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서울에서 청년부 사역을 할 때 연초에는 항상 금식수련회를 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성회복에 금식만큼 좋은 경건훈련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식을 시도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금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훈련받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금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제가 예전에 준비해두었던 강의안을 올려봅니다.
금식기도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제목:
당신은 금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re You Ready for Fasting for the Kingdom?)
I.서론(序論)
1. 익숙한 것: break+fast 2. 필요성: 왜 하필 금식인가? 3. 방향성: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4. 핵심정리: 금식=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의 길
II.본론(本論)
1.금식의 유래와 그 의미 2.금식의 성경적 근거 3.금식의 올바른 목적 4.금식의 종류 5.금식의 방법 6.금식의 절차 7.금식의 위험성과 주의사항 8.금식의 유익
III.결론(結論)
1.주님을 위해 2.주님의 나라를 위해 3.주님의 뜻 성취를 위해
Are You Ready?: 그대는 금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금식에 관한 성경구절들> <금식에 관한 경건도서들> |
I.서론(序論)
1. 익숙한 것: break+fast
금식기도(fasting prayer)란 말은 우리 귀에 낯선 말이 아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침’을 뜻하는 영어의 ‘breakfast'란 단어는 ’금식을 중단하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는 종종 TV에서 단식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살을 빼려고 금식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금식은 우리 생활 속에 친숙한 것이다. 그러나 금식기도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무지한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진정 금식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금식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금식기도는 강력한 성령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채 무작정 휘두르다가 시험에 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바로 알고 사용하면 금식기도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없다. 금식기도는 사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2. 필요성: 왜 하필 금식인가?
그래서 금식기도의 의미, 목적, 그리고 방법에 대해서 사전지식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냥 기도하면 되지, 굳이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 왜 우리가 금식하면서 기도할 필요가 있나요?” “금식이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금식기도는 구약에 속한 낡아빠진 가죽부대가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금식기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금식기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금식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금식기도는 어떤 효과가 있나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올바른 금식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등등이다. 이번에 강의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금식기도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들을 다루면서 올바른 금식기도에 대해 동기부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3. 방향성: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주제를 다루어 갈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 본론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금식기도에 대한 여러 가지 제반 질문들을 간략하게 답변하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계속 강조하고자 한다. 먼저, 1.금식의 의미 2.금식의 근거 3.금식의 목적 4.금식의 종류 5.금식의 방법 6.금식의 절차 7.금식의 위험성 8.금식의 유익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은 금식기도가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르게 회복되어야 할 성질임을 강조할 것이다. 금식기도는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강력한 적의 요새들을 부수는 영적 무기 일뿐만 아니라 세계복음화와 하나님의 부흥역사에 위대하게 일조 하고자 할 때 우리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 성령의 요구이자 요청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4. 핵심정리: 금식=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의 길
“우리의 금식 기도 기간은 진정 축제일이다. 하늘 문이 이날들처럼 넓게 열린 때가 없으며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보다 더 가까워지는 날들도 없다.”(C.H.Spurgeon)
II.본론(本論)
1.금식의 유래와 그 의미
(1)유래
기독교 금식(christianity fasting)은 하나님에 대한 향수, 그리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깊은 연애감정에 빠지면 식욕이 감퇴되게 마련이다. 금식은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는 갈망에서 시작된다. 즉,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의 식욕이 상실된다.
‘금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cha'은 자기부정의 실천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금식에 해당하는 네스테이아(nesteia)역시 자기 부정을 의미한다. 원래 일반적인 금식은 큰 좌절과 협박기간 동안 식욕이 저절로 상실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었다.(삼상1:7절, 왕상21:4절 참조) 이것이 발전하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슬픔을 알리는 의사소통의 일종으로 간주되기도 했다.(삼하3:35) 이것이 종교적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뉘우치는 의미로 유입되었다. 또한 금식은 인간의 슬픔과 애통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신앙적인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금식함으로써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형편을 호소하며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 국가를 대적들로부터 보호하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구하는 방편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공식적으로 가지는 금식은 7월 10일 대속죄일때이다. 이때 모든 백성들은 흰옷을 입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금식기도를 하였다. 바벨론 포로시대와 귀환한 이후 시대에는 1년에 네 차례씩(4,5,7,10월) 금식했다.(슥8:19절 참조) 참조로 4월 9일은 예루살렘 함락일이며(왕하25:3; 렘52:6절), 10월 10일은 예루살렘 공격이 시작되던 날이었다.(왕하25:1; 렘52:4절) 이외에도 다니엘, 에스더, 모르드게 등의 금식기도는 나라가 고통과 시련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 매다리며 회개하며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공적금식 이외에도 사적금식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40일간 금식했으며(출34:28), 선지자 엘리야가 40일간 금식했으며, 다니엘은 3주간을 금식했으며 한나는 자식 문제로 금식했으며(삼상1:7) 다윗왕 역시 아브넬이나 그 아들의 죽음을슬퍼하며 금식했다. 아합왕 역시 금식했으며 에스더는 3일간 금식하기도 했다.(부림절금식의 기원)
이렇듯 구약에서는 금식이 보편적이었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금식이 좀더 보편적으로 되기 시작했다. 특히 포로기 이후의 금식은 포로됨을 초래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다가올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대망하는 의미에서 자주 시행되기 시작했다. 중간시대의 금식습관은 메시야 대망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신약에 와서 폐지된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다: 구약의 금식은 신약에 와서 폐지되지 않았다. 대신 전혀 새롭게 되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금식이 생기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금식-화요일과 목요일 vs. 초대교회의 금식-수요일과 금요일) 예수님은 금식습관을 부정하신 적이 없으며 오히려 새포도주와 새부대를 통해 새로운 금식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금식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보면 금식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습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교의 정책입안이나 사람들을 세울 때 교회는 금식했다.(행13:1f.) 사도바울 역시 금식을 정기적으로 실천했다.(고전7:5; 고후6:5) 주후 315년에 태어난 살라미스의 감독 에피파니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주간의 제 4일과 6일의 금식을 세상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고 있음을 누가 모르는가?” 바리새인들이 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한 것과 구별하기 위해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했다. 이 금식은 초대교회에 보편적인 관행이었다. 특히 부활절 이전 금식은 더욱 보편적이었으며 세례 받기 전에 금식을 실천하였다.
