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excellence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탁월함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야 탁월해지는 걸까요?
먼저 탁월함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성품이나 원칙이나 모든 면에서 탁월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믿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물과 성령으로 그분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을 때 우리 또한 하나님의 탁월함을 본받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저는 거룩함을 '탁월함'으로 바꾸어 말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탁월하신 것처럼 우리도 탁월해야 합니다.
탁월함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요구입니다.
그러면 탁월함이란 무엇일까요?
탁월함이란 '거룩함' 즉 '구별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탁월함에 대해 생각하기를 뛰어남으로 봅니다.
맞습니다. 탁월한 것은 뛰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은 어떻게 탁월해지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탁월해지기 위해서는 1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탁월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탁월함이란 일등주의와는 전혀 별개입니다.
탁월함에 이르는 길은 남들과 경쟁해서 이기거나 남들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전혀 다른 길을 감으로써 남들이 자신을 본받고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탁월함은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탁월함은 경쟁이나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 어떤 독특함입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남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보람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은 지기 싫어서였고, 또 이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신 후로는 목표와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남과 경쟁하는 것이 무의미해졌고, 남에게 이기는 것이 기쁨과 보람이 더 이상 되지 못하였습니다.
주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최고의 보람이고 행복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공부할 의욕을 상실한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던 때가 잠시 있었습니다.
물론 학교 성적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2-3학년 때였습니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새로운 의미와 목표를 부여해주셨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하던 공부를 주님을 위한 공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부드럽게 "나를 위해 공부할 수 없겠니?"라고 물으시는 듯 했습니다.
공부할 의욕을 상실하고 오직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던 저에게 공부는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거룩한 일이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1등 하기 위해, 혹은 지난 번보다 더 나은 성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는지 고민하며, 주님을 섬기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성적은 더 이상 무의미했고, 1등이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못하고는 더 이상 제겐 의미가 없었습니다.
영어과목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이 단어를 가지고 어떻게 주님을 섬길 수 있지?라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외우는 단어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는 제 자신을 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영어공부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은헤스럽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성령충만'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중고등학생 때 이야기입니다.
가장 싫어했던 영어과목이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중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영어만 아니라 국어,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을 섬길 수 있지? 라고 물으면서 공부하겠습니다.
신기하게도 등수와 성적은 신경쓰지 않았지만 언제나 영어과목만큼은 항상 탑top을 유지했습니다.
Top이 되는 것, 혹은 Top을 유지하는 것이 제 관심사가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Top이 아니면 어떻고, 심지어 꼴찌가 되면 어떻습니까?
나의 즐거움은 나의 주님을 섬기는 데서 오는 것이었지 성적이나 평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저를 바라보며 '너는 영어를 왜 그렇게 잘 하느냐?'고 했지만 저는 그렇다고 으쓱거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노력한 것이 사람들의 칭찬이나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제가 좋은 결과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고 또는 남들보다 더 잘 하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님을 잘 섬기고 싶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발음이나 어휘력이나 청취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제 영어와 발음은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현지 흑인 목사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면서 된 것이지
미국이나 영국에서 오래 유학하거나 생활한 분들의 영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영어를 잘 한다거나 혹은 남들보다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생각할 이유와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나의 주님을 잘 섬기는데 내가 배운 것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가난하여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흑인 목회자들에게 유익을 주고 그들의 설교와 사역이 달라지고 그들의 교회가 변화되고 그들의 지역이 부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지금도 저는 한번도 남들보다 제가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부분은 잘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과 신학을 흑인목사들에게 가르치는 영역에 있어서는 조금 더 잘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게 의미가 없습니다.
남들보다 잘 하면 얼마나 잘 하고,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습니까?
누구는 자신의 발음이 좋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뭐..좋은 것처럼 보입니다만 발음이 좋다 나쁘다는 것은 자기 기준일 뿐입니다.
저는 발음이 좋고 나쁘고의 기준은 없다고 봅니다.
상대방이 만든, 혹은 세상이 만든 게임의 룰에 끌려다닐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게임의 룰은 내가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하는 분을 보면 그저 그런가보다 싶습니다. 그런 분을 볼 때마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결코 속상하거나 기분 나쁘거나 혹은 열등감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더 잘 하는 것은 제게 아무 의미도 주지 않습니다.
