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회복학교

나의 멘토

등불지기 2012. 10. 22. 19:42

 

 

 

제게는 두 분의 영적 멘토가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제가 어느 그리스도인보다 존경했던 외할머님이시고 (25년 전에 소천하셔서 지금은 꿈에서나 가끔 만납니다.)

사역에 있어서는 제가 어느 목사님보다 흠모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척 스미스Chuck Smith 목사님(미국 캘리포니나 갈보리 채플 교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나,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멘토는 제게 지혜와 힘을 줍니다.

비록 제 곁에 없으나 그분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살아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멘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척 스미스 목사님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분의 생애와 성장배경에 대해 글을 올립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척 스미스(Chuck Smith)는 1927년 대공황이 미국에 불어 닥치기 직전 캘리포니아 밴츄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알려져 있다. 7개월 째 된 아이를 가진 모드 스미스라는 여인이 죽어 가는 어린 딸 버지니아를 안고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다 죽어 축 늘어진 딸아이를 안고서 뛰어 집에서 가까운 오순절 교회의 목사관에 도착하여 아이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은 아이를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도 그 자리에 엎드려 부르짖기 시작했다. 이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 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모드와 찰스 부부는 하나님께 남은 생애를 헌신하면서 살기로 서원 했으며, 두 달여 지난 후 척 스미스가 태어나게 되었다. 부모는 장남 척 스미스를 통해 서원을 이행하리라고 결심하게 되었고, 태어난 날부터 부모는 척 스미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척 스미스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성경구절과 성경 각 권 제목 등을 암송하도록 가르쳤고 글읽기도 성경으로 알파벳을 가르쳤다. 이러한 서원기도에 대해서는 척 스미스가 목회 하면서 15년이 지났을 때 알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무엇보다 기도의 사람이었다. 척 스미스 목사는 어릴 때 잠들기 전에 들은 소리도 어머니의 기도소리였고, 아침에 잠에 깰 때도 기도소리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조용한 성격으로서 전도보다는 조용히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하기를 좋아한 반면 아버지는 세일즈맨으로서 개방적인 성격으로서 일대일 전도에 능했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전했다. 이와 같이 모드와 찰스 부부는 장녀 버지니아, 장남 척 스미스, 그리고 척 스미스의 두 동생 폴과 빌에게 신앙적으로 큰 영향력을 주었다. 이런 가정 배경은 그가 나중에 목회 하면서 그의 인품을 특징 지우는 안정감 있는 심리적 요소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척 스미스 목사가 안정감 있는 인품의 소유자로 성장하게 된 데는 어릴 적 특히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이 컸다.

 

“저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 마음속에 심어주셨습니다. 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동안에도 성경구절을 외우도록 도와주시곤 했습니다. 제가 네 살이 되었을 때는 성경을 가지고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발음을 못하는 단어도 철자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모르는 알파벳 글자를 설명하려고 애쓰던 저의 모습을 얘기해 주시면서 웃으셨는데 제가 "V" 자를 설명할 때는 ‘뒤집어진 텐트’라는 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저를 기르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는 성경의 모든 책의 이름들을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게 되었지요. 저는 잠자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동화를 들어본 적이 없고 성경 이야기만을 듣고 자랐습니다. 곰 세 마리 대신에 다윗과 모세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저의 어머니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하시면서 거인도 대적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은혜의 비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부름 받은 주의 종은 일찍이 회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척 스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의 종은 사역하기 전에 두 가지 확실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거듭나는 중생의 체험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회로 부르시는 소명의 체험이다. 이 두 가지 체험의 확신이 있을 때 그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척 스미스를 비롯한 4남매가 자랄 때는 오순절 계통의 포 스퀘어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척 스미스 목사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토요일 기도회에도 참석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17세 되었을 때였다.

 

