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회복학교

회복(18)-영적전쟁

등불지기 2012. 3. 10. 19:57

 

 

묵상회복은 예배회복으로 예배회복은 중보기도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중보기도의 회복을 위해 우리는 영적전쟁의 실상에 대해 배워야 하겠습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영 적 전 쟁

 

본문: 계20:1-3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승리한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전쟁이란 말에 대해서 한 두 번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편견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이 주제를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영적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읽은 본문은 영적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20장 말씀은 신학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맥을 따라서 본다면 의외로 해석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계시록 19장에서 볼 수 있는 거룩한 환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군대들입니다. 그들은 승리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가시는 그리스도를 다만 따라갈 뿐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결과를 누릴 뿐입니다. 뒤따라가면서 전리품을 주워 담을 뿐입니다. 이러한 그림은 오늘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려줍니다. 반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따르지 않는 자들은 이미 정죄 당했으며 영적으로 ‘죽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참으로 이상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20장에 들어와서 교회의 승리에 대해 다시 한 번 확대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군대들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해서 하늘의 관점으로 조망해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복음의 최후의 원수인 용의 운명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용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첫째 옛 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장본인임을 말해줍니다. 용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함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었습니다. 이 용이 결박당했다는 말은 이제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미혹할 권세를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마귀란 말은 ‘미혹하는 자’란 뜻입니다. 마귀는 사람들과 관계된 용의 활동을 말합니다. 반면 세 번째로 사단이란 명칭은 ‘참소자’란 뜻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된 활동을 말합니다. 여기서 용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시기하는 자요, 사람들을 미혹하여 넘어지고 범죄하게 하는 자요, 하나님께 사람들의 죄를 늘 일러바쳐서 진노를 사게 만드는 참소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용의 실체를 믿습니다. 이 용이 심판을 받게 된다면 우리의 구원이 확실해질 것입니다. 왜냐면 다시 미혹 받을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용이 결박당했다고 했는데 그 시점이 과연 언제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 대해서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했습니다.(마12장) 그때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12:28,29)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사실과 바알세불은 이미 결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계시록 20장에서 천년 동안 용이 결박되었고, 성도들이 왕노릇 한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결박되었다’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 단어는 오늘 계시록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이 결박당했음을 이미 선포하신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10장에서 70인 전도단을 파송하신 후 그들이 기뻐하면서 돌아와서 귀신들이 항복하더라는 보고를 할 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18-2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성도들의 왕노릇 하는 것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또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후에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1,32)고 하셨습니다. 세상 임금은 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단을 내어 쫓는 일은 많은 사람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사단이 결박된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단이 결박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결박되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사단의 결박이 이미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4,15)고 했습니다. 여기서 ‘벗어버렸다’는 말은 ‘무장해제’란 뜻입니다. 즉, 결박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용이 결박된 시점을 구주께서 오셔서 구원의 일을 행하신 때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남은 의문점은 이것입니다. 용이 결박되었다면 지금도 사악한 영들이 활동하고 있는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야고보 선생님도 “마귀를 대적하라”(약4:7)라고 했고, 베드로 사도 역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도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진리의 양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여 있지만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다. 용은 이미 결박당했지만 아직 지옥불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용이 결박당했다고 해서 용이 모든 활동을 제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시온성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 중에 어두컴컴하고 좁은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길 좌우에 어렴풋하게 사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게다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크리스천이 두려워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그 사자는 묶여 있으니 좌우로 치우치지만 않으면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자세히 보니까 사자의 발이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그 좁은 길을 헤쳐서 전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용이 결박당했다고 해서 용의 모든 활동이 제한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용이 결박당하여 무저갱에 집어던져졌다면 지금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닌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비판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고 들었던 초대교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겪고 있었던 그들에게 붉은 용의 존재와 활동을 너무나 실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성경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붉은 용은 결박되었고 그 결정적인 권세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용은 권세를 빼앗기고 결박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 영생을 빼앗거나 할 힘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 2절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사단이나 귀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지나치게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그들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양 극단이 모두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귀신론으로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단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단이나 귀신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어떤 음모를 가지고 활동하는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 경향은 모두 사단에게 속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세기 당시 교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용의 실체는 너무나 실제적이었습니다. 사단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그들에게 너무나 실제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사단이 결박당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진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용이 결박되었다는 말처럼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은 또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가 적대적으로 날뛴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이미 결박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활동하는 것은 결정적인 부분에서 제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잘 말씀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롬5:17)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오늘 계시록 20장을 이해하는데 매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용이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서 왕노릇했지만 이제는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왕노릇하게 될 것이라고 미래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안에서 왕노릇 하는 것은 현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왕노릇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은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유대주의적 발상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부분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물질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빨간 망토를 걸치고 금관을 쓰고 호화 자동차를 굴리며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내리고 지배하는 세상적 왕노릇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복음을 믿는 자들 가운데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용이 결박당했다는 것도 물리적으로 이해할 성질이 아닙니다. 용이 결박당한 것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1)