수도원 운동에 있어 금식훈련은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금욕주의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초기 수도승들이나 16세기 이후 개혁자들과 부흥운동의 지도자들,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금식을 지지하고 열심히 실천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유명한 설교 “성난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죄인들”이란 설교를 하기 전에 22시간 동안 금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흥이 일어나기 직전에 금식기도가 활성화된 것이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이외에도 금식은 국가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금식을 선포한 정치가들이 있었다. 1620년 메이플라워를 출항시키기 전 날 청교도들은 금식했다. 1756년 2월 6일 금요일 영국이 나폴레옹에게 정복될 위협에 직면했을 때 영국은 이날을 금식기도의 날로 선포했다. 2차 세계 대전 때 1940년 9월 8일을 금식기도의 날로 선포했다. 1944년 6월 6일에도 금식기도가 요청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비슷한 금식기도날이 선포되기도 했다.
사실 금식습관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욤 키푸르), 모슬렘의 라마단 금식, 힌두교 바라만들의 금식, 등. 심지어 금식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마하트마 간디, 기타 데모자들) 또한 건강의 목적으로 일부러 금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금식 그 자체는 결코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의미
금식의 의미는 소극적으로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깊이 갈망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핍박? 포르노? 폭력? 아니다. 눅14:18-20을 보면 ‘밭’ ‘소’ ‘아내’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지 못한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어쩌면 그분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이다. (고기, 감자, 커피, 화초 가꾸기, 독서, 장식, 여행, 투자, 텔레비전, 비디오. 인터넷, e-mail, 쇼핑, 운동, 수집, 수다, 잡담, 조크, 자동차, 기타 취미, 등등) 그 자체로는 죄악이 아니지만 순수한 즐거움의 추구가 때론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금식보다는 텔레비전 시청을 금하는 것이 더 실질적인 금식이 될 수 있다. 금식은 단지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금식이란 그 참된 의미를 생각할 때 음식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금식은 그 자체로 보면 정당한 것을 어떤 특별한 영적 목적을 위해 금하는 것이다. 정상적이고 전적으로 정당한 것이지만 특정 상황에서 특별한 이유로 통제해야 하는 여러 육체적 기능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금식이다.”(Studies in the Sermon on the Mount, Vol.2) 어떤 사람에게는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더 필요한 금식일 수 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부인함으로써 실제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증거한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선물보다 그분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는 믿음이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증거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무엇보다 그분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만 그것이 삶 속에서 증거되기를 원하신다. 금식은 하나님의 선물(식물)보다 그분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다만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왜냐면 식욕은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정말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지는 ‘시험대’에 오른 다음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금식은 자기부인(self-denial)의 훈련이다. 방탕함과 방종함에 치우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자기의(自己義)로 치우치기 쉬운 위험성이 있다.
식욕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지시하고 주권을 행사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섬기게 된다. 믿음의 싸움이란 하나님만을 갈망하기 위해 ‘기타 욕심’을 거부해나가는 싸움이다. 최고의 갈망을 위해 저급의 갈망을 거부하는 싸움을 말한다.
기타 욕심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더 깊이 갈망하느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이 약한 이유는 그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기타 욕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식욕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영혼의 욕구가 표현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금식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영화롭게 되신다.(John Piper)
2.금식의 성경적 근거
(1)창조주 하나님의 의도
창1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식물을 주셨다. 하나님은 식물이 전혀 필요 없는 존재로 사람을 만드실 수도 있었는데도 왜 하나님은 ‘식물’과 ‘배고픔’을 만드셨을까? 그것은 “내가 곧 생명의 떡”(요6:35)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목마름’과 ‘갈증’을 느끼는 존재로 만드신 이유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음식문제로 죄를 범하게 되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금식하심으로써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셨다.
중요한 것은 “식물” 즉, “떡”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배고픔”과 “갈증”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리고 “금식”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음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서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즉, 우리가 먹을 때에는 천상의 양식인 생명의 떡의 상징을 맛보는 것이며, 우리가 금식할 때 우리는 ‘상징’ 위에 계시는 ‘실체’로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먹는 것의 위험은 선물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면 금식의 위험은 우리가 선물을 하찮게 여기며 자신의 의지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하나님의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금식함으로써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살고 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음식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광야 이스라엘을 주리게 하심으로써, 일부러 배고프게 만드심으로써 그들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의 여부를 시험하셨다.(신8:2) 예수님도 동일한 목적으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우리는 금식하면서 “주여, 제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삽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갈망으로 사단의 시험을 승리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다.
