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막 예 배
본문: 출25:16-22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야말로 우리의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장소나 형식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성경은 우리에게 예배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율법화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예배를 예배답게 하는 성경의 원리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배의 원리에 대해서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복음 4장에 나옵니다.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반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품 안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으로 반응하고, 또 진리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영으로 반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상상력을 총동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중에 아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여러분의 모습을 그려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여십시오. 환영하고 초청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모든 사랑과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진리대로 반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과 의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과 감정과 상태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를 구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방법에만 의지하려고 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예배의 방법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제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제물로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미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어린양과 그 흘린 피를 의지함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과 모습에 하나님께서 실망하실 것이란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자기 방법으로 예배하려고 했던 가인과 같은 것이며 진리로 예배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깊은 예배를 위해 예배의 모델을 확립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예배를 원한다면 성경적인 모델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의 성경적인 모델로서 ‘성막예배’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모델을 우리는 늘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예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율법과 성막이란 두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온 세계 열방에 드러내는 제사장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실제적으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성막으로 나아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보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을 만나주겠다고 그리고 친히 음성으로 말씀하여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바로 성막에서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만 있으면 충분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말씀해주시는 분이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따로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런 분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역을 너무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후에 성막을 주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하는 가운데서도 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매우 실제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실제적으로 말씀하시기 원하십니다. 만약 율법을 통해 충분히 말씀하셨다면 왜 또 다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으며 성막을 통해 “네게 명할 모든 일”에 대해서 말하겠다고 말씀하실 필요가 또 있었을까요? 이 둘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 중에 임하셔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내게 말씀하시는 그런 예배를 우리는 경험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하는 예배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의 중요한 특징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예배를 어떻게 드렸습니까? 먼저 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이 성막을 둘러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을 중심으로 행군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공동체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예배공동체여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 예배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과연 예배가 우리 삶의 중심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예배는 우리 삶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이자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모든 힘과 지혜를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지이며 결코 포도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12지파가 진을 치도록 명하신 까닭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이스라엘을 가장 강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로서 온 세계 열방을 변화시키는 복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해내도록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근대’라고 인식하기도 훨씬 전에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당신의 ‘군대’라고 인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전쟁을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그들의 중심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한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부족하여도 예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강력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삶의 핵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로서 세상은 변화시키는 자들로 서있게 될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복을 그들에게 나눠주는 복의 근원으로 서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 삶의 중심에 놓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한 것만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성막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가지고 성막으로 들어갔습니다. 백성은 뜰에까지, 제사장은 성소 안까지,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제한이 많은 까닭은 하늘의 성전이요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성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단번의 완벽한 제사를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렸을 때 성소에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게 된 것은 구약의 성막제사에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모든 장벽과 제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육체로 철폐가 된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소를 지나 지성소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4,5)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6)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직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찬양드리며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왜 구약의 성막을 오늘 우리가 드릴 예배의 모델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구약의 성막은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폐지되었지만 우리는 성막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원리와 방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려 왔다고 하셨고 또 작은 것이라고 작다고 여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성막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다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크게 성막에 들어가는 순서, 흐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면서 이것이 오늘 우리의 예배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단계는 성막의 뜰이고, 둘째 단계는 성소이고, 셋째 단계는 지성소인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성막에 들어가려면 제물을 가지고 출입문을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제물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흘리신 피인 것입니다. 