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한 메시지에 영적전투를 빼놓을 수 없지요..
저는 영적전쟁과 영적전투를 구분합니다.
도움이 되길..
김광락 선교사 올림.
영 적 전 투
본문: 엡6:10-13
지난 시간까지 저는 영적전쟁이란 이름으로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영적전투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적전쟁과 영적전투란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영적전쟁과 영적전투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전쟁이란 단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전투란 용어는 좁은 의미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국가와 국가로서 벌이는 싸움을 흔히 전쟁(war)이라고 하지 전투(battle)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전투란 말은 국지전, 즉 어떤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영적인 싸움도 저는 두 가지 단어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영적전쟁이라 함은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이미 승패가 결정이 났습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세 번에 걸쳐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린 내용입니다. 이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도하신 것으로써 십자가로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그리고 원수는 자신들의 패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순종하는 제자들로 말미암아 온 세상 땅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을 더 이상 뺏어갈 세력은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이미 승리한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5:4,5)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미 승패가 결정된 싸움터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항상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사단을 향해 외칠 수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소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그러나 또 한편 큰 싸움은 결정 났지만 작은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결박당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결코 참소할 수 없지만 그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었거나 지옥불에 다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성공적으로 상륙하였을 때 연합군은 이미 승패가 결정 났다고 믿었지만 독일군들은 5개월간 버티면서 더욱 맹렬하게 싸움을 걸어왔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사단은 치명타를 입었지만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더욱 맹렬하고 교회를 향해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전히 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고 말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란을 겪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단은 이미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혀 있지만 그러나 아직 지옥불에 던져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정적인 힘은 결박되어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향하여 적대적인 태도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12:17) 사단과 그의 추종세력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를 갈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언제 경험할까요? 사단의 공격을 가장 쉽고도 빨리 경험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원수의 적대감을 더욱 더 잘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후3장 12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의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고자 하면 핍박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우리는 원수의 실존을 더욱 더 잘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원수는 결박되어 있습니다. 원수의 무기는 해제되어 있습니다. 원수의 이빨과 발톱은 뽑혀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단을 ‘우는 사자’에 비유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왜냐면 젊은 사자는 먹잇감 앞에서 결코 우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는 사자는 힘이 없는 늙은 사자입니다. 늙은 사자는 자기 힘으로 먹이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늙은 사자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 부르짖는 소리는 강력한 초음파이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게 되면 동물들은 꼼짝 못하고 가만히 서서 떨기만 하는데 그 모습을 본 늙은 사자는 가만히 다가가서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정신만 차리면 범에게 물려가도 살아남는다는 옛 선조들의 속담은 매우 지혜로운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대로 사자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결코 사단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은 결박되어 있지만 그 소리는 매우 위협적인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그 소리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오금 떨고 있다가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자의 입에까지 들어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정신만 차리면 사자의 입에 들어가서도 먹히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시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7,18절)
사단의 세력은 실제합니다. 무저갱에 결박되었다고 해서 우리 곁에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할 권세와 능력이 무장해제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사단의 노림수는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염려를 가져다주어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진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결정적인 무기는 현재로선 거짓말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앞에 참소할 능력은 결박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짓말로 미혹할 능력은 아직도 막강한 것입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영적전투에서도 통하는 진리입니다. 물론 사단은 무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갈 수 없습니다. 단지 우는 소리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과 염려를 가져다주기만 할뿐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적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각의 영역입니다. 생각을 지킬 수 있다면 결코 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자 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단이 공격하는 영역은 우리의 생각이란 영역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영역 역시 생각의 영역입니다. 생각은 치열한 영적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러면 생각 혹은 마음이란 전장(battlefield)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10절) 여러분은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하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보고 그 사람의 속사람이 강건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겉사람의 강건함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음식을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병에 대해 저항력이 강하고 어느 정도 근력이 있고 등등으로 판단하지 않습니까? 반면 속사람의 강건함은 쉽게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은 무엇으로 판단할까요? 저는 생각의 건전함으로 판단합니다. 생각을 건강하게 하면 속사람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하나님의 진리에 기반하여 있는가를 유심히 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얼마나 닮아있는가를 봅니다. 그것이 강건한 속사람의 모습입니다. 강간한 속사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점검할 줄 압니다.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러한 강건함은 자기 힘과 노력과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대게 이러한 강건함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주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해지게 되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연습이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줍니다. 강건한 속사람을 가진 사람은 생각을 생각할 줄 압니다. 그 생각이 얼마나 건전한지 분별할 줄 압니다. 영적전투의 관건은 생각에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생각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단이 노리는 것은 거짓말로 우리의 생각을 진리에게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세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앞에 “마귀의 궤계”란 단어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단어가 병행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보시면 이해가 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귀의 궤계란 마귀가 주는 생각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전투란 마귀가 주는 생각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분별해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싸움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사람의 생각인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인지 분별하지 못한다면 결코 영적전투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의 최고 최대의 무기는 바로 거짓말이란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마귀가 집어넣어주는 거짓말을 분별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는 것! 