(3)금식의 성경적 근거: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사역에 들어가기 전에 40일간 금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금식하지 않고서도 사단의 시험을 잘 이겨내고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주님이 금식으로 시련을 이기시고 사명을 잘 수행하고자 하셨다면 연약한 우리는 더욱더 금식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대적을 기도와 금식함으로써 물리치셨다면 오늘 우리는 우리의 대적을 어떻게 물리쳐야 하겠는가?
(4)마태6:16-18
예수님은 은밀한 기도를 명령하신 것과 같이 은밀한 금식을 명하셨다. 예수님은 “만일 너희가 금식하면”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너희가 금식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의 금식습관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예수님은 금식을 당연한 것으로 이미 전제하신 가운데서 금식을 가르치고 계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금식은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것, 즉 금식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금식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금식은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의 인정을 바라보며 하는 금식은 차라지 하지 말라. 그러면 공동 금식은 하지 말라는 말씀인가? 아니다. 초대교회는 자주 공동금식을 했다.(사도행전을 참조하라.) 문제는 공개적으로 해야 하는가 은밀하게 해야 하는 가가 아니라 금식의 동기이다. 금식의 동기는 철저히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동기의 금식”은 결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금식은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것이다. 금식의 동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상 주심이어야 한다. 나의 금식 동기가 진실한 지 여부를 확인하기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라. “나는 과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 원하는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더 보고자 하는 갈망이 내 안에 있는가?” “나는 철저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원하는가?” “나는 주님을 더 알기 위해 세상적인 것들을 진정 끊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가?”
(5)마태9:14-17 (cf.눅7:33-35)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금식은 상실, 슬픔, 그리고 갈망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금식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금식해야 하는 “그 때”가 언제인가? 이 때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재림하실 때까지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 증거로서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는 자주 금식했었다. 즉, 신랑을 빼앗길 날은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을 말한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금식하며 그분을 갈망하며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어떤 갈망과 고통과 슬픔이 자리잡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않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예수님은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날에는 구약의 금식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금식해야 하는 것이다. 눅18:11,12절의 바리새인들이 하는 금식기도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써 말이다. 금식은 폐지된 것이 결코 아니다. 전혀 새로운 금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율법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과거 결정적인 승리에 근거하고 있는 금식이다. 구약의 유대인들과 달리 미래에 확실하게 다가올 주님의 영광을 보며 누리게 될 것이라는 소망에 근거하고 있는 금식이다. 구약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금식했지만 오늘날에는 이미 경험하고 있는 실재(=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만족과 때문에 더욱 더 그것을 갈망하며 금식하는 것이다. 단순한 극기훈련이 아니라 복음으로 이미 맛본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에 더욱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다.
(6)금식의 근거: 초대교회가 금식함(행13:1-4)
초대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했다. 안디옥교회는 단체금식의 모델을 보여준다. 나아가야 할 선교방향을 놓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금식하며 예배했다. 예배와 금식과 기도는 교회가 세계선교역사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방법임이 분명하다. 금식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성령의 도구이다.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금식하며 주를 섬겼다면 오늘 현대교회는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영적 각성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정기적인 금식성회를 선포하고 시행해야 하며 비공개적인 금식을 가르치고 또 장려해야 한다.
(7)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경건의 습관
청교도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금식하곤 했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을 추구했던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 선배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단순한 믿음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금식기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금식을 정기적으로 실천한 신앙의 선배들의 명단은 대충 열거해도 다음과 같다: 요한 웨슬레, 챨스 웨슬레, 마틴 루터, 존 칼빈, 존 낙스, 조나단 에드워즈, 매튜 핸리, 찰스 피니, 앤드류 머레이, 마틴 로이드존스, 외 다수가 있다. 당신도 이들과 같이 금식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간구하는 대열에 끼지 않겠는가?
3.금식의 올바른 목적
금식기도를 바르게 하려면 무엇보다 왜 무엇을 위해 금식기도를 할 것인가 하는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이 하는 금식기도는 영혼과 육체를 잘못된 길로 빠뜨리게 할 수 있다. 금식하기 전에 먼저 금식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부채질하고 그 불길을 타오르게 하며 우리의 영적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애들과 원수들과 요새들을 쳐부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며, 바라보며, 드러내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강력한 욕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세상의 식탁에 너무 오랫동안 안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사소한 것들로 가득차 있으며 위대한 그 무엇을 위한 자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위대한 생각이나 관심사에 그들이 열중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의 삶이 작은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임을 잘 알 수 있다”
금식하는 것은 음식의 선함을 부정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더 갈망하는 표현이다. 또한 금식하는 것은 자기의지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육신의 교만을 조장하는 행위이다. 오히려 성경적 금식은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심령,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표현하는 것이다. 금식은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우리가 기꺼이 성령의 다스리심 아래 복종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절제함으로써 하나님 안에 최고의 만족을 누리고자 금식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만족을 누릴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금식은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의 실천이 아니다. 금식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갈망의 실천이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목적이라면 기독교적인 금식이 되는 것이다.