출입문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길이 되심을 믿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할 때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는 원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갑니다. 이때 우리의 정서적인 반응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기쁨과 감사인 것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100:2)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는 무겁게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준비가 되었을 때는 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경배의 찬양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배를 시작할 때는 기쁨과 감사로 찬양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저는 ‘프레이즈’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성막의 뜰에 머물 때는 주로 프레이즈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막의 출입문을 지나면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이 있습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대신 희생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축하는 찬양을 올려드리며 주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는 오늘 우리 예배의 첫 단계로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초반부는 언제나 경축(celebration)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막예배의 두 번째 단계인 성소로 들어가 봅시다. 성소에는 세 가지 성물이 있었습니다. 좌편에 일곱 금촛대가 있고, 우편에 12개의 떡이 두 줄로 놓여있는 떡상이 있고, 전면에는 금향로가 있습니다. 성소 안에는 굉장히 밝은 빛이 비추이고 있으며 향기로운 향내가 충만한 곳입니다. 성소에서의 예배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먼저 일곱 금촛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내 심령이 밝아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향단은 우리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보다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성소에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써 심령이 밝아지는 것 즉 부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찬양은 서서히 ‘프레이즈’에서 ‘워십’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경배의 노래와 강력한 기도를 담은 경배의 노래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막 뜰에서는 우리가 춤추며 손뼉을 치며 마음껏 기쁨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었지만 성소 안에서는 강력한 기도와 말씀에 근거한 경배의 노래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의 예배인 것입니다. 이를 테면, “거룩하신 성령이여.” 혹은 “부흥”과 같은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제 성막예배의 마지막 단계인 지성소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지성소로 나아가려면 매우 두꺼운 휘장을 지나가야 합니다.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육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휘장을 지나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깨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의 찬양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겠지요. 그런 다음 우리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성소는 사방이 4.5m인데 성소와는 달리 칠흑같이 캄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외에 다른 것은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 외에는 다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한 가지 성물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언약궤인 것입니다. 이 궤를 덮는 뚜껑을 가리켜서 속죄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속죄소에 피가 뿌려집니다. 그래서 성소에는 향기로운 향내가 진동한 것과 달리,, 지성소에서는 피 냄새만 진동하는 것입니다. 지성소에서의 예배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냄새만 진동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친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 음성은 지성소 안에 있을 때 들리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해당하는 찬양은 프레이즈가 아닌 워십송, 경배송이라고 부릅니다. 이 노래의 특징은 하나님의 성품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직접 대면하는 찬양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혹은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라는 경배의 찬양이 이 때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원할 때 이와 같이 곡의 선정과 흐름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찬양인도자들이 콘티를 짤 때 온 종일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머무르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고민하며 기도하면서 예배의 흐름을 잘 짜야 합니다. 그리고 회중들은 예배의 흐름을 알고 잘 탈 줄 알아야 합니다. 성막예배의 모델은 우리가 찬양의 흐름을 결정할 때 많은 도움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언제 멈추어야 하고 언제 진행해야 하며 언제 춤추어야 하고 언제 엎드려야 하는지 언제 박수쳐야 하고 언제 깊이 묵상하면서 주 임재 안에 머물러야 하는지, 언제 고백해야 하며 언제 간구하며 언제 들어야 하는지 성막예배는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제공해줍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막예배의 모델을 마음깊이 새겨놓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예배가 더욱 하나님의 임재로 빛나게 될 것이고 깊이 있는 예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델이 없을 경우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될까요? 처음부터 무거운 분위기로 경배의 찬양을 하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기쁘게 찬송을 할 수도 없게 됩니다. 반면 성막 뜰에만 머물다가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쁘고 즐거운 찬송, 고백과 확신과 감사의 찬송으로 끝나버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왔다 갔다 반복하면서 혼란을 주는 경우도 생깁니다. 성소로 들어갔다가 성막 뜰에 나왔다가 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반복하다보면 예배가 힘이 들고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예배는 어떨까요?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온전한 예배’를 경험하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장차 행하실 일들을 듣게 되는 이 놀라운 예배를 경험하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많은 교회들이 성전 뜰에만 머물다가 끝나버리지 않나요? 아니면 성소에만 머물다가 끝나버리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출입문을 통과해서 성전 뜰에 머물러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지성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단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온전한 예배를 우리가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우리 예배의 목표이지만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서 우리의 갈 길과 할 일을 친히 지시하여 주십니다. 참 예배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그 음성을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는 그 회중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게 해줍니다. 예배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 예배는 예배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예배 시간 마지막에 우리가 세상으로 파송되어지는 의미의 찬양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각자 흩어져서 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예배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예배인 것입니다. 오늘 성막예배의 모델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새겨둡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누립시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삶의 능력을 얻읍시다. 예배 중심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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