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한 메시지 스물 세 번 째..
우리 마음이야 말로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는 살벌한 전장이란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회복이란 다름 아니라 전쟁터와 같은 우리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마음이란 전장에서 진리로 승리하는가 입니다.
마음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김광락 선교사 올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본문: 시25:12-14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전도자는 전도서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인생의 본분이라고 할 때 ‘본분’이란 말은 ‘전부’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명령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은 사람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마음 중에서 최고의 마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모든 지식 중에서 최고의 지식이며 가장 근본적인 지식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세상에서 아무리 두뇌가 뛰어나고 명석하여 박사학위를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또 얼굴이 아무리 예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를 진주보다 훨씬 보배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31:30) 욥기 28장을 보면 지혜와 명철이 어디서부터 나오는가를 탐구할 때 주님께서 주신 음성은 이것입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욥28:28)
이렇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배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한번 조사해보기를 부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탐구할 수 있는 최고의 탐구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대해서 다 다룰 수는 없고 몇 가지 중요한 요점만 다루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흔히 그 의미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과 함께 친밀한 관계를 누리기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땅을 다스리는 존재,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참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무엇일까요? 다섯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지도 않으시고 타협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탁월하며 아무 부족함이나 흠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절대적인 완전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할 때 우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도 같이 갖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 아름다움과 영광과 탁월하심과 인간의 부족함을 온전히 채워주시는 충만하심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시험해보시기 위해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일을 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갖고 있는가 점검해보길 원합니다.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명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태도를 생각할 때 손해가 크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단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에 정욕을 품고 있지만 간음죄나 음란의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그 다음 태도는 율법적으로 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직 편안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매주일 교회도 출석하고 십일조도 꼬박 바치며 빚진 것을 즉각 갚을 줄도 알고 가진 것 중에 일부를 가지고 구제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없을 수 있습니다. 행위 속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나 미전도 종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는 무관심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기적인 죄와 자기 의,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고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세 번째 단계의 태도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되풀이해서 짓는 죄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는 사람입니다. 원인을 찾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기로 결정하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왜냐면 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자유케 되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면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해봅시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깨뜨립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죄를 씻어버려야 하고 피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란 하나님이 죄를 보시는 것처럼 죄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것만큼 죄를 미워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란 죄에 대한 생각을 돌이키고 마음을 바꾸며 생활까지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갖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바로왕이나 사울왕은 죄를 고백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경우인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불가능한 것은 교만의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죄에 대한 고백은 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참된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이기는 비결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둘째,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즐거이 그리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경외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종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불순종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얼마나 자신을 자유케 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려면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불순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려면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의 영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과 거룩하심을 보여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즉시, 기쁘게, 그리고 온전하게 순종하고자 하는 커다란 열정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시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그분보다는 내가 하는 혹은 하려는 일에 더 큰 강조를 둔다면 근본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안다면 우리는 때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위가 주님께 대한 순종의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게 되어 하나님과의 가슴 설레는 친밀감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진정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즐거이 그리고 온전하게 순종하려고 할 것입니다. 온전한 순종이 아니면 불순종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사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명령하시기를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왕을 살려주고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좋은 것을 남기고 다른 것을 진멸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합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삼상15:10) 사무엘이 사울에게 물을 때 사울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우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 그러나 사무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만 순종한 것은 불순종과 같은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한 좋은 명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순종과 같은 것입니다. 사무엘의 이 책망을 듣고 사울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음을 솔직히 털어놓게 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다.”(삼상15:24)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불순종의 원인입니다. 온전한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온전한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에게서 본 것처럼 온전한 순종을 어렵게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더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측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25절에 보면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반비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란 자신의 해동에 대해 하나님의 반응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의 반응을 더 의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사람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스스로를 덫에 가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반응만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하나님의 반응을 더 신경썼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비판을 많이 받을 정도였습니다. 어떤 단체나 어떤 교회든지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쓰는 분위기가 강한 곳에 주의 성령의 임재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보다 쉽게 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경쓰며 염려하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다는 증거인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 평가한 말들이 계속 신경쓰이고 떠오르고 묵상이 된다면 자신에게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대해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자유하게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일을 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그리고 결과를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을 의식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구하는 데 온 마음을 쏟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자유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일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지, 아니면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지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그때에 우리의 경험과 믿음의 수준에 따라 시험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집중하면서 나아간다면 우리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로서 하나님을 의식하느냐 아니면 사람을 의식하느냐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연단을 통과한 사람에게 더 큰 권위와 능력과 지위를 부여해주십니다! 한번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는 것에 얼마나 예민한가? 혹은 나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에 얼마나 주리고 목말라 하는가? 그렇다면 내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반드시 올무에 걸리게 된다는 것을. 반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잠시 비판과 오해란 시련을 통과하겠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당신의 권위를 부여하셔서 큰 일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일하는 자가 되도록 지혜를 달라고 구합시다.
넷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를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비방하는 것을 하나님은 눈여겨보십니다. 특별히 영적 권위자들을 비방할 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사울과 다윗을 보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태도를 취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 권위자를 비방하게 되면 성령이 근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근심하시면 내 영혼이 메마르게 됩니다. 만일 영적 권위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먼저 모든 상황을 확실하게 알고 그렇게 판단하는지 엄격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의 중심을 살피셔서 혹시 내 마음속에 권위자에 대한 반감이나 비판의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는지 보여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권위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권위자를 통해 받았던 축복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권위자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셔서 진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권위자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전혀 없다면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다른 영적 권위자들에게 그 문제를 보여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그를 내어맡기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손에 두 번씩이나 사울을 붙여주셨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지만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붙잡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24:6)
다섯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면서 기다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자신이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때를 기다릴 줄 압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란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에 모든 일이 때가 있고 기한이 있습니다.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한번은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는데 상황은 급하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두려워서 사울의 곁을 떠나기 시작하고 전열은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사무엘이 와서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해버린 것입니다. 사무엘이 와서 사울을 책망합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삼상13:13,14)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에 잠시 망명하여 살고 있었을 때 자신이 전쟁에 나간 틈을 타서 아말렉이 침공하여 자신의 모든 가족들을 포로로 잡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다윗을 따라다닌 모든 용사들이 돌을 들어 다윗을 치려고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상황이 어렵고 위급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 순간에 다윗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급할 때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가? 사울과 다윗이 각각 보여준 태도가 서로 얼마나 다릅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위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동합니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압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하는 자가 받을 축복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어떤 축복을 받는다고 말합니까? 첫째, 우리가 택할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수 없이 많은 선택의 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자가 성령의 지도와 안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 영혼에 평강이 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손까지도 견고한 축복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는 것은 저주를 끊고 축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하나님의 친밀감이 더해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친근히 하시며 친밀감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인생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배를 품고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오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죄에 대한 태도가 하나님의 태도와 같은지, 사람을 두려워하는지, 권위자에 대한 비방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아무리 위급하여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지를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달라고 은총을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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