금식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모한다고 결정적인 선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식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느냐이다. 금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기 위한 조치가 결코 아니다. 금식은 오히려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을 나의 만족의 근원으로 선포하며 하나님을 내가 누리고자 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외에 금식기도의 목적을 다음 10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다.
1.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마6:16-18; 슥7:5; 눅2:37; 행13:2)
2.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 위해, 더 큰 은총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tm8:21; 시69:10; 사58:3)
3.개인적인 죄와 실패들을 자백하고 회복하기 위해(삼상7:6; 느9:1,2)
4.교회,국가,세계의 죄악들에 대해 애통하기 위해(삼상7:6; 느9:1,2)
5.새로운 사명,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사명에 대한 은총을 구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헌신을 재확인하기 위해(마4:2)
6.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영적인 세력에 대항하고, 기도로써 인내함으로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삿20:26; 에스라)
7.회개하고, 하나님이 선포한 심판의 뜻을 바꾸기 위해(삼하12:16,22;왕상21:27-29;렘18:7,8;욜2:12-14;욘2:5,10)
8.사람들을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사58:6;마17:21;눅4:1)
9.하나님의 섭리에 지혜와 계시를 얻기 위해(사58:5,6,11;단9:3,21,22;행13:2,3)
10.성령이 역사하고 그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을위한 길을 열어주기 위해(마9:15;25:6;요14:3) --신약의 금식이 새로운 금식이 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표현이자 준비이기 때문이다. 세계사 가운데 예수님이 안 계신 것에 대한 애통의 표시이며 동시에 세상의 죄와 부패에 대한 애통의 표시이다.
4.금식의 종류
금식의 종류는 크게 목적과 정도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1)목적에 따른 분류
엘머 L. 타운즈는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의 금식의 유형을 열거하였다.
금식의 종류 |
목 적 |
요 절 |
배 경 |
제자금식 |
“흉악한 결박을 풀어준다”(사58:6)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죄의 중독에서 풀어주기 위해서 |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
귀신들린 아이를 쫓아낼 때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 |
에스라금식 |
“무거운 멍에를 끌러준다”(사58:6) 문제들을 해결시켜주되, 우리 자신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이 주와 함께 기쁨으로 동행하는 것을 가로막는 세력을 없애주도록 |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8:23) |
왕의 허락에도 불구하고 대적들의 방해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에스라는 금식함 |
사무엘금식 |
“압제받는 자들을 신체적, 영적으로 자유케 함”(사58:6) 부흥과 영혼구원을 위해 |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삼상7:6) |
사무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금식하게 하여 언약궤의 귀환을 축하하며 언약궤를 뺏긴 죄를 회개하도록 금식시킴 |
엘리야금식 |
“모든 멍에를 끌러준다”(사58:6) 우리 삶을 다스릴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를 극복하려고 |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 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왕상19:4f.) |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엘리야는 자연스럽게 금식하게 됨 |
과부금식 |
“우리의 양식을 주린 자들과 나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돌본다”(사58:7) |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17:16) |
사르밧과부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기적을 체험하게 됨 |
다니엘금식 |
“건강한 치료가 급속히 임할 것이라”(사58:8) 주께서 주시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1:8) |
하나님이 지켜주시는건강을 확증하기 위해 이교도 음식을 금함 |
에스더금식 |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악한 자에게서 보호받도록”(사58:8) |
“당신은...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f.) |
자기 백성을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보호를 호소하면서 금식함 |
세례요한금식 |
“당신의 의가 당신 앞에서 행하도록”(사58:8) 예수님에 대한 간증과 영향력이 다른 사람앞에서 높아지도록 하기 위해 |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디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눅1:15) |
세례요한은 나실인으로서 예수님을 보다 효과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금식함 |
사도바울금식 |
“하나님의 빛이 아침 빛과 같이 비취도록”(사58:8)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통찰과 인도하심을 간구함 |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행9:() |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자신의 생애를 살지에 대해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
(2)정도에 따른 분류
금식은 어느 정도로 음식을 절제하느냐에 따라서 다음의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정상적인 금식
일정 기간 동안 음료주(물이나 쥬스)만 마시며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하는 것이다. 이 금식기단은 하루, 사흘, 한 주, 한 달, 40일 간일 수 있다. 더 긴 금식기간은 위험할 수 있다.
2. 절대적인 금식
음식이나 물을 전혀 허용하지 않으므로 짧은 기간만 해야 한다. 모세는 이렇게 40일간 금식했다.(성경에서 40일간 금식한 사람은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었다.) 이 경우 초자연적인 개입이 없으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해야 한다. (물은 마시는 것이 좋다)
3. 부분금식
어떤 음식을 생략하거나 한정된 음식만 먹도록 계획이 짜여진 금식이다. 며칠간 야채만 먹는 것도 부분 금식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존 웨슬레는 빵(알곡100%)과 물만 먹으면서 여러 날 금식하기도 했다. 엘리야 역시 40일간 부분금식했다고 볼 수 있다. 세례요한과 다니엘 및 그의 친구들도 역시 부분금식하였다. 혈당량 결핍이나 특정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종류의 금식을 할 수 있다.