제게 의미와 보람을 주는 것은 주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지 남들보다 더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만족과 즐거움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데서오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제 주변에는 저보다 영어를 더 잘 말하고 듣는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보다 뛰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카투사에서 군복무한 복학생들의 영어를 제가 무슨 수로 따라잡겠습니까?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내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말하기와 듣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는 '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자신문사에 들어갔고 대학시절 내내 영작문English composition에 초점을 맞추고 공부를 했습니다.
대학 성적은 별로였습니다만 친구들은 제가 영어를 잘 하는 줄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ㅎ)
아무튼 영어로 글쓰기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영자신문사 기자로서 수없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배운 것은 남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노력하는 것이 탁월해지는 비결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신대원을 입학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역시나 제 주변에는 뛰어난 두뇌와 이해력을 가지고 공부를 잘 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분들을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분들과 경쟁해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난했던 시절 신학서적을 마음껏 사볼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식권을 사는 것을 포기해야 했고 때로는 택시비를 아끼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산골짜기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공부는 잘 하고 싶은데 재정은 한계가 있고 제 두뇌 역시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관찰력도 떨어지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생각해야 겨우 이해하는 타입으로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수업시간에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모든 과목을 다 잘 하려는 노력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에 한 과목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능력에 맞는 매우 간단한 결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학기에 공부할 과목이 10과목이라면 저는 오직 한 과목만 그 학기 내내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니까 10과목에 20권의 책을 사서 과목별로 조금씩 공부하는 대신 선택한 그 과목에 관한 책을 20권 사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당연히 학점은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택한 그 과목만큼은 언제나 최고의 점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목 역시 최고 점수를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수의 평가와 점수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학기가 끝날 때마다 그 과목에 관해 소논문을 한 편씩 써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학술지나 원우회 신문에 기고하고 상금이 나오면 다시 책을 사서 보곤 했습니다.
전체 성적은 늘 별로였고 학점은 엉망이었지만 저는 언제나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매 학기마다 논문을 한 편씩 써내고 기고하든지 아니면 동역자 그룹에서 발표하고 밤새워 토론하는 등 공부하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요.
주변에 많은 분들이 저보고 공부를 잘 하는 줄로 아셨지만 사실 저는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과 경쟁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분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유학을 권했고 학위공부를 권했지만
저의 부르심은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험한 것은 매우 간단한 원리였습니다.
경쟁을 포기하고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남들과 같이 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의 상급은 영혼의 즐거움이었고, 나의 성적은 덤이었습니다.
탁월함이란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지 어떤 결과와 목표를 바라보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과 경쟁하는 목회는 탁월한 목회가 될 수 없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경쟁적으로 따라하는 식으로는 탁월하게 목회할 수 없습니다.
탁월함에 이르는 길은 '구별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탁월함에 이르는 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게임의 룰 안에서 경쟁하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고, 나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게임 플레이어game player가 아니라 게임 메이커game maker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자기 맘대로 정해놓은 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룰을 따라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신30:17참조)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한 후에 왜 타락하고 왜 망했습니까? 세상신들의 유혹에 빠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세상의 룰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룰을 만들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에 남아있던 신들과 비교하고 그들과 경쟁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정한 룰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 이스라엘의 패배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탁월함에 이르는 길에 관해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
If you fully obey the LORD your God and carefully follow all his commands I give you today,
the LORD your God will set you high above all the nations on earth.
이 말씀을 보면 탁월함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것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남들보다 더 잘하라고 말하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1등을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일등주의와 탁월함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말씀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된 사람에게는 일등을 하거나 혹은 골찌를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최고 최대의 관심사는 얼마나 온전하게 fully 순종했는가에 있는 것이지 남들보다 얼마나 더 잘 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온전한 순종'full obedience 에 있다면 우리는 경쟁의 구도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승부의 잔혹함과 경쟁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진정 '온전한 순종'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일등을 하건 혹은 골찌를 하건 최종적으로 탁월하게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탁월해지기 위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하고, 온전하고 기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주 관심사여야 합니다. 우리를 탁월한 위치에 올려놓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탁월해질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경쟁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2인자의 위치에만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온갖 노력에도 결코 탁월해지지 못할 것이 분명한 이유는 그들은 결코 탁월함의 비결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탁월함에 이르는 길 Road to Excellence 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경청하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기대와 요구는 우리의 '탁월함'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저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기 원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알고서 온전히 순종하기 원합니다.
탁월함에 이르는 길로 가기를 애쓰며..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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