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거룩한 의식②-성찬
본문: 고전11:17-34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명하신 거룩한 의식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다. 세례는 가견적 교회의 입문의식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죄씻음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성찬은 가견적 교회의 계속적 의식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아 계속적으로 생명을 공급받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주의 만찬(성찬)에 대한 해석은 각 교파마다 다양하다.
1. 다양한 견해들
1)로마 카톨릭의 견해: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동일하다.
로마 카톨릭은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년)에서 공식적으로 성찬에 대한 견해를 주장했다. 첫째, 화체설이다. 이에 의하면 떡과 포도주가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자신의 몸에 집어넣는다고 생각한다. 둘째, 희생제사이다. 성찬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그리스도에 의해 참된 희생제사가 예배자를 대신하여 드려진다는 것이다. 셋째, 사제주의다. 임명받은 사제가 반드시 떡과 포도주를 집례하지 않으면 그냥 떡과 포도주로 남는다는 것이다. 넷째, ‘평신도’ 배잔 금지이다. 평신도가 잔을 마신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잔을 받지 않아도 떡만으로 완전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가 떨어져서 모독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직자가 평신도를 대신해서 잔을 다 마셔버린다.
2)루터교의 견해: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담고 있다.
루터교는 로마교의 화체설을 부인했다. 즉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몸과 떡이 함께 존재하고 피와 포도주가 함께 존재한다고 해서 ‘공재설(共在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루터교는 또한 성찬이 희생제사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희생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희생을 반복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가르친다. 루터교는 또한 사제주의도 거부하였다. 사제의 행위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루터교에서 성찬은 설교와 같이 효과적인 선포의 방법으로 간주된다.
3)개혁파의 견해: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담고 있다.
칼빈주의(개혁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주의 만찬에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태양빛과 같이 영적이고 역동적으로 임재하신다고 가르친다. 즉, 성찬은 단순한 상징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할 뿐 아니라 주님을 섬기며 즐거이 순종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4)쯔빙글리의 견해: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
쯔빙글리에 의하면 주의 만찬이 단순한 기념(상징)뿐이라는 것이다. 즉, 성찬은 설교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화란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
2. 그러면 우리의 견해는 무엇인가?
성찬에 대하여 친히 하신 말씀에 대한 주경적 해석에서 시작해야 한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문자적인 의미로 말씀하셨다면 성육신을 부인하는 모순을 낳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루터교처럼 주의 만찬에 주께서 육체적으로 임재하셨다고 한다면 이것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과 제자들과의 [생명적 관계]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등등 평소에 제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은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최후의 만찬 때에도 마찬가지 의미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며 각 족속으로 나아가 제자를 삼는 현장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28:20)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예배하기 위해 모일 때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18) 따라서 성찬은 예배의 행위로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는 훌륭한 예배방법으로 주님이 친히 제정하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헌신과 복음전파를 다짐하는 훌륭한 선교적 헌신예배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성찬에 믿음으로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성령으로 경험하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생명적 교제를 누리는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이다.
3. 그러면 성찬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성찬의 참되고 복된 유익을 저절로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찬을 올바로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고전11:27이하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고린도 교회는 성찬에 올바르지 못하게 참여함으로 인해 영적인 은혜와 유익을 얻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쇠약해지고 병들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고전11:30)
그러면 어떻게 지켜야 올바로 지키는 것인가? 성경은 ‘자신을 먼저 살피라’고 말한다.(고전11:28) 이것은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희생적이고 화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주님과의 관계와 함께 다른 지체들과의 관계에 적용해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결핍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것은 거룩한 성찬을 모독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희생의 목적을 나도 모르게 무시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주님에 대한 관계(상태)와 다른 신자들에 대한 관계(상태)를 먼저 점검하고 살펴야만 한다. 그럴 때만이 주님께 대한 헌신과 기념이 영적인 유익과 축복을 낳는 것이다.
4. 누가 집례하며 누가 참여하는가?
성경은 누가 만찬을 집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성찬은 교회에 위임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예배의식을 관장하도록 선택하여 권한을 부여한 사람(들)이 성찬을 주관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누가 만찬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성경은 구체적으로 자격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님과 자신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돌아보며 자신과 다른 신자들과의 관계를 자발적으로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과 그 몸에 자신이 지체가 되었음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참 신자여야 한다. 성찬에 참여할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중한 죄를 지었거나 덕을 해치는 자에게는 수찬을 금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5. 포도주 대신 포도주스를 사용해도 되는가?
떡 대신에 빵을, 포도주 대신에 포도주스를 사용해도 되는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교회지도자들의 합의에 따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과자와 청량음료와 같이 상징성이나 유사성이 결여된다면 거부해야 마땅하다.
6. 얼마나 자주 시행해야 하는가?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만찬을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한 지침을 내려주고 있지 않다. 자주 시행하는 것이 좋지만 너무 자주 시행함으로써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고 타성에 젖어서 그 의미를 무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찬에 관한 분명한 설교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행 빈도수는 각 교회가 스스로 결정함이 좋다고 본다.
맺는 말
올바로 성찬을 시행함으로써 교회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는 훌륭한 예배를 드리게 되며, 뿐만 아니라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확인하며 주님께 대한 재헌신과 다짐을 새롭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사랑과 헌신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며, 선교에 큰 진보가 될 것이다.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고난의 의미를 충분히 되새기고 기도로 준비하여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성찬이 주는 무한한 영적 유익과 축복들을 향유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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