4. 상징적 금식
금식은 비단 음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소에 즐기는 오락이나 취미를 중단하는 것 역시 금식에 속한다.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지만 일상생활 속에 평소에 추구하던 일상적 즐거움을 중단하는 것이다. 모든 생활 부분에서 절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3) 금식의 기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얼마 동안 금식할 것인가는 기도로 준비하는 가운데 결정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그리고 장기간 금식할 경우에는 의사의 처방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음 중 한 가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하루
가장 흔한 금식이 하루로서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였다. 해가 진 후에는 음식을 먹었다.(삿20:26;삼상1:14,24; 삼하1:12; 3:35)
2. 하루 밤(단6:18)
3. 사흘 밤낮(에스더)
4. 7일(다윗)
5. 10일(초대교회)
6. 3주간(다니엘)
7. 40일(모세,엘리야,예수님)
8. 그 이상 장기금식(부분금식)
5.금식의 방법적 원리: 사58장(너희는 이렇게 금식하라)
(1)1-3절: 위선의 증상(의사의 고발)
종교적 열심히 포장되어 위선과 죄악을 드러내라. 야곱(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으신 것에 주목하라.) 집의 죄악이 무엇인가? 그들은 의로우며 순종하는 나라처럼 행동하며 스스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을 원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예배를 즐겨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식 그 자체를 사랑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감동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분위기에 취해서 스스로 위선에 빠진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고, 하나님의 길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께 의로운 판단을 구했으며,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원했고, 금식하며 자신을 낮추고자 했지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2)4-5절: 원인 분석(의사의 진단)
하나님은 금식과 삶이 서로 분리되고 있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신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대산 다른 쾌락을 추구하며, 일꾼들을 부리며, 다투며, 심지어 주먹으로 치기까지 한다. 금식행위가 윤리적인 삶과 같이 가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다. 매일의 죄악된 삶을 바꾸지 않은 채 금식해보았자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으로 더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은 채 금식하는 것은 오히려 더 가증스럽다. (컴퓨터, 신문, 전자오락, 텔레비전, 농담, 운동, 다툼, 노동, 부역, 방종, 기타 무절제한 삶) 금식하는 것의 진정한 목적은 육체가 아니라 죄를 굶기는 것이다.
(3)6-7, 9절하반절, 13절: 대책 마련(의사의 처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자신을 주리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덜 배고프게 하고 덜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줌으로써 우리는 진정으로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된다. 금식은 죄에 대한 교묘한 위장이 아니라 직접적인 공격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을 돕고 먹이는 생활방식이 진정한 ‘금식’이다. 하나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위대한 치유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10가지 처방을 요약해보자.
(1)사람을 자유하게 하라. 멍에를 풀어주라.
(2)주린자들을 먹여주라. 다른 사람들의 결핍을 채워주라.
(3)집없는 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해주라. 홈리스(homeless)에 대한 실제적인 강구책을 마련함
(4)헐벗은 자를 입히라
(5)동정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라.
(6)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손가락질이나 말을 삼가라.
(7)음식뿐만 아니라 자신을 주라.(10절): 단순한 구제가 아닌 신실한 관계를 의미한다.
(8)기타 오락을 절제하라(13절)
(9)주일을 존귀한 날로 여기라(13절)
(10)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라(13절)
(4)8-9절 상반절, 10절하반절-12절, 14절: 축복의 약속들(치료의 효과들)
(1)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다(8절) = 어둠이 물러가리라는 뜻
(2)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다.(8절)
(3)네 의가 앞서 갈 것이며 여호와의 영광이 뒤에 호위할 것이다.(8절)
(4)네가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겠다.(9절)
(5)내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물댄 동산과 마르지 않는 샘같이 영혼을 만족시키여 육체를 강건하게 할 것이다.(11절)
(6)오래동안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으리라(12절)
(7)무더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일컫음 받을 것이다.(12절)
(8)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14절)
(9)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릴 것이다.(14절)
(10)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를 것이다.(14절)
6.금식의 절차
그러면 이제 금식의 원리를 배웠다면 실제적으로 금식기도는 어떤 절차에 의해서 시작하고 어떤 태도로 금식기간을 보내야 하며 금식 후에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금식에 관한 실제적이고도 예비적인 지식이 없이 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숙지해야 할 부분이다.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금식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동기와 태도로 금식에 임하는 가가 사실 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다.)
(1)먼저, 금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
보통 금식은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마음은 있으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된다. 올바른 목적을 정하고 올바른 절차를 알고 시작하면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 힘들지 않게 된다.
(2)금식기도 하고자 하는 동기를 점검하고 금욕을 작정하라.
왜 당신은 금식하고자 하는가? 영적으로 새롭게 되기 위해,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병고침을 받기 위해, 문제해결을 위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섬김의 능력을 구하기 위해, 주신 사명을 효과적으로 잘 감당하기 위해, 당신의 금식 이유와 목표와 목적이 분명하면 할수록 금식 중 여러 가지 유혹과 힘든 것들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3)내게 맞는 금식기도기간을 정하라.
