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회가 세상을 책망하고 정죄하는 권세를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신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가 가져야 할 권위는 두 가지입니다. 말씀의 권위, 그리고 도덕적 권위입니다.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가끔 희안하게도 분리될 수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고린도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와 지식이 풍부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고린도전후서는 교회의 모든 문제들을 분석하고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사도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어디서 시작했을까요? 십자가 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령의 다스리심 아래 살지 않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식과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기초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을 책망하고 정죄할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외치지만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성령의 다스림이 아니라 육신을 따라 살아갑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이 된 증거가 무엇일까요? 개신교회가 카톨릭에서 개혁의 깃발을 내세우고 저항정신을 보여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머리가 아니고 계속해서 말씀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개신교의 정신입니다. 교황체계의 교권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회를 보면 개혁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간 것 같아 보입니다. 특정 목사와 장로가 교회에서 교황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직분을 임명하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고, 재정을 집행하고, 치리하고 권징하는데 원칙도 없이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의논하며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결정하고 통보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된 모습입니다.
교회개혁의 본질은 우선 정치구조에서 특정 개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개인에게 인사권, 의결권, 재정집행권, 치리권 등 모든 권한을 다 부여하는, 개인을 절대화하는 정치구조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확립하고, 교회마다 민주적인 절차를 가진 내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계급이나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열로서 교회 직분을 이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임기제를 두고 정기적으로 신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는 서열이나 권력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보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가져야 합니다. 재정집행, 인사권, 치리권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내규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개혁의 외적인 목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개혁만이 전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외적인 개혁은 반드시 내적인 개혁과 동행해야 합니다. 내적인 개혁이란 다름 아니라 십자가 정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통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육의 본성을 회개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자신을 부인하는 신앙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육신의 소욕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편가르고, 분쟁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하며, 세상 가치관을 따라 과시하고 다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아무리 외적인 개혁을 이루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머리가 진정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심을 주장할 수 있는지, 그것을 과연 증명할 수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김광락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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