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시편23편 강해(4)-어떤 상처도 두렵지 않습니다.

등불지기 2012. 2. 19. 06:31

시편23편은 아무리 봐도 늘 새롭습니다^^

 

시편23편 강해(4)

본문: 시23:4절 김 광 락 목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오늘은 4절 말씀 전반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시편 23편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그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시편 23편 전체는 목자가 양을 데리고 나가서 먼 길을 여행하다가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묘사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1절은 시편의 제목이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절부터 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절에는 길을 떠나면서 생기는 일을 소개해줍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제 4절에 이르러서는 가장 험한 길을 통해 목자는 양들을 산지에 좋은 목초지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6절에 보시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쉽니다. 목자가 양들을 돌보는 일련의 과정을 한편의 드라마이면서 기나긴 여정의 모습으로 이렇게 짧으면서도 가장 함축적으로 소개해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23편 말씀은 모든 성도의 구원과 성화와 영화를 보여줍니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목자들이 양을 치는 배경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여름이 찾아오면 목자들은 양들을 데리고 산지로 양들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팔레스타인 산 꼭대기에는 아주 좋은 목초지가 양들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산지에 있는 초장으로 가려면 반드시 계곡과 험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하는 겁니다. 산지에 올라가면 여름을 지내면서 목자는 양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풍성한 꼴을 먹이는 겁니다. 그곳에서는 목자가 양들을 일대일로 보살피면서 깊은 교제를 나눕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면 다시 양들을 데리고 내려와서 자기 집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이 기나긴 여정을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 다윗은 목자로서 이 긴 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다윗을 찾았을 때 다윗은 형들과 함께 집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양들을 데리고 산지에 있는 목초지로 가고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윗이기에 양들을 데리고 험한 계곡과 골짜기를 거쳐서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여정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골짜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산꼭대기에 있는 초장으로 가는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이려면 반드시 이 협곡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이 골짜기에는 강의 위협이 있고, 눈사태가 날 수도 있고, 바위들이 굴러서 양들을 덮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사나운 맹수들이 바위 뒤에서 양들을 덮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큼 노련한 목자가 아니라면 이 길을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천성에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겁니다. (요즘 우리나라 학교를 보세요. 대학에 들어가기는 어려워도 졸업하기는 엄청 쉽지 않습니까? 그러나 외국 대학교들을 보세요.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기는 어렵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성길로 접어들기는 쉬워도 천성문에 들어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여러분,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참조로 더 말씀드리자면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지에 난 길을 가리켜서 ‘족장의 길’이라고 하고, 평지에 난 길을 가리켜서 ‘왕이 길’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족장들은 항상 이 산지에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벧엘, 브엘세바, 모리아산, 예루살렘 시온산, 헤브론산, 등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복을 주신 곳은 항상 산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지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평지에는 소돔, 고모라, 블레셋, 등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은 비옥한 땅이 있는 평지가 아니라 험한 산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산지에 있는 집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산지를 택합니다. 평지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롯은 비옥한 땅 소돔으로 내려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같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비옥한 땅으로 내려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세상으로 내려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세상에서 돈 많이 벌려고 노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편안한 삶을 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자리로 우리 자신을 내몰아야 합니다. 고난 없는 상급은 없고 시련 없는 영광은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 산지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시편에는 나를 높은 곳에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족장들의 역사를 알아야 이해되는 원리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 여기서 다윗이 노래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왜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하십니까? 오늘 새벽에 두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친교의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험한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 협곡을 지나가야만 풍성한 꼴이 있는 초장에 들어갑니다. 이 사망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목자되신 주님과 깊은 영적 친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만 우리의 믿음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친교의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맛보기 위해서 반드시 필수적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고 그냥 꼭대기로 바로 올라간 양은 지금까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고 천성문에 들어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통과하셨을 때 부활과 승천의 축복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여러분을 저 푸른 초장 위로 인도하고 계시는 중이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순간순간의 죽음의 그림자들, 실망과 좌절, 그리고 어둡고 험악한 나날들이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을 만질 수 있는 지름길이 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서 부른 찬송가 가사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주여 인도하소서.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아멘. 극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이런 찬송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평강의 임재를 주실 줄 믿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찬송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다시금 맛보려면 우리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양들은 이 골짜기를 들어서면 움찔거립니다. 벌써 겁에 질리고 맙니다. 양들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해서 다른 길로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없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말이 “3D 기피현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길 외에는 없습니다. 임마누엘의 신비한 체험과 은사와 은혜들을 다시금 회복하려면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좀더 높은 영적 경지로 오르려면 이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합니다.

 

둘째,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는 이유는 바로 이 골짜기에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철 이동하는 양들에게는 이 물이 결정적으로 힘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좋은 양질의 목초가 양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와 여러 가지 신비하고 신령한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저의 어릴 적 신앙생활할 때를 돌아보던지 아니면 주위에 신앙생활하는 분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고생하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그렇게 핍박당하고 할 바로 그 때에 얼마나 풍성한 은혜의 체험을 하는지 모릅니다. 가장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들을 얼마나 많이 체험하는지 모릅니다. 그순간 우리 영혼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강해집니다. 영력과 영권을 어디서 얻느냐? 바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 바로 그 때에 얻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맛보기 원하십니까? 주님을 따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통과해보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골짜기를 본능적으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통과한 사람이 큰 영적 축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영혼이 새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새로운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까? 과거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내 인생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나날 들 가운데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나를 어떻게 돌보셨는지 생각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용기가 내 마음 속에 흘러 들어오게 될 줄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의 하몬드 제일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신 Jack Hyles목사님은 설교단에 오르기 전에 항상 과거에 가장 어려웠을 때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본 뒤에 강단에 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강단에서 얼마나 성령충만하게 말씀을 증거하게 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지금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입니다. 주일학교도 수만명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의 방법을 여러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큰 일을 앞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급받아야 할 시기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큰 일을 앞두고 심호흡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내 영혼이 은혜와 용기가 필요하십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 어떤 일을 내게 행하셨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을 새롭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줄 믿습니다.

 

■ 결론을 맺습니다.

양들은 이 골짜기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이 골짜기를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않도록 합니다.

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본 양이 풍성한 꼴을 먹고 튼튼해 집니다.

②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양은 목자와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③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비로소 다른 양들을 돌보아줄 수 있게 됩니다.

④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양은 목자가 함께 하는 것을 가장 많이 체험합니다.

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나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가 가장 힘들 때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어두운 나날들을 보낼 바로 그때에 가장 가까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 기도합시다.

 

선한 목 자되신 주님, 우리가 가장 어려울 바로 그때에 가장 우리와 가까이 계셨던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여 그때 함께 하셨던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다시금 힘과 용기를 내어 주님을 뒤따라가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