처음부터 무리하게 장기간의 금식을 결정하지 않도록 한다. 처음 하는 경우 3일이 가장 적당하다. 어느 종류의, 얼마 동안 금식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가급적이면 기도하여 구체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3일에서 7일간의 금식은 가볍게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무리없이 금식할 수 있는 기간이다.
(4)금식전: 절제와 절식으로 금식기도기간을 준비하라.
아무런 준비 없이 금식에 곧바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을 매우 힘들게 만드는 처사이다. 먼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영적으로 기도함으로써 금식을 준비하여야 한다. 동기를 점검하면서 회개기도와 함께 기도제목을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동시에 육체적으로 절식하면서 금식을 준비해야 한다.
1.먼저 예비금식기를 가지라. 즉, 미리부터 식사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금식하기 전에 많이 먹어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2.예비금식기 동안 구충제나 설사제를 미리 복용하여 내장을 깨끗하게 한다면 더욱 좋다.
3.금식의 목적과 기도제목을 분명히 기록하라. 예비금식기 동안에도 기도해야만 한다.
4.다음의 항목을 가지고 스스로 점검해보도록 한다.
-분명한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가?
-금식기도할 만큼 절박한 기도제목이 내게 무엇인가?
-결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만의 유혹을 뿌리쳤는가? 내 정성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려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아는 것/알게 하는 것이 목표인가?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가?
-금식자체가 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금식 그 자체가 아니라 전반적인 삶에 있어 절제하고자 결심하는가?
-금식 기간 동안 은밀하게 기도할 시간을 정했는가?
-나 혹은 공동체/민족의 속박/결박/흉악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금식기도 기간 중에 기도계획을 어떻게 세웠는가?
(5)금식 중
1.물을 꼭 마시라. 끓인 물보다는 차가운 냉수면 더 좋다. 인공음료는 피하라. 하루에 보통 컵으로 7잔 이상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다.
2.더운물로 목욕하지 말라. 냉수나 물수건으로 닦는 것이 좋다.
3.양치를 자주 하도록 하라.
4.과도한 운동이나 과도한 작업이나 과도한 독서는 피하라. 가볍게 걷거나 성경을 읽는 것은 좋다. 금식 중에 특정 성경을 읽는 것은 좋다.
5.혼자 하기 힘든 초보자일 경우 함께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는 것이 더 힘이 된다.
6.금식기도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회개의 시간을 꼭 가지도록 하라.
7.금식기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 시간표를 짜는 것이 좋다. ※예; 사흘금식을 할 때 첫째 날을 회개의 날, 둘째 날을 간구의 날, 셋째 날을 믿음과 찬양의 날로 정하는 것이 좋다. 자기 자신을 깊이 낮추며 하나님을 겸손히 바라보는 것이 금식을 잘 견디는 힘이다.
8.무엇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계속 인식하면서 금식에 임해야 한다.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 목전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연약성을 고백하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9.말과 행동을 자제하며 천천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온 몸으로 ‘겸손’을 실천하라.
10.성경암송카드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암송하면 도움이 된다.
(6)금식 후
1.금식기도 기간만큼 보호식을 하도록 하라.
2.금식 후 굳은 음식을 먹지말고 절대 과식하지 말라.
3.김칫국물이나 동치미국물을 마시고 아침저녁으로 묽은 미음을 한 컵 정도 마시도록 한다.
4.사과즙을 미음에 반반 섞어 마셔도 좋고 쌀가루에 읽은 호박을 넣어 끓인 죽이나 콩나물 죽을 먹는 것이 좋다.
5.둘째 날 보호식에는 미음을 조금 걸죽하게 하여 마시도록 하며, 셋째 날에는 죽 한 그릇에 토마토나 사과 한 조각 혹은 복숭아 통조림 한 조각을 먹는다. 이후에는 조금씩 식사량을 늘려간다.
6.금식 후 피해야 할 음식으로는 자장면, 매운 음식, 짠 음식, 기름기 있는 음식, 등이다.
7.사단은 계속 시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눅4:13절 참조)
8.금식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9.이사야58장에 있는 대로 빈핍한 자들을 돌아보는 실천적 삶이 병행 혹은 뒤따라야 한다.
10.믿음으로 감사를 표현하며, 이루어주신 줄로 믿으며, 찬송하며 적극적인 태도로 산다.
7.금식의 위험성과 잘못된 금식
(1)금식하면 자동적으로 선하게 된다?
아니다. 골2:20-22절을 보라.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2:23) 금식한다고 자동적으로 영적이거나 선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금식은 사람을 교만하거나 자기자랑으로 빠지게 만들 수 있다.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롬14:3-6)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먹으며, 또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먹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2)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방법이지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다.
금식하면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선적인 위험성과 함께 금식을 절대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에 적용하고자 하는 획일적인 위험성에 빠져서는 안된다. 올바른 금식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는 것이다.
(3)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라.
금식은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방법이 아니다. 올바른 금식은 결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쓰여져서는 안된다. 영혼을 사랑하는 중보의 심정으로 금식할 때 금식은 잘못된 길로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다. 영적 각성과 진정한 부흥을 위해 정기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금식하라.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금식하라. “하나님, 주의 영광이 주의 교회에 충만하며, 세상에 가득하기를 진정 갈망합니다”라고 기도하라.
(4)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금식을 주의하라.
