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리

교리공부(45)-교회의 거룩한 의식: 세례

등불지기 2012. 3. 9. 17:56

 

 

교회의 거룩한 의식-세례

 

본문: 마28:19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바를 성실하게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거룩한 의무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성실히 감당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후원하여 주실 것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권세는 영적인 권세요 대리적인 권세로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진리를 수호하며 가르치는 권세(교훈권)과, 둘째, 교인들의 입교와 출교에 관한 그리스도의 법을 집행하며 교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케 하기 위해 적절한 규정을 제시하며 그에 따라 직분을 임명하여 세우는 권세(치리권)과, 셋째, 교인으로 하여금 그 받은 소명과 은사에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는 권세(봉사권)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교회에 나타내셔서 임재의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으로는 말씀선포와 성례거행을 들 수 있다.

 

1. 말씀

교회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가 선포되는 말씀을 믿음으로 듣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은 성육신하신 그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선포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선포와 교훈이 없이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도 불가능하다.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선포하는 말씀은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믿음으로 받을 때만 은혜가 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믿음과 회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교회가 선포되는 말씀을 떠나서 홀로 역사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증거와 성령의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고 듣는 자들이 믿음으로 주의하여 경청할 때 그리스도의 실존을 경험하는 은혜가 넘치게 된다.

말씀의 기능에는 율법과 복음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율법 역시 은혜의 방편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선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율법은 죄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나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으로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과 같다.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된 사람에게 복음이 효과적인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도록 해주며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게 한다. 율법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해 주며, 복음은 의를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2. 성례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방편으로 충분하지만 성례(거룩한 의식들)로서 완전해진다. 성례는 말씀을 떠나서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로마 카톨릭은 말씀이 없어도 성례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례가 없는 말씀은 죄인을 구원하는데 효과적이어도 말씀이 없는 성례는 우리를 구원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하다. 죄인의 구원에 있어서 말씀선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성례는 그렇지 않다. 말씀은 믿음을 불러 일이키며 믿음을 강하게 하지만 성례는 믿음을 강하게 하는 역할만 한다. 즉 성례 그 자체가 믿음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말씀은 전 세계를 향한 것이지만 성례는 오직 믿는 자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집행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말씀을 명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내면화하기 위한 것이고, 성례를 명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외면화, 가시화하기 위한 것이다. 즉, 성례는 외적인 표시로서 내적인 믿음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신앙고백의 형태인 것이다. 의와 죄사함 혹은 믿음과 회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친교 등과 같은 영적인 은혜는 내적인 것인데 성례는 이 은혜를 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성례는 말씀을 따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성례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이미 믿는 자들은 성례를 지속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표현하며 고백하게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3. 성례1: 세례

 

개혁교회가 인정하는 성례에는 세례와 만찬이 있다.

세례와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친히 명령하신 거룩한 의식들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받들어 섬기는 교회는 마땅히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혼예식의 경우 그리스도의 명령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정하여 주신 거룩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세례는 단회적이지만 만찬은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지속적으로 지켜야 한다.

 

세례는 무엇인가?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 받았음을 공적으로 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례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례의 기본적인 의미는 로마서 6장에 잘 나와 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나됨)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을 의식을 통하여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가 돕는 것이다.

 

누가 세례를 받는가?

세례는 우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의 유아들도 언약의 원리를 따라 세례를 베풀 수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행16장, 막10:13-16참조) 그러나 유아세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자의식을 따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영접하지 않으면 그 받은 세례는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유아세례를 베푸는 까닭은 그가 장성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언약 아래 두기 위함이다.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천국에 가는가 지옥에 가는가의 문제) 개혁주의 교회에 세례는 언약의 개념과 밀접하다. 언약아래 할례와 마찬가지로(어린아이들이 언약의 표시로서 할례를 받음) 세례는 인침과 표시의 의미가 있다.

 

어떻게 세례를 주는가?

세례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성경에서 어떤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물에 잠그는 침례의 방식이 가장 좋지만 그 한 가지 방식만을 고수함으로써 교회의 분열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시행하는 것이므로 치리권을 받은 자가 시행하여 영적 질서를 지켜야 한다.

 

왜 세례를 주는가?

세례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더 나아가서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단번의 죄 씻음에 대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골2:11,12절을 읽자) 다시 말해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에 입문하였음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세례는 일종의 입문의식이다. 세례는 세례받은 자에게 어떤 유익이나 축복을 주거나 혹은 내적인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단지 그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 받은 것을 세상에 선포할 뿐이다. 세례를 통해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세례는 믿음과 믿음의 결과인 구원을 이미 전제로 받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분명히 하면서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그리스도를 신실히 믿고 세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표를 가지고 세상에서 사는 것을 원하시며 세례를 교회에 명하셨다. 막16: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즉 정죄의 여부는 믿음의 여부이지 세례의 여부가 아니다. 세례는 구원의 필수가 아니나 구원의 당연한 표현 내지 결과,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세례를 받는가?

말씀공부와 기도로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이 진정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는지 말씀과 기도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었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살았음을 여러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는 이전에 섬기며 따랐던 것들과 관계를 끊는 의식이며,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길 것을 공개적으로 서약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