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리

교리공부(18)-인간의 죄와 타락상

등불지기 2012. 3. 9. 15:58

 

하나님을 아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죄의 심각한 정체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인간의 죄와 타락상

 

본문: 딤6:3-16

 

오늘은 죄의 성격과 범위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죄를 아는 지식은 은혜를 아는 지식과 깊은 관련(비례)이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배워야 합니다.

 

1. 죄의 성격

①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택한 것이 원죄의 실상이며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고립된 무인도에 갇혀 살게 되었다. 그 인간에게서 태어나는 후손들은 모두 무인도에 갇혀 사는 처지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②인간의 죄(원의의 상실)로 인하여 인간은 근원적인 결핍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것이 부패와 타락과 저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얻지 못하는 인간은 점점 무질서와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③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반역과 불순종의 경향이 그 마음 깊은 곳에 내제하고 있다. 만일 복음을 듣도록 하기 위해 사회와 국가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없다면 인간은 보다 빨리 자기파멸을 보게 될 것이다.

④죄의 성격은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에 관련하여서 불경건한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법에 관련하여서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불순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해서 자유(혹은, 독립)을 선언하는 내제된 의지이며 인간의 복지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요구에 대해서 고의적이고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의지이다. 죄는 근본적으로 ‘반역’과 ‘반항’이다.

⑤이러한 죄는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경향과 고착된 습관 속에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죄(sin)로 말미암아 인간은 명백한 행동으로서의 ‘죄들’(sins)로 표현되어진다.

⑥이러한 죄는 에볼라와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는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⑦이러한 죄는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대체되어진다. 탐심은 죄의 가면이다.

⑧죄는 특정한 성격뿐만 아니라 무서운 세력(power)으로서 사람의 의지의 영역까지 미친다.

 

2. 죄의 범위

①죄의 상태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있다.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신 그리스도만이 죄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②죄는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결과를 지속시키려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③죄는 하나의 원리요 세력으로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과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 심지어 자연만물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만물이 심각하게 신음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심판과 중재를 요청하고 있다.

 

3. 죄의 상태

①죄로 인하여 인간은 모든 면에서 조화를 잃어버린 상태, 즉 부조리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스스로 찾으려는 선한 의지와,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누리고자 하는 의지를 앗아갔으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②죄로 인하여 인간의 인격은 균형을 상실하여 감성과 의지와 지성이 서로 부조화를 이루게 되었으며 계속적으로 갈등하는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가장 무섭고 파괴적인 상태는 감각적인 부분들이 영적인 것보다 더 우선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며, 감각이 지성과 영성을 지배하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선을 행하는 마음은 있으나 선을 온전히 자발적으로 행하는 능력은 상실하고 말았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을 알고 인정하지만 자기가 미워하는 악을 쉴새 없이 행하게 되는 것이다.

 

4. 죄책과 형벌

①개인의 행위에 대한 죄책과 공동의 책임으로서의 죄책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부모 때문에 받는 저주의 고통(출20장)과 부모 때문에 지옥에 가야하는 형벌(겔18:19,20절)과는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의 개인적인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를 정죄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담의 죄악에 대해서 공동체적인 책임을 져야 정당하다. 한 사람 아간의 범죄로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같이 고통을 겪은 것을 보라.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원리에도 적용된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전체가 같은 혜택을 보는 것이다.

②죄책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은 죄사함의 길을 계시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③인간은 자신의 죄 이외의 다른 죄로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정죄를 받는 것은 스스로 고의적으로 죄를 택하였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도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서 고의적인 죄에 대해서 정죄를 받게 된다면 심지어 복음 메시지를 들었으면서도 계속 불순종과 반항의 길을 갔던 사람들은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④양심은 하나님의 호흡(생기)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 본성에 새겨진 양심의 법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양심은 최소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에 대해서 변명의 여지를 주지 못하게 만드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⑤인간이 스스로 고의적으로 선택한 죄에 대해서 형벌은 당연한 것이다. 처벌은 죄에 대한 필수적인 결과이다. 하나님의 보응은 언제나 하나님의 법에 따라 공의롭게 집행되어진다. 인간은 죄로써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자신을 분리시키기로 결정했으며, 그러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당신과 분리시키는 것은 공의로우신 처사이다.

⑥심판과 징계로서 하나님의 사법적인 조치(보응)은 구분되어진다.(히12장 참조)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인간의 모든 불경건과 사악함에 대해서 항상 변함없이 대적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징벌(징계)를 가하는 목적은 회개와 회복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을 고의적으로 끝까지 거부한 인생은 현재적인 심판(영적죽음)과 영원한 심판(지옥형벌)에 처해지게 된다.

 

5. 적용: 우리는 죄에 대해서 항상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전투에 패배한 것은 용서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것은 용서될 수 없다.”

①죄의 성격과 그 심각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②죄의 세력과 오염에서 늘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에 착념해야 한다.(딤전6:3)

③죄의 세력은 말씀의 세력이 약해지면 언제나 고개를 쳐들어서 공격해올 것이기 때문이.(딤전6:4)

④현혹되기 쉬운 죄의 가장 무서운 형태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경건의 모양만 남은 채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이다.(딤전6:5)

⑤죄의 세력을 항상 이기기 위해서 항상 가져야 할 것은 ‘지족하는 마음’ 즉 감사생활이다.(딤전6:6)

⑥죄를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초심’ 혹은 ‘적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딤전6:7)

⑦죄의 세력은 ‘탐심’이란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딤전6:9) 탐심의 가면 배후에 있는 죄를 대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끌려가고 패배하면 결국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⑧사람들이 왜 시험에 빠져서 근심과 염려라는 죄의 세력에 포로가 되는가? 그것은 탐심에 져서 끌려다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근심과 염려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찌르게 허용하였기 때문이다.(딤전6:10)

⑨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추구해야 할 것을 항상 추구하는 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딤전6:11) 특히 죄와 싸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딤전6:12)

⑩죄를 익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항상 묵상하여야 하다.(딤전6:13,14)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항상 의식하여야 한다.(딤전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