 성경관을 정립하는데 집중합니다. 정경론, 성경의 권위, 성경연구방법론, 귀납법적 연구방법과 연역적인 연구방법, 그리고 묵상의 일반적인 내용과 중요성에 대해서 강의를 합니다. 묵상과 명상이 어떻게 다른지, 묵상과 성경공부가 어떻게 다른지, 묵상과 Q.T가 어떻게 다른지, 묵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묵상의 자리, 성령의 조명하심 등에 대해서 다룹니다. 좀 지루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 다음 8-9주 동안에는 묵상의 네 가지 영역별로 강의하고 또 소그룹으로 워크샵도 하고 또 과제도 제출하게 합니다. 여기서는 실습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습하게 하고 그리고 소그룹별로 나누고 또 발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함으로써 스스로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묵상훈련과 설교를 병행하는 방법
목회하는 청중들이 묵상을 체질화하도록 돕는 방법으로는 [묵상학교]를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설교자와 모든 청중이 함께 맥체인과 같은 [성경읽기표]나 혹은 [매일성경]과 같은 교재를 따르거나 혹은 따로 묵상표를 만들어서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정해준 순서를 따라 본문을 읽게 하고 그 주간의 본문에서 설교자는 설교본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일 오전은 묵상범위 안에서 설교를 하고, 주일 오후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묵상하면서 설교자는 청중과 본문에 대해 주중에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말씀상담과 심방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청중이 묵상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묵상]은 모든 묵상 중에서 기본입니다. 이와 같은 기본틀이 갖추어지면 그 다음으로 자연묵상을 위해 교회적으로 야유회를 떠날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성품묵상, 한 번은 생활묵상을 전 교인 앞에서 소그룹별로(구역이나 사랑방) 돌아가면서 나눌 수 있도록 권면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 일상화된다면 교회 공동체 전체가 [묵상하는 공동체]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지역교회에서 묵상학교를 열기 원하거나 제가 예전에 묵상학교를 인도할 때 사용한 강의안이 필요한 분은 제게 메일을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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