칭찬을 목표로 하는 금식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들의 ‘인정해줌’과 ‘칭찬해줌’을 바라는 금식은 영적 간음의 죄다. 잘못된 금식은 하나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을 열렬히 구하는 것이다. 금식의 동기를 잘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지상에서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금식해야 한다. 하나님이 갚으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상은 세상의 부귀영화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영광과 능력과 주권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자신만을 갈망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 금식해야 한다. 올바른 금식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갈망하는 지 하나님만이 보시도록 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금식의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고통과 슬픔에서 시작해서 그분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그분만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금식에 있어 가장 큰 유혹은 무엇보다 “내가 누구보다 더 오래 동안 금식해야 하겠다”라고 욕심을 내는 생각이다. 그래서 자기 체력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금식을 강행한다면 오히려 육체와 신앙에 많은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금식기도를 원한다면 자기의 형편을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보다 금식기도를 왜, 무엇을 위해 해야만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하나님께 부르짖는 금식기도가 되게 하라.
금식의 동기로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 되어야 한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오셔서 해결해야 할 의의 문제로 말미암아 부르짖어야 한다. 금식은 의의 문제로 고통하고 고민하는 데서 시작되는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초대교회는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마라나타)라고 밤낮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주님의 재림과 주님의 통치의 현실화를 위해 우리는 금식하며 부르짖어야 한다. 자, 물어보자.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나타나심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우리는 성령의 부어주심(=부흥)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며 원하고 있는가?”
8.금식의 유익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올바로 금식기도하는 경우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영적 유익들이 뒤따라온다.
(1)하나님의 구원능력을 체험함
기독교는 체험적 종교이면서 동시에 이성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과 기도를 균형있게 강조해야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특별히 기독교 복음이란 하나님의 구원능력을 현재 삶 속에서 강하게 체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금식기도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능력을 강하게 체험하는 중요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2)하나님에 대한 민감한 영성의 유지함
금식의 유익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시하는 영성을 예민하게 유지하도록 해준다. 왜냐면 올바른 금식은 하나님 안에서 참되고 궁극적인 만족을 누리며 하나님의 무궁한 영광과 주권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식하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반복적으로 묻는다: “나는 진정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는가? 나는 진정 그분을 사모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이 주신 선물에 더 만족하고 있지 않는가?”
(3)우리 마음 속에 있는 진실함의 여부를 테스트함
금식은 어떤 욕망이 우리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한 시험이다. 리터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생명의 말씀사 출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어떤 훈련보다 금식은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을 보다 밝히 드러낸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갈망하는 참된 제자들에게 놀라운 유익을 제공한다. 우리는 자신 소에 있는 것을 음식이나 다른 것들로 숨긴다.” 그렇다. 우리는 종종 음식으로 자신의 고민들을 ‘완하시키려고’ 한다. 무엇을 먹음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마취시키는 것이다. 금식은 우리 속에 있는 것들--교만, 고통, 분노, 욕망, 시기, 다툼, 두려움, 걱정, 증오, 탐심, 불만, 낙심, 공허감, 슬픔, 기타 상처, 등--을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은 나쁜 감정들을 무마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균형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는 금식한다. 요컨데, 금식하는 이유는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4)영혼의 육화(肉化)를 막아준다.
금식은 육을 죽이고 성령과 깊이 교제함으로써 죄를 이기는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지게 한다. 자신의 소욕을 죽이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믿음의 몸부림이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육체의 소욕을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절)고 하였다. 죄를 이기면 마귀의 근거가 파괴되므로 마귀와의 전투에서 손쉽게 승리하게 된다.
금식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을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외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고백인 것이다. 금식은 거룩한 갈망의 표현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욕구에 부응할 때마다 영적인 욕구에 덜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이틀씩 정기적으로 금식했던 요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부한 떡은 영혼으로 하여금 부주의하고 경솔하도록 부추길 뿐만 아니라 어리석고 불경건한 욕구들, 즉 더럽고 비열한 성향을 증가시킨다. 점잖은 듯하고 일상적인 육욕성조차 영혼을 지속적으로 타락시키며, 멸망당할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가라앉힌다.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기회가 주어지면 영혼도 온갖 쾌락으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근거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혼을 삼가 낮추며, 저급한 욕구에 빠져들지 않도록 자제할 것이다. 저급한 욕구들은 자연히 영혼을 이 땅에 속한 것에 묶고, 또한 그것을 오염시키는 경향이 있다. 금식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탐욕과 육욕에 빠지게 하는 음식을 절제하고, 어리석고 해로운 욕구들과 추하고 허탄한 애착을 뒤로 물리치기 위함인 것이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이었으며 ‘황금의 입’이라고 불리웠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이 금식의 유익을 설명했다: “금식은 천사들의 삶을 본받는 것이고, 현세적인 일들을 멸시하는 것이며, 기도학교이며, 영혼을 육성시키고, 입에 재갈을 물리며, 또한 욕정을 감소시킨다. 그것은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기질을 온유하게 만들며, 분별력을 높이고, 마음을 정화시키며, 육신의 짐을 덜어주고, 악한 충동을 몰아내며, 두통을 없애준다. 금식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혀를 적절히 조절하며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된다.”
