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메시지 스물 두 번 째입니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강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영적 전투 (2)
본문: 눅10:17-20
오늘은 영적전투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는 영적전쟁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면서 원수들은 이미 이를 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심으로써 우리의 신분과 지위는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장되십니다! 할렐루야! 만일 우리가 앞서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따라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큰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작은 전투에서도 넉넉하게 이기고 남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있다고 승리가 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앞서서 달려가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요한사도가 본 놀라운 환상은 이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에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19:11-16) 우리는 이 그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의 신분과 위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늘군대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하늘군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망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늘군대임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이미 승리한 자들임을 잊어버리고 도리어 패배의식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이러한 패배주의나 열등감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몰아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주 안에서 누군가 하는 것을 분명히 하십시오. 여러분의 정체성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삶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노력하여도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원수이며 교회의 원수인 사단의 전략이 무엇입니까? 사단이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신분과 정체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의 명수입니다. 사단의 최고 최대의 무기는 바로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교묘한 거짓말에 속아 우리가 누군지 잊어버리게 될 때 우리는 사단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들어도 사고방식은 바뀌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말씀 많이 들어도 사단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진리 안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안에서 누군가? 하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사단이 가장 두려워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애굽에서 살던 때의 사고방식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어려움을 스스로 자초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애굽인처럼 생각하면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생활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 우리 삶속에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왕같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하늘군대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상에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썩어 없어질 세상영광을 바라보면서 열등감 속에서 힘들어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변했지만 우리의 사고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단이 우리를 갖고 놀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새롭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을 떨쳐버리고 분연히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수세적인 삶에서 공격적인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복음과 권세를 알고 활용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군복을 입고 군대에 입대했고 총을 지급받았지만 총을 쏠 줄 모르는 군인들과 같은 상태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함으로써 이미 하늘군대에 입대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늘군대에 입소하는 바로 그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미 받은 권세를 알지도 못하고 활용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권세를 알고 활용함으로 누리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군대가 되었고, 이미 놀라운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세는 뱀과 전갈을 누를 수 있는 권세입니다. 그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수의 거짓말에 속아서 두려움에 스스로 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칠십인을 세우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파송하셨습니다.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영적전투는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동역자가 없다면 여러분은 이미 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짐을 나눠지는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은 이미 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믿음의 동역자를 구하십시오. 이것은 배우자문제보다 급선무인 것입니다. 그 칠십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권세는 보내는 자로부터 나오는 법입니다. 내가 가진 권세는 나를 보낸 자께서 주신 것입니다. 내 힘과 노력과 수고로 권세를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권세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일 주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처럼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권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하는 학생이든 일을 하는 직장인이든 그 자리로 보내신 분이 누구인지를 잊지 마십시오. 나를 보내신 분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바로 이것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내가 보냄받은 자인지 스스로 자문해보십시오. 내가 보냄 받은 자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보십시오. 주님이 나를 그 자리로 보내셨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면 주님께 여쭈어보십시오.
주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살 때 반드시 큰 기쁨의 추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칠십 인들이 기뻐 돌아오게 된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의 기쁨은 대단했습니다. 귀신들이 자기들에게 항복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기쁨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주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살아간다면 반드시 이러한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절)”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결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사단은 이미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 앞에 귀신들이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보내신 분이 그들에게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보냄 받은 자는 반드시 주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9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이 이 놀라운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사단은 그 놀라운 권세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고 있습니까? 사단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권세를 알고 사용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왕국이 무너지게 될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이미 받은 권세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귀신들을 제어할 권세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권리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온갖 거짓말로 대적하는 귀신들을 제어할 권세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고,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채 사단의 거짓말에 속아서 살아가는 자녀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권세를 알고 그 권세를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둠의 영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능력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능력이 대단하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의 영광이 커보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의 능력과 사단의 능력이 커보이는 것입니다. YWAM에서는 영적전쟁에 대해서 강의는 해도, 구마 혹은 축사훈련은 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 다섯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곧 권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할 때 귀신들은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곧 능력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의 명수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델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하기만 해도 귀신의 세력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공격무기가 바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묵상은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검을 실제로 가지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경건의 훈련은 없습니다. 셋째로, 성령의 능력으로 원수를 제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12장참조)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항상 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항상 사모해야합니다. 