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새벽기도주간을 담당할 때 15분 설교를 위해 하루 종일 묵상하고 설교준비하던 그때가 목회자로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시편23편 강해(3)
본문: 시23:3절 김 광 락 목사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오늘 다윗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자세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 영혼에 생명의 떡과 생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고 기도하면 기도도 수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서 하루를 살아가면 하루가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깊고 넓게 아는가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건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하기 위해서 양들의 모습과 목자의 모습을 비유로 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을 다윗은 어떻게 그려주고 있습니까? 여러분, 양들의 모습을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서 보신 적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소나 돼지나 낙타 등 다른 가축에 비유하지 않으시고 양들에 비유하신 것은 우리가 주의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양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털이 많고 몸뚱아리는 둥글며 다리는 가늘고 짧지 않습니까? 몸통은 큰데 비해서 다리는 짧고 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뭐냐면 양이 한번 넘어지면 일어서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끄러져서 몸통이 뒤집혀서 네 발이 공중에 허우적거릴 때 목자가 즉시 와서 도와주지 않으면 몇시간만에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자주 자기 양들을 세어보곤 한다고 합니다. 세어보다가 수가 하나 모자라면 “어디 쳐박혀서 뒤집혀서 바둥거리고 있는 양이 있구나”라고 즉각적으로 감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이 뒤집혀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 중에 양 아흔 아홉마리는 들에 버려두고 가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려고 찾아다닌다고 했는데 이것은 참 목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뒤집혀서 버둥거리는 양들은 맹수나 독수리들이 덮쳐서 즉시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을 바라볼 때 혹시 누가 뒤집혀서 바둥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라고 유심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사실, 늑대나 독수리 같은 사나운 맹수 역시 그런 양들이 어디 없나? 라고 유심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가 말씀하기를 ‘너희 대적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두루 다닌다’고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면서도 나는 때때로 ‘뒤집혀서 발을 허공에다 허우적거리면서 바둥거릴 수’ 있다는 겁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돌보시는 성도라 할찌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시편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다윗처럼 좌절감과 절망감과 영적침체를 많이 겪어본 사람이 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실 것입니다. 인생이 체험할 수 있는 여러가지 패배와 실패와 좌절과 낙심 그리고 배신과 상처의 아픔 속에서 불안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때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자신을 책망한 적도 많았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같은 사람도 영적침체가 많았습니다.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영적으로 ‘뒤집혀서 버둥거린’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목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가장 살이 찌고 가장 힘이 세고 가장 건강한 양들까지도 뒤집힐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보지 않으면 금방 맹수들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을 평소에 자주 세어봅니다. 그리고 하나라도 모자라면 “어디 뒤집힌 양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에 독수리가 원을 그리면서 맴돌고 있으면 목자는 직감적으로 “뒤집힌 양이 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양들을 세어본다고 합니다. 양들중에 한마리가 없으면 즉시로 왔던 길로 돌아가보면서 뒤집힐 만한 곳을 찾아본다고 합니다. 찾으면 뒤집힌 양을 들어서 바로 일으켜 줍니다. 일으켜 주면서 “야 이 녀석아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줄 아니? 언제쯤 너는 뒤집히지 않을수 있겠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양을 일으켜 준다고 합니다. 오늘 다윗이 말하는 이 본문은 바로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은 영적으로 뒤집힌 우리를 바로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힘으로 일어설수 없을 때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내 힘으로 버둥버둥거릴 때 점점 절망감 속에 빠져들어갈 때 우리 주님이 나타나셔서 우리를 바로 세워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바로 일으켜 주시는 선한 목자되십니다. 우리가 넘어져서 뒤집혀서 바둥바둥거릴 때 주님은 즉시로 우리에게 달려오셔서 우리를 바로 일으켜세우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시는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목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노련한 목자들은 양들이 뒤집힐 만한 장소를 잘 안다고 합니다. 양들은 어떻게 해서 뒤집히게 됩니까?
첫째로, 양들이 잘 뒤집히는 곳은 우묵하게 패인 땅입니다.
