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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설교

메시아의 별

by 등불지기 2012. 8. 31.

 

이 설교를 한 지 십 수 년이 넘었네요..

예전에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고등부에서 설교할 때 작성한 원고입니다.

아프리카의 밤하늘은 참 아름답습니다.

수많은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제가 했던 설교가 생각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지식과 지혜의 별이 내 마음속에서 환하게 떠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김광락 선교사 올림..

 

메시아의 별

 

본문: 마2:1-12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왔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고 왔소.”라고 하자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 여기서 문제는 그들이 왜 소동했는가? 기뻐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떨면서 야단법석을 떤다는 말이다. 왜 그들이 소동했는가? 그들이 소동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단순히 놀랐다는 말인가? 밤하늘에 찬란하게 나타난 메시아의 별에 대해 왜 이토록 야단법석을 떠는가? 나는 이 별에 대한 헤롯 대왕의 관점과 동방박사들의 관점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의 관점과 서기관의 관점에 대해서도 보자.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들어보자.

 

1. 헤롯의 시각

헤롯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 이 헤롯은 누군가? 이 메시아의 별이 출현하기 전 헤롯이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는 명목상 유대인으로 전쟁에 많은 공로를 세워 주전 40년에 로마로부터 ‘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이때 그의 나아 30대 중반이었다. 헤롯은 유대인으로부터 인정과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건축사업을 벌였다. 특히 주전 20년에 예루살렘 건축사역을 대대적으로 시작하였다.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왕이란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자마자 돈을 만들었는데 그 동전이 최근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헤롯의 동전에는 투구의 꼭대기에 ‘별’이 있고 그 ‘별’에 종려나무가지들이 절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별은 메시아를,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헤롯은 자신을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아의 별로 인식시켜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주장했고 이것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것을 의심하는 자들을 미워했다. 심지어 생애 말년에 (예수님 탄생 직전에) 자기의 세 아들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심 때문에 세 아들을 처형시키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다.

 

자, 그런데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 “그의 별”을 이야기하자 헤롯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온 예루살렘이 듣고 크게 소동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 그래도 온 예루살렘은 헤롯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역모의 이야기에 시달려왔고 어수선한 상태에서 또 그런 이야기를 듣고 또 무슨 처형이 일어날 줄로 알고 소동한 것이다. 헤롯이 듣고 놀란 것은 자기가 유대인의 왕이요 메시아의 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메시아의 탄생을 믿지 않았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헤롯은 자기가 만든 메시아의 별을 마음에 없애기 전에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없었다. 즉, 자신이 구원받을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마나 제각기 나름대로 메시아의 별을 그리고 있다. 자기를 숭배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그것, 자기주장의지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면 자기가 벌여놓았던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혹시 마음속에 별이 있다면 주님 앞에 다 내려놓아야 한다.

 

2. 예루살렘 주민들

자, 그러면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이 소식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들은 무관심했다. 그들은 메시아의 별이 출현했고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여겼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또 누가 헤롯왕의 왕좌를 찬탈하려고 만든 허왕된 이야기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주민들처럼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 삶에 안주하고 있고, 헤롯왕의 통치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만족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예수님의 탄생이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메시아의 별을 보면서도 자기들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메시아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않는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그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유대인 제자들이 무슨 이유로, 어떤 동기로 신약성경이라는 훌륭한 성경책을 지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 동기는 오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이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3.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자, 그러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떤가? 그들은 동방박사들보다 더 정확하게 성경을 알고 있었다. 5,6절을 보라.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성경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메시아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들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이 없는 몸과 같이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죄다. 성경을 알면서도 성경을 믿지 않는 것도 죄다.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은 죄라고 했다.(약4:17) 우리는 우리 양심을 속이면 안 될 것이다.

 

4. 동방박사들

그러면 동방박사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요즘 말하는 점성술사가 아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후손이거나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페르시아 학자들일 것이다.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끌려간 유대인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오면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믿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메시아에 대한 약속들을 찾고 연구했다. 민24:17을 보면, “한 멸이 가까운 장래에 야곱에게서 나와서 다스릴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들은 이 별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성경을 연구했다. 그리고 다니엘서를 읽어보면 언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예언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이러한 예언들을 믿었다. 그리고 예언된 메시아를 만나기를 간절히 열망했다. 벧후1:19에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라”고 했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자,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모습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그들이 3명인지 그 이상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했고, 오실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서기관들이 보여준 것처럼 성경을 단지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나 혹은 생계의 수단으로 연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메시아를 사랑했고, 흠모했으며, 인류를 죄악에서 구속한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리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떠났다. 온갖 역경을 감수하고서라도 메시아를 찾아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것을 기다렸는가?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렸는가? 이 땅에 낮고 천한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가? 어떤 역경과 고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왕이신 그분을 만나 경배하기까지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자, 지금까지 우리는 메시아의 별이 출현했을 때 여러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모두 메시아의 별이 출현한 것을 자기 눈으로 보았고 또 알았다. 그러나 매우 의미심장한 것은 반응들이 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헤롯과 같이 냉소적으로, 자기 기득권에 대한 하나의 도전으로, 자기 삶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위기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동방박사들처럼 굉장한 사건이요 큰 소망이라고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예루살렘 주민들처럼 허왕된, 날조된 이야기로, 자기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 소동을 일으키려는 모함 정도로만 생각하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었다. 서기관들처럼 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적인 무신론자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훗날 마태13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길 가에 뿌려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돌밭이 떨어진 씨는 곧 싹이 나오지만 뿌리가 없어 해가 돋을 때 시들어버리고,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우선 자라지만 기사에 막혀 결실하지 못하고, 좋은 밭에 떨어진 씨는 30, 60, 100배의 결실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자,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항상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어왔다. 자신을 버림 빋은 죄인임을 잘 아는 자들은 굉장히 환영하는 반면, 자신 안에 의(별)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복음을 배척하거나 혹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났다! 죄인들의 구주가 되시려고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셨다! 천한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려고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 천한 구유에 누이셨다. 집 없는 자들의 친구가 되시려고 집이 없이 나셨고 사셨다. 많은 착한 일을 하시고 유대인의 시기와 모함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 일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 반응은 무엇인가? 냉소적인가? 피상적인가? 무관심? 아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건인 주님의 탄생사건에 대해서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이 사람으로 오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우리의 끔찍한 죄악 가운데 여전히 살다가 영원한 형벌 가운데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동방박사들의 반응이다. 그들을 보라. 그들은 먼 곳에서부터 험한 길을 마다 않고 오직 성경에 예언한 그리스도를 기다려왔고, 그리고 별을 보고 먼 길을 여행하는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보다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알현하는 것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업보다 자기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볼 것에 대해 굉장한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경배하려고 왔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1.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연구해야 한다.

2.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며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3.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한다.

4.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기뻐해야 한다.

5.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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