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의미를 먹고 사는 사람
사람은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행복해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가 불러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을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배가 고프고 육신이 아프고 삶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며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사람입니다. 부하게 사는 사람보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배고픔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배부르게 사는 사람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잠15:17; 17:1; 21:9참조) 그래서 이번에는 의미 있게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묵상해보았습니다. (글이 길어서 두 번에 걸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현대인들은 이 의미에 대해 갈망하고 있고 또 방황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다닙니다. 저는 전도서가 의미를 찾아다니는 현대인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라고 말해주면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의미를 찾는 일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미를 찾아 방황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삶이란 없으며, 오직 창조주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전도서의 주제입니다. 저는 전도서와 성경에 의미있는 삶의 큰 원칙 세 가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주는 삶이 의미 있다
전도서의 전반부에서는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다룬 다음 후반부에 가서는 그럼에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몇 가지 실제적인 조언을 해줍니다. 그 중에 하나가 베푸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전11:1-8)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고, 그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가져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베푼 사람이 제일 현명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죽을 때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죽은 이후에 아무도 나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면 지금 내 삶이 아무리 즐겁고 또 열심히 산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열심히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차피 가져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깝다고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삶이 의미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은 그것이 아무리 신나고 즐거울지라도 다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그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울지라도 의미가 가득한 것입니다. 전도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가 그것입니다. 의미는 피조물인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아무리 많은 재미를 누릴지라도 전도자는 그 속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은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가 의미있는 삶을 사는 두 번째 원칙은 우리를 지으신 분을 알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목적이 그분을 알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있을 때만이 비로소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어지게 됩니다. 의미 있는 삶의 두 번째 원칙은 주님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배우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다
주님을 위한 삶은 주님을 아는 삶과 함께 가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주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주님을 알아가는 일에 힘쓰는지, 주님을 알아가는데 진보를 보이고 있는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배우는 것은 주님의 성품과 원칙에 대해 경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또 주님의 성품과 원칙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아무리 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나고 할지라도 내 삶에 주님의 성품과 원칙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주님의 성품과 원칙을 닮아가는 것이 없다면 주를 위한 그 많은 일들은 주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인 것입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의미 찾기
어떤 믿음의 청년이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였고 10년이 넘도록 일하며 인정도 받고 있는데 하는 일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일하는 다른 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지금 하는 일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 군인, 가정주부나 학생들에게 이런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성격이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단순 반복되는 일에 쉽게 지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직장으로 인도하셨다면 그 직장에서 의미를 찾는 일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 직장으로 들어갔다면 기도하면서 그 직장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이다
사행업이나 퇴폐업과 같은 몇몇 직업을 예외로 하고,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첫째, 그 직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 그 직업이 주님을 섬기는 성직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셋째, 그 직업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는 계시의 통로, 배움의 터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릅니다. 그런데 나에게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단지 일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또 얼마나 행복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통로로 여긴다면 비록 단조로운 업무가 반복되는 직장이라도 의미로 가득한 직장이 될 수 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을 의미로 가득찬 일상으로 바꾼 사람들
오래 전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어느 의사 집사님이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번 비슷한 환자를 만나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분