양들은 편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푹신하고 우묵한 땅이 있으면 그곳에서 눕는데 그럴때 잘못해서 뒤집히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잘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신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없고, 편안하고 인내할 필요도 없고, 고생할 필요도 없는 그런 곳에 우리는 정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곳에서 우리는 뒤집힐 가능성이 제일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주를 위해 핍박받을 때는 얼마나 우리 믿음이 뜨거웠습니까?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니까 영적 위기가 찾아오지 않습니까? 내가 성공하고 인정받으니까 바로 그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오지 않습니까?
둘째로, 양들이 잘 뒤집히는 곳은 가시덤불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양들은 털이 많기 때문에 가시덤불에 걸려 넘어져서 잘 뒤집힌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거추장스러운 옛 성품, 옛 습관, 옛 사고방식 때문에 자주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털때문에 자주 넘어지는 양들은 목자가 털을 깍아 준다고 합니다. 예리한 칼로 털을 밀때는 양들이 종종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피도 납니다. 눈물도 납니다. 하지만 목자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양들의 생명을 위해 털을 민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연단하실 때 그 당시에는 슬프고 괴로울찌라도 그 연단을 거친 성도는 정금같이 훈련받아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양들이 잘 뒤집히는 경우는 살찐 양들이 잘 뒤집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는 사람이 사실 이런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왜냐면 마귀의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면 잘 넘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말라비틀어진 양들은 잘 안넘어집니다. 그러나 목자들이 보기에 잘 넘어지더라도 살이 찐 양들이 좋은 것처럼 우리 주님은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또 어떻게 보면 물질적인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잘 넘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많은 근심으로써 찔렀다고 사도바울은 경고합니다.
■ 그 다음 다윗이 우리에게 소개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양들은 어떤 동물보다도 습관이 강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양들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계속 같은 길로만 다닌다고 합니다. 계속 같은 길로 다니게 되면 길이 패여서 결국 도랑이 되고 도랑에는 온갖 벌래와 기생충으로 득실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양들은 한곳에서만 풀을 계속 뜯기 때문에 풀의 뿌리까지 뜯어먹어서 초장을 황폐화시킬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풀이 자라나야 하는데 뿌리까지 먹어치우면 땅 자체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양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목자는 양들이 너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계속 초장을 옮겨다니도록 한다고 합니다. 양들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양들을 인도하는 것이 목자의 평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만약 양들이 땅을 황폐하게 했다면 목자의 명성도 땅에 곤두박질할 것입니다. 목자는 자기 명성을 위해서라도 양들이 한곳에서 계속 머물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한길만 다니도록 하지 않습니다. 풀뿌리까지 다 먹어치우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계속 또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 다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유명한 목자, 지혜로운 목자라면 양들이 무엇을 하든 내버려두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과거에 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제멋대로 살아가고 제멋대로 싸우고 마음대로 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을 예수께서 책망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의 전통, 과거의 전해져온 규칙에 얽매인 나머지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형식이나 규칙이나 습관이나 전통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는 땅이 황폐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온갖 기생충들이 득실해지게 되어서 양들도 점점 쇠약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선한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가 한 곳에서 쳐박혀서 사는 것보다 계속 이동하면서 점점 새로와지는 것을 경험하기를 바라십니다. 나는 어느 초장으로 가야할 지 알지 못하지만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갖고서 나를 인도하십니다. 내가 계획을 세울지라도 내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내 길로만 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같이,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지 제길로 갔거늘...” 우리는 우리 방식, 옛날에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그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의 그런 편견과 고집을 꺽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날마다 새로와지기를 바라십니다. 옛날에 지나다닌 그런 길로만 가고, 옛날에 먹었던 초장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려고 하고, 옛날에 가졌던 사고방식대로 앞으로도 그렇게 고집하면서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점점더 황폐해지고 쇠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만을 자랑하고 그때 그시절만 추억하고 더 이상 발전이 없다면 주님이 근심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과거를 자랑하여 그때가 좋았다고 추억하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사도바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성공, 과거의 은혜, 과거의 체험에만 얽매이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다 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푯대,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가나안 새 땅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이 새벽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기도합시다.
우리가 뒤집혀서 바둥거리고 있을 때 가만히 다가오셔서 우리를 일으켜주시고 옛삶을 버리고 미래의 새로운 삶을 위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우리 주님, 선한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오늘도 선한 목자되신 주님, 우리를 살리소서.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소서. 새소망과 새목표를 주시옵소서. 내 뜻 버리고 주님의 뜻 발견하게 하시고 내 길 버리고 주님의 길 가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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