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리

사도신경!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2)

등불지기 2012. 4. 3. 06:26

 

 

사도신경!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2)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은 사도가 쓴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도가 쓴 것이 아니라 사도가 가르친 신앙의 본질이라고 후대 사람이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신경의 12가지 고백을 사도들이 가르쳤습니까? 역시 아닙니다. 사도신경에 나와있는 12가지 고백이 사도들의 가르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도신경을 오늘날 교회가 신앙의 표준, 믿는 바의 기준으로 제시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될 수 없습니다. 사도가 쓴 것 혹은 사도가 가르친 것처럼 사도의 이름을 도용했으나 사도가 가르친 진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한 교리확립을 위해 늘 활용해야 하는 '교리적 질문'이 있는데..그것은 '과연 사도들이 그렇게 가르쳤는가?'하는 것입니다.

 

(1) 사도들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라"고 가르쳤는가?

아닙니다. 성경은 창조사역을 성부 하나님께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전능하심과 신성과 영광과 선재하심에 대해 풍부하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 역시 창조사역에 깊이 관여하고 계심을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사도들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가르쳤는가?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외아들'only son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외아들'이 아니라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은 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약속된 구원자로서의 '유일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 사도들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가르쳤는가?

사도들은 '동정녀'에 대해 강조하지 않습니다. 사도들 중 누구도 마리아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동정녀 마리아the Virgin Mary"란 말은 성경에 없는 말이고, 로마 카톨릭에서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입니다.

 

(4)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가르쳤는가?

사도들의 가르침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역사적이란 사실을 입증하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의 강조점은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5)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가르쳤는가?

사도들의 초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지옥을 심방한 것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이 우주적으로 선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6)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가르쳤는가?

사도들의 강조점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이었습니다.

 

(7)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가르쳤는가?

사도들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신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따르는 자들이 언약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8) 사도들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라고 가르쳤는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서부터 심판하러 다시 오시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며 교회들 가운데서 다스리고 계시며 믿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의 간구를 드리십니다.

 

(9) 사도들은 "성령을 믿으라"고 가르쳤는가?

'성령을 믿으라'는 것이 사도의 가르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에 관하여 성령이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성령을 믿었고, 오늘날 무슬림도 성령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시며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성령이십니다.

 

(10) 사도들은 "거룩한 공회를 믿으라"고 가르쳤는가?

아닙니다. "거룩한 공회"란 단어는 성경에 없는 말이며, 거룩한 공회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입니다.

 

(11) 사도들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the communion of saints을 믿으라"고 가르쳤는가?

아닙니다. 성인들과의 교통은 사도의 가르침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신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 역시 믿음의 대상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어서 서로 사귀고 교제하는 것이지, 교제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12) 사도들인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쳤는가?

아닙니다. 사도들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과 부활시에 영화로운 새 몸으로 덧입게 될 것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쳤다기 보다는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이상 종합해볼 때 '사도신경'은 사도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며, 사도들이 가르친 것과 유사하지만 아닌 내용이 많으며, 따라서 오늘날 교회가 공예배시에 고백하기 위해 채택할만한 '신앙의 표준' 혹은 '믿음의 기준'이라고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보입니다.

 

그러면, 사도신경이 사도들이 쓴 것도 아니라면, 사도들이 가르친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친 진리의 핵심교리가 아니라면 무엇이 사도들이 가르친 핵심 진리입니까?

 

구약의 성취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유일하신 그리스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함, 그리스도를 사랑함, 교리적 순결 즉, 믿음의 도를 위해 거룩한 싸움을 하는 것,

믿음, 인내, 사랑, 충성, 성숙, 그리고 세계선교

 

사도신경이 오늘날 교회의 신앙고백의 표준이 될 수 없다면 교회는 무엇을 고백해야 합니까?

오늘날 교회가 '사도신경'을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는 없습니다.

한국교회만 특히 '사도신경'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밖에 나와서 개혁교회들을 보면 사도신경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이 교회전통이니까 존중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말 '사도신경'이 교회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대해 알고 있는지, 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교회개혁을 위해 헌신한 것을 알고 있는지,

어떤 신학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신학적 정체성이 정립이 안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듭니다.

만일 '사도신경'이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면 더욱더 실망입니다.

선배 개혁자들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보배들은 '사도신경' 어디에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조'에는 저마다 교리적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제가 확신하는 것은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정체성은 로마 카톨릭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전통은 '사도들의 전통'입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가르쳤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고백은 사도들의 전통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고백에 관하여 교회에 권한 것은 '성경읽기'였습니다.

시편 혹은 복음서나 서신서를 회중이 함께 읽는 것은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신앙고백에 있어 성경본문을 믿음으로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건전한 교리체계를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과 선교적 사명 등 교회의 사명을 담은 교회만의 신조를 채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도신경을 설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도신경이 설교할만한 가치가 있는 본문, 혹은 성경본문과 같은 권위가 있는 본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설교할 본문은 성경66권뿐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설교자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을 전하는 것은 스스로 설교의 영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굳이 사도신경을 설교하고 싶다면 12가지 주제(창조주 삼위 하나님,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통치, 중보, 재림, 성령론, 교회론, 교회의 본질과 기능, 최후의 소망..등)를 따라 설교제목을 정하되 사도신경이 설교본문이 아니라 성경을 설교본문으로 삼아 설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혹은 소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가지고 항목별로 제목을 정하고 성경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교회가 나름대로의 '신앙고백문'을 만들 때 참고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사도신경'이 허용된다면 교회가 나름 만든 '신앙고백문' 혹은 '지역교회의 신조'도 허용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이든 지역교회의 신조이든 모두 성경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하고, 성경의 권위 아래 언제든지 개혁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역교회의 신앙고백문을 위해 참고할 부분은..

(1)사도들의 가르침, 복음의 진수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를 해야 함 (복음서와 서신서에 대한 이해와 통찰)

(2)건전한 교리체계를 교회지도자들이 먼저 깊이 공부해야 함 (최소한 1년 정도는 교회 지도자들이 교리공부를 해야 함)

(3)신앙고백에 꼭 들어가야 할 신앙의 표준항목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관>신론>인간론>기독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

(4)종교개혁자들의 정신에 대해 교회지도자들이 깊이 공부해야 함(종교개혁사, 교회사, 이신칭의, 성화논쟁, 성찬논쟁, 분열사, 등등)

(5)지역사회와 국가, 세계복음화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사명(온전한 교회로서 나아갈 길에 대한 비전: 정의, 구제, 영성사역에 대한 균형)

(6)그리스도인의 삶, 성숙과 성결에 대한 선언(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비전: 배움, 훈련, 나눔, 섬김, 연합)

(7)지역교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함 (지역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에 반응하는 교회의 모습으로서 지역리서칭)

지역교회마다 이와 같이 성경의 권위 아래 '신조'를 만들어간다면 교회는 분명한 '교리적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개혁자들의 정신을 담아내기에는 교리적 정체성이 너무 모호하거나 약합니다.)

이러한 '신조화'making a church creed작업이 유익한 것은 지역교회를 이단과 사이비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전한 신조를 공유하는 교회입니다.

그것만이 교회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South Africa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