17세 때에 여름 수련회가 있었는데 수련회 가운데 주님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의사가 되면 육신의 병은 고치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치료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을 죽게 하는 병이 있는데 바로 죄라고 한다. 이 병을 고쳐야 영원한 치료가 되는 것인데 너는 일시적인 것을 구하겠느냐 아니면 영원한 치료를 하는 것을 구하겠느냐?”고 주님이 도전하셨을 때 척 스미스는 자신의 생애를 주님의 사역에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집에 돌아와서 의사가 되지 않기로 어머니 모드에게 고백했다. 이때 척 스미스의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격려했다고 한다. 척 스미스 목사는 자신의 어머니가 보여준 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저는 제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른 적이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구원 간증 같은 것이 없습니다. 공개적으로 저의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은 적은 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구별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포부를 말씀드릴 때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날 때에 제 삶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신 것을 제게 말씀해 주신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청소년 시절에 여름캠프에서 하나님께서 제 삶을 변화시켜주셨고, 거기서 저는 주님이 온전히 저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다스려주시도록 헌신하고 결단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는데, 육체적인 일을 돕는 것은 일시적이고 영적인 일을 돕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를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당신의 아들이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하면 굉장히 실망하실 줄 알았고, 저의 인생의 장래에 대해 방향을 바꾼 얘기를 들으면 가족들이 어깨가 축 늘어져서 실쭉한 얼굴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셔서 성경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환한 미소로 “잘했다. 아들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시거나 속상해하시지 않는 것이 참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대학에 입학하고 모든 훈련과정을 마치고 케이와 결혼 후에 함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그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저를 통하여 갚기로 하나님께 약속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해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답고 경건한 분이셨고, 성령이 충만하여 모범적인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은혜의 비밀)

 

보통 중생의 체험과 소명의 체험은 동시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정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처음 만나주시고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실 때 이미 소명을 주신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나주실 때, 그가 하나님을 체험하여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때,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척 스미스는 17세의 나이에 중생과 소명의 체험을 동시에 하게 됨으로써 주의 종으로써 연단 받는 ‘광야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셈이다.

 

척 스미스는 학창시절에 운동과 공부를 함께 잘 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라이프 성경대학을 졸업했는데 이 학교를 다니면서 밴 클리브와 가이 더필드라는 두 스승을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두 스승은 척 스미스 목사에게 성경해석과 설교방법에 있어서 큰 영향을 주었다. 척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원래 제 성격이 오순절 틀에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고로 주로 생각을 많이 하시는 이 두 분들을 따르게 되었지요. 당시 우리 학교에는 열정적으로 설교하시는 교수들이 많았는데 한참 흥분해서 듣다보면 나중에는 무슨 내용의 설교였는지 잘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은 강의 내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제가 본받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답니다”(믿음의 모험)

 

신학교에서나 혹은 신학교 졸업 후에 내가 어느 분야에 관심이 끌려 공부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이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는 데도, 책을 선택하는 데도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은 미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하심으로 그를 준비시키신다. 사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목회 사역을 하기 이전에 누구를 만났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책을 통해 배우게 하시지만 그보다는 사람을 통해 목회의 중요한 원리를 배우게 하신다. 따라서 이제 막 신학교에 입학한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를 바르게 인도해 줄 스승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신학교의 강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님의 교육 훈련 커리큘럼에 의해서 세밀하게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러나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후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훈련과정 중에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광야 신학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신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가장 최소한의 것을 배우게 된다. 신학교에서의 신학훈련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목회철학과 사역방법론인데 이것은 신학교가 아닌 사역의 현장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갈보리채플의 수많은 제자들은 대부분 현장 속에서 훈련받은 검증된 사역자들이다. 갈보리채플의 경우 크게 쓰임 받는 대다수 목회자들이 예일이나 하버드 또는 풀러에서 체계적인 학문으로 학위를 받은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척 스미스 목사는 오랜 목회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많은 진리를 터득해나갔는데 현장 속에서 배운 교훈들이 그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로 만들어갔던 것이다.

 

성경대학을 막 졸업한 척 스미스는 열정을 가지고 동부로 건너가 잠시 부흥사로서 사역했으나 얼마 후 고향이 그리워서 캘리포니아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장래 목회방향을 두고 기도하던 가운데 척 스미스는 케이 존슨이라는 아가씨와 사랑을 하게 되었고 한 달 반 교제한 뒤에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척 스미스와 케이는 아리조나와 남캘리포니아를 오가면서 여러 목회지를 옮겨 다니게 되는 [포 스퀘어] 교단의 목사생활을 17년 간 동안이나 하게 된다. 이 교단은 오순절 계통의 교단으로서 약 2년 간 목회 하다가 다시 새로운 부임지로 발령 받아 떠나야 하는 생활을 반복하곤 했다. 열심히 해서 자리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목회를 크게 하려고 하면 곧 전출가게 되는 생활이었다. 이 기간 동안 척 스미스 목사는 자신의 무능함을 배우게 되었고, 생활의 연단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며, 기존 교회의 형식적이고 생명력이 없다는 데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 동시에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 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배우게 되었다.

 

[본질목회로 돌아가라 : 갈보리채플 이야기](김광락 목사 저, 베다니출판)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47--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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