(5)문제와 장애에 대한 돌파구(breakthrough)를 찾기 위한 믿음의 열쇠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영적 전투이다. 영적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무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금식이다.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대적하는 우리 안의 욕망들과 싸우는 내적 전투에서 사용하는 무기로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공동체와 사회 민족을 향한 중보의 무기이기도 하다.
금식기도는 일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마귀가 가져온 흉악의 결박들을 푸는 힘이 있다.(마17:21참조) 예를 들어, 개인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얽매이기 쉬운 습관적인 죄들을 다루기 원한다면 금식기도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동일하게 공동체나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도 적용할 수 있다.
(6) 금식은 신체적 유익들이 많다.
영과 몸은 창조시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도록 만드어졌다. 따라서 영이 건강하면 육신도 건강하는 것이 일반적 결과이다.(요3:2) 창조시부터 사람은 안식을 명령받았던 것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이 음식의 섭취로부터 휴식을 필요로 함을 암시해준다고 볼 수 있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는 과식하기 보다 금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한 금식하면서 몸의 노폐물들이 세포로부터 빠져나가게 되고 몸의 신진대사가 더욱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많은 유익들을 열거할 수 있다.
1. 능력 있는 믿음, 시련과 환란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2. 체험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3. 교회부흥의 계기가 된다.
4. 자녀들이 변화되고 사업에 길이 열리는 등 가정이 복을 받는다.
5. 건강에 유익이 온다.
6.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정신적으로 강건해지는 유익이 온다.
7. 모든 결박을 끊으며 얽매이기 쉬운 습관적인 죄와 사단의 속박을 푸는 힘이 있다.
8. 성격이 온유해지며 사랑의 기질로 변화된다.
9.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게 만든다.
10. 금식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게로 끌어와서 능력 있는 섬김을 하게 만든다.
11. 금식은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III.결론(結論)
1.영적 각성을 위해 금식하자.
금식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의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금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만족이 없을 때 금식하는 법이다. 금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광의 주님이 자기들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기를 별로(간절하게)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즘 현대교회에서는 금식기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 원인은 물질적으로 부요해지면서 그 마음에 금식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영적인 기갈, 교회 안에 있는 형식적인 분위기와 느낌들, 하나님과의 형식적인 관계들, 하나님의 인격과 영광에 대한 무감각함들이 보이지 않는가?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야 한다.
올바른 목적과 올바른 방법으로 금식기도하는 것에 필적할만한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세상에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
2.주님을 위해 금식하자.
금식기도는 무엇보다 주님을 더 잘 알며, 주님을 더 잘 섬기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새로운 선교의 흐름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주님을 위해 금식해야 한다. 그것은 주님을 위한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 자신을 위해서여야 한다.
3.주님의 나라의 도래(coming of the Kingdom)를 위해 금식하자.
금식기도는 주님의 영광이 세상 가운데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것을 위해 금식해야 한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의 금식기도 중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개인과 공동체에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이다.
4.주님의 뜻 성취를 위해 금식하자.
금식기도는 개인과 공동체를 향하신 주님의 깊으신 마음과 뜻과 계획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금식하면서 부르짖어야 한다.
5.금식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자.
자, 금식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굶주림의 약점은 생명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강요하고자 하는 마술적인 시도나 강청이 없다. 단지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다. 금식을 통해 마음으로부터 겸손히 이렇게 고백한다. ‘아버지여, 주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 저를 도우소서. 속히 저를 도우소서.’”---Joseph F. Wimmer.
“하나님, 우리는 주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시기를 갈망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더 크게 나타내시옵소서. 나는 진정으로 주를 갈망합니다. 음식을 원하기보다 주의 나타나심을 더 원합니다. 영광의 주님, 어서 임하시옵소서”
“영광의 주님, 주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원수들의 요새들을 주의 권능의 손으로 깨뜨리사 주님이 주님되심을 알게 하소서. 주여 어서 속히 임하사 원수들을 파하시고 주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Are You Ready?: 자, 그대는 금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For Christ! 영광의 주 그리스도를 위해!
For His Kingdom forever! 영원한 그의 나라를 위해!
<금식에 관한 중요한 성경구절들>
요엘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니라”
시35:13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마17:21-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딤전4:1-3 “하나님께서 지으신 식물을 감사함으로 먹으라”
골2:20,21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은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고전8: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고후11:27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눅18:12-14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한다고 자랑하면서 기도하는 한 사람
빌3:19 “저희의 신은 배”요
고전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
막4:19 “들어와 말씀을 막고 결실치 못하게 하는 기타 욕심”
롬14:3-6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6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금식기도에 관해 추천할만한 경건도서들>
1.존 파이퍼, [금식기도](생명의 말씀사)★★★★(금식의 원리적인 측면에서 탁월한 책)
2.엘머 L.타운즈 [금식기도를 통한 영적 승리](서로사랑)★★(금식의 다양한 종류를 설명함)
3.김준곤, [리바이벌:금식기도의 실제적 지침서](순 출판사)★★★(모든 면에서 잘 정리한 책)
4.최자실, [금식기도의 능력](서울말씀사)★★★(간단하면서도 동기부여를 잘 하는 책)
5.조효성, [고학과 성경으로 증명한 안전한 금식기도](바울서신)★(건강의 유익을 잘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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