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설교자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설교에 청중들이 은혜를 받고 있고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청중은 설교자의 설교에 힘들어 하고 있고 심지어는 고문을 겪는 것처럼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설교자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설교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설교를 망설이게 될 것입니다. 설교자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또 있습니다. 설교자 자신은 청중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청중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 자신은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청중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또 듣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잔소리' 정도로 듣게 됩니다. 설교자보다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청중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어린아이처럼 여기는 설교자의 우월의식 때문에 청중은 설교시간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인식하는 설교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설교가 무엇입니까? 설교는 청중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청중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사람입니다. 청중이 설교에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설교를 들으러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가 좌절되면 청중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에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의 문제입니다. 자신은 청중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청중보다 지식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설 줄 알아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 서지 않은 채 강단에 서서 청중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강단의 현실입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도 바울은 그때 경험하게 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 오늘날 청중은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두려워하고 떠는 모습이 아니라 정반대의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우월감 속에서 말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하려는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하며, 청중들에게 호통치며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설교자는 그것이 말씀의 권위라고 착각합니다.
설교자가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세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 먼저 서야 합니다. 설교자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설교자는 두려워하게 되고 떨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서 절규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먼저 깨닫게 되기 때문에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붙들려고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설교자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면 자신이 먼저 십자가를 절실히 붙잡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설교자의 모습입니다. 설교자 자신이 먼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육신에 속한 모든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설교자만이 청중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고 또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습니다.
설교는 단지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이며,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참된 설교의 회복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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