우리가 영적전투의 현장에 나가기 전에 먼저 항상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항상 감사하고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찬송하며 자백하면서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피가 곧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야말로 성도가 항상 찬송하고 의지하고 자랑해야 할 능력입니다. 보혈이 아니면 우리 죄가 깨끗해질 수 없으며 보혈이 아니면 우리가 정결해질 수 없습니다. 영적전투의 현장에서 보혈의 능력을 찬송하면서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다섯째로, 진리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어둠의 세력을 이깁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희를 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말하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진리의 말씀은 어둠을 몰아내는 빛과 같습니다. 가능하면 모일 때마다 세상적인 이야기를 줄이고 진리의 말들을 많이 하십시오. 잡담보다는 영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십시오. 우리가 평소 어떤 말을 나누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단은 온갖 조직을 다 동원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면서 우리가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세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한 사단은 결코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 진리를 이야기하면 사단은 두려워하지만 모일 때 육적인 이야기, 세상적인 이야기, 진리가 아닌 것들을 말하기 시작하면 사단은 안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단은 교회가 영적전투를 해야 할 진정한 적을 보지 못하게 하고 사람과 싸우게 하고 사람과 갈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원수의 전략은 다양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에베소서를 보면 원수의 조직에 대해서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첫째, 정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자들 배후에서 일하는 영들입니다. 둘째, 권세가 있습니다. 그들은 지역을 장악하고 역사하는 영들입니다. 셋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그들은 사상이나 이념이나 잘못된 전통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는 미혹의 영들입니다. 넷째,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 그들은 기도와 말씀과 같이 기본적인 영적인 삶에 역사하여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미혹의 영들입니다. 원수들의 전략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진리에 맞게 변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단지 사고방식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서도 역사하는데 특별히 기쁨의 감정을 왜곡시킵니다. 사단은 기도하지 못하도록 세상 쾌락과 돈과 권력으로 미혹합니다. 또 진리를 묵상하지 못하도록 세상의 복잡한 일과 부귀영화로 우리의 생각을 흐리게 합니다. 기쁨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른 것들로 대신 유혹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중독인격이 되어갑니다. 사람들이 사단이 가져다주는 쾌락의 미끼는 물게 되는 이유는 삶의 기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기쁨을 키우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독점적인 관계는 매우 위험합니다. 열린 관계를 통해서 기쁨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만날 때 웃으면서 밝게 인사하는 훈련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대구에서 살면서 그리고 대구시의 거리를 거닐면서 웃으면서 다시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해봅니다. 아주 심각합니다. 어느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느낀 첫인상은 화가 난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과 적극적으로 사귀면서 기쁨을 얻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면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존경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훈련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발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서로 스킨십을 자주 나누어야 합니다. 스킨십이 부족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대게 성중독에 빠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상대방의 기쁨을 키워주는 훈련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럴 때 내가 기쁘다”고 격려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위가 아닌 그 사람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주는 일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영적전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기쁨을 키워야 합니다. 노동의 기쁨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시16: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충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영적전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원수의 전략은 참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쾌락의 미끼를 물게 함으로 중독성 인격으로 인생을 파탄에 몰고가는 것입니다.
또한 원수의 전략은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을 가지고 두려워하는지 모릅니다. 모두 사단의 거짓말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믿으면 언제나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사단의 전략은 이러한 두려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366번이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리가 우리의 사고방식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처럼 원수는 잘못된 사고방식과 쾌락과 두려움에 우리를 가두어놓아서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지 못하며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를 활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원수들이 우리를 가두어놓기 위해서 우리 마음 안에 견고한 요새를 세워놓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것들을 분별하면서 하나씩 깨뜨려나가야 합니다. 원수가 세운 견고한 진들을 부숴뜨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원수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겸손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면서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강력한 승리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도 역시 강력한 승리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기도 역시 승리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반대정신이란 말이 있습니다. 악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복수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입니다. 삶으로 영적 전투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승리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의 진통을 감내하는 것 역시 승리의 강력한 방법이 됩니다. 예수님 역시 오래 참음으로 응답을 받았다고 히브리서 6장 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함과 믿음과 오래 참음이 있어야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께서 원수의 공격을 허락하실 때도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오는가? 왜 원수의 공격을 허락하시는가?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정립시켜주시는 것을 목표로 하십니다. 우리의 목표는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고난의 풀무속에서만 경건의 금은 탄생한다"라고 잔느 귀용이란 분이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적을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셔서 무찌르게 하십니다. 셋째, 흑암의 세력을 우리에게 넘겨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여러분에게 공격해온다고 느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예배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찬송하십시오. 그 다음 분별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지식을 받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혹시 반복되는 죄와 습관이란 견고한 진이 있는지 발견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것, 즉 묶임들이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 다음 회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백하면서 정결케 되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혈의 능력 선포하면서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가지고 원수들을 향해 주님이 주신 권세들을 사용하면서 묶고 푸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선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분별력을 주시도록 민감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전투에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20절)”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원수들을 제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우리의 기쁨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이야말로 우리의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원수들을 제어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만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자랑은 우리의 영원한 신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놓쳐버린다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영적전쟁에서 패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을 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합시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기뻐합시다. 그리고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서 기뻐합시다. 그리고 그 기쁨을 누리며 함께 나눕시다. 그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 곧 진정한 승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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