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강해설교는 새벽에 해야 제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시편23편 강해(2)
본문: 시23:2절 김 광 락 목사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필립 켈러 라는 사람은 양이 누우려면 네가지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로, 양이라는 동물은 어떤 동물보다 겁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웬만큼 안전해지기 전에는 좀처럼 눕지 않는다.
둘째로, 양들은 자기들끼리 잘 싸우는 동물이기 때문에 눕는 경우는 드물다.
셋째로, 양들은 파리나 기생충으로 괴로울 때도 눕지 않으려고 한다.
넷째로, 배부르게 꼴을 먹지 않으면 누우려고 하지 않는다.
▶저는 양의 습성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습성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목자와 양에 관련된 단어들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우리는 다 양같아서”라고 했지 않습니까? 양의 묘한 습성이 꼭 내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양들은 겁이 많고, 자기들끼리 잘 싸우고, 파리나 기생충으로 고통을 당하는데 예민하고, 배고파하고, 그래서 양들은 눕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예민하고 조바심이 많고 겁도 많은 양들을 눕게 만들려면 목자가 이만저만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렇게 우리를 눕도록 하기까지 주님이 얼마나 애쓰시고 계시는지를 강조하고 있는겁니다.
■우리가 눕기 위해서 주님께서 애쓰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두려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양들은 맹수뿐만 아니라 작은 발발이 개한테도 겁에 질려서 이리저리 혼비백산 놀라 도망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겁이 많은 동물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목자의 주된 사명은 곰이나 사자나 늑대들이 공격해오면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양떼들을 지키려고 눈을 항상 뜨고 감시해야 하는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121:3,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하십니다. //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양들로 하여금 눕게 만들기 위해서는 목자가 양떼들이 보는 앞에 서 있으면 양떼들이 안심하고 눕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개를 어릴적부터 키워보아서 잘 압니다. 집주인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용감해지는지 모릅니다. 낮선 사람이 오면 개는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막 짖어대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이 옆에 있으면 가만히 있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는 온갖 시련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평안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불행한 일들을 당하고 힘들어 하십니까? 그 속에서도 목자되신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시편4: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곁에 가까이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목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양들을 보호하십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양들은 서로 잘 싸운다고 했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어느 동물사회나 그 집단 내에서는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소들이 모인 곳이든, 닭들이 모인 곳이든, 원숭이가 모인 곳이든 간에, 대게는 위계질서를 가리려고 서로간에 부딪히고 싸웁니다. 양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힘없이 보이는 양이 가까이 있으면 냅다 머리로 부딪혀서 자기 힘을 과시하여 자기 영토를 지키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도 똑 같습니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보이면 깔봅니다. 우습게 봅니다. 자기보다 강하다고 보이면 시기합니다. 질투합니다. 경쟁대상자로 삼습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도 그런 때가 종종 있습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고 하 식의 위계질서에 예민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상처받는 성도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도하게 서로간에 긴장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알력하고 하는 것 때문에 교회는 약화됩니다. 그런데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서로 싸우는 양떼들 앞에 목자가 나타나게 되면 서로 경쟁의식을 버리고 싸움을 그친다고 합니다. 누가 우두머리고 누가 말단이고 구분이 없어집니다. 누가 목사고 누가 평신도이고 구분이 없어집니다. 누가 집사고 누가 권사고 구분이 없어집니다. 누가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는 노력이 무의미해집니다. 누가 앞설려고 하는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 앞에 서시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함께 주님 앞에 서면 남녀노소 높고낮음이 없어지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주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고서 여전히 누가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다든지 하면 주님이 막대기로 호되게 때려주실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함께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면 서로 사랑하고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서로 경쟁하고 서로 상처주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민감하게 느낄 때 우리 안에 있는 이기적이고 저속한 욕심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셋째, 목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목자는 양들이 해중이나 벌레에 시달리지 않도록 신경씁니다.
양떼들은 털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벌레나 해충이 많다고 합니다. 먼지가 많아서 아주 더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들이 편안히 눕도록 하기 위해서는 목자가 양들을 깨끗이 청소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여러가지 염려들을 처리하시는데 부지런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을 다 맡기기만 한다면 주님이 알아처 처리해주실줄 믿습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고민이 무엇입니까? 근심하게 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부지런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문제를 다 맡아 처리해주실줄 믿습니다. 혼자서 끙끙거리지 마십시오. 주님께 다 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편안히 눕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저의 힘이 부족합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겨낼 수 없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십시오.”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넷째,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하시는 일은 양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십니다.
본문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목축업은 기후가 건조하고 매마른 중동지방과 같은 곳에서 번성합니다. 다윗이 살았던 시대에 푸른 초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푸른 초장에 양들을 눕게 하기 위해서는 목자가 얼마나 푸른 초장을 찾기에 노력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목자의 주된 임무는 어떻게 하면 풍성한 목초지를 개발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가 누울 수 있는 푸른 초장을 찾는데 누구보다 열심을 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를 위해 애쓰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먹이실 뿐 아니라 우리 목마름을 해갈해주신다.
다윗이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쉴만한 물가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해결하는 방법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사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물은 귀하기 때문에 주로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양들이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내리는 이슬의 양이 제법 많아서 농사하는데도 결정적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양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목자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지런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찌기 일어나 양들을 몰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새벽에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로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는 새벽이슬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요7:37절) 새벽시간에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2절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주님이 더 열심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부지런하고 근면한 것보다 더욱더 주님은 부지런 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어떤 일을 열심히 하십니까? 우리의 원수들을 물리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여러 가지 염려와 근심을 맡아 주십니다. 우리가 배부르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목마르지 않도록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매우 열심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보다 더 나를 위해 열심을 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런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의식하고 산다면 우리 마음은 참으로 평안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도 주님이 그곳에 계십니다. 내가 답답해하는 바로 그곳에 주님도 함께 계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는 주님도 거기 계십니다. 바로 이 자리에도 주님은 와 계십니다. 주님은 항상 거기 계십니다. 이 사실을 의식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사람이 참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내가 힘들어 하는 바로 그곳에 주님도 서 계시는군요.
내가 고통당하는 바로 그곳에 주님도 서 계시는군요.
내가 가는 곳에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먼저 가 계시는군요.
내 가는 길 주님께 맡깁니다. 나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의 임재를 깨닫는 이 새벽이 되게 하소서.
새벽이슬과 같이 부드럽게 그리고 고요히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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