진리의 기반 위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묵상해야 할 영역을 일곱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서는 것입니다. 14절에 “그런즉 서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다는 말은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따라 떠밀려가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들을 일단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든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무슨 생각이든 점검하고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야 할 영역은 진리입니다.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이 내게 얼마나 유익한지 생각합니다. 혹은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는 것을 가리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셋째, 우리는 의를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호불호가 아니라 의불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의(義)인지 알려고 애써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분명히 계시되는 하나님의 의를 알려고 애써야 합니다. 값없이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의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보면 그가 의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우리는 복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특별히 평안을 주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묵상할 때 복음은 묵상하는 사람에게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복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언제입니까? 그리고 복음이 주는 평안을 경험해본 적이 언제입니까? 우리가 복음을 생각한다면 복음이 주는 평안이 무엇인지도 알 것입니다. 이 평안을 놓쳐버리면 온갖 세상 염려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는 세상에 자신을 방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믿음을 주는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해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사단이 주는 모든 불화살을 소멸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원수가 쏘아대는 불화살은 의심, 정욕, 불신, 미움 등의 화살이 있습니다. 한번 미움의 화살이 마음에 꽂히게 되면 좀처럼 치유가 어렵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지붕위를 서성거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왕국의 부귀영화를 묵상하다가 그만 정욕의 화살에 맞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원수의 그 어떤 불화살도 넉넉하게 이겨냅니다. 여섯째, 구원의 영광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묵상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가장 취약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머리입니다. 머리는 가장 연약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영광을 묵상하는 한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그 말씀은 내 안에서 성령의 검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어떻게 물리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오로지 “기록되었으되”라고 성경말씀을 단지 그대로 정확하게 인용하시면서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릴 적부터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면 광야와 같은 상황, 그리고 40일간 굶주린 극한의 상황에서 그와 같이 반응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성령의 검으로 내제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상황에서 성령께서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때 예수님을 본받아 인용하면서 고백하게 될 때 내 입에서 성령의 검이 되어 원수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진리, 의, 복음, 약속, 구원, 그리고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전신갑주로 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이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행동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효과가 없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원인은 사고방식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궤계, 즉 사단의 거짓말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잠재된 능력일 뿐이지 실제로 그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고하는 훈련을 스스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왜냐면 사단의 공격은 늘 우리의 사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영역에서 사단의 공격을 항상 허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패배할 이유가 없는데도 항상 패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이 시간 점검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강건한 속사람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싸움의 대상을 잘 파악하셔야 합니다. 승리의 관건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언제나 거짓말, 다시 말해서 잘못된 생각들, 진리에 기반하지 않은 생각들을 우리에게 집어넣어줌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곧 전투이고 생각이 오가는 마음이 전장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어주는 사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은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만 명심하여도 우리는 영적전투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싸움의 대상은 잘못 짚기 때문에 전투에서 넘어지고 패하고 맙니다. 12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단의 조직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어두운 세력의 두목은 사단입니다. 사단이나 마귀는 같은 말입니다. 그는 원래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온 땅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세를 부여받은 사람을 시기하게 됨으로써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타락하게 될 때 자기 밑의 부하천사들을 데리고 타락했습니다. 타락한 천사장과 천사들은 사람에게 접근하여 사람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권세를 잃어버리게 하고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듭니다. 사단과 그 추종세력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사단의 능력을 제한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에게 감당할 시험 외에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사단의 능력을 역이용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고 당신의 백성들을 정금과 같이 단련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의 세력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음에도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원수의 조직을 보세요. 첫째, 정사입니다. 그들은 통치자들 뒤에서 일하는 영들입니다. 둘째, 권세입니다. 그들은 지역을 장악하는 영들입니다. 셋째,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사상이나 이념이나 잘못된 전통과 관습을 이용하여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영들입니다. 넷째, 하늘에 악한 영들입니다. 그들은 말씀과 기도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둠의 영들이 우리가 씨름해야 할 대상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단에게 속아서 사람과 싸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과 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단의 전략에 속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YWAM에서는 영적전쟁에 대해서 강의는 해도, 구마 혹은 축사훈련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그것은 사고방식입니다. 사고방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단의 최고의 무기는 거짓말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무기는 진리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세계관과 영적전쟁이란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 바꿔야 산다는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영적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 바로 온갖 생각들이 오가는 마음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생각과 마음을 지키십시오. 우리의 생각을 지키는 한 우리는 결코 사단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여리고성과 같이 사단이 견고하게 세운 요새들을 허물어뜨리는 믿음의 용사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들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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