여러분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하던 붉은 용이 결박당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이제 모든 사람을 정죄에 빠뜨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사자가 보입니까? 사단의 표효하는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이제 사단이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입니다. 이제 죄가 왕노릇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구주께서 오심으로 그들은 결박되었고 그들은 깊은 무저갱에 던져졌습니다! 용은 이제 더 이상 인생들 위에 왕노릇할 수 없습니다. 용은 교회가 전파하는 복음을 결코 가로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영생의 축복을 결코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비록 지상교회가 사단의 공작에 따라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순교자들을 배출하는 아픔을 당하고 있지만 사단은 결코 복음을 가로막을 수 없다. 교회는 핍박을 당하지만 복음은 항상 전진하고 승리할 것이다. 복음은 땅끝까지 이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복음의 소리를 듣고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얼마나 굉장한 소식입니까? 사단이 교회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 그리고 위대한 구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천하만국에 전파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용이 결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막16:15-18)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다”라고 하신 것은 성도들의 왕노릇과 원수 마귀가 무저갱에 결박당함을 잘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만약 용이 결박당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용이 결박당하지 않았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 임금이 쫓겨남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온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용이 결박당했기 때문에 복음은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는 것이며, 그 복음을 듣고 택한 백성들은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가 이미 결박당했다는 말은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무저갱에 던져졌는데 무시무시한 힘으로 활동하고 있는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질문하는 것은 일면만 보는 것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조폭 두목이 감옥에서 인터넷도 하고 자유롭게 감옥에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에 대해서 보도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죄수로 구금된 상태였지만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행28:30,31) 용이 결박되었다고 해서 아무런 활동도 못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활동이 제한되었는데 그것이 복음에 관한 부분입니다. 진리와 영생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라고 했습니다. 인봉했다는 말은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라 진리와 생명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권세를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년은 실제적인 기간이라기보다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통치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구주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계속 읽어본다면 기록된 숫자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해석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천년을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기간으로 보면 스스로 해석의 일관성을 어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천년기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으로서 교회의 시대, 복음전파의 시대, 그리고 은혜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 년 기 동안 용은 결코 만국을 미혹할 수 없도록 권세를 박탈당했습니다. 만국을 미혹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옛 뱀이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듯이 더 이상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면 이제 진리가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그리스도 안에서 활짝 열리게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이 풍성하게 흘러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용은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이 찬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반드시’라는 말은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의한 것을 의미합니다. 천년이 차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용이 풀려나서 만국을 미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진리가 가려지고 온 세상이 거짓과 속임수로 잠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게 된 모든 자들을 어린양의 혼인잔치 자리로 인도해 들이실 것입니다. 용이 풀려나서 극도의 분노로 만국을 미혹하여 모든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데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은 모두 복음을 받아들인 후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은 결코 미혹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국을 미혹하는데 성공한 용과 미혹당한 가련한 인생들은 일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중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던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원수들로 하여금 결코 변명할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신 다음에 그들을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사망에 집어던지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용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집어던지는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다음에야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복음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 두려워 떨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아무런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비록 용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활개를 치고 다닐지라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결박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됨으로 이미 결박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들의 거짓말은 이미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용은 결박되었고 더 이상 인생들 위에 왕노릇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인생들 가운데 진정으로 왕노릇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알고 경험하는 자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표효하는 소리에 겁먹지 마십시오. 담대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용은 결박되었습니다. 이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담대하게 이 생명의 복음을 천하 만민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 복음 안에서 역사하는 새 생명의 역사를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용은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고 다스릴 수가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용이 잠간 풀려나게 될 때가 있겠지만 그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세히 보십시오.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사자를 자세히 보십시오. 대충 보지 말고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사실은 결박당하여 있습니다. 피상적인 마음은 결코 이 사실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용의 현 상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작은 문제들을 만나도 크게 요동하며 엄살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벧전3:14) 우리를 사망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고서 마음대로 통치하던 붉은 용이 이제는 결박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정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코 없습니다.(롬8:1) 이제 용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다시 죄에 빠뜨릴 수도 없고, 욥이나 다윗에게 했던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 앞에 무고히 참소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 참소자는 무저갱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진정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아마 극심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코웃음 치며, 콧노래를 부르면서 유유자적하게 순례의 길을 전진해나갈 것입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엄살 피우지 마십시오. 소동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자를 피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원수의 결박된 모습을 보십시오. 담대하십시오. 적에게 결코 등을 보이지 마십시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다짐하십시오. 다짐만 하여도 적들은 벌벌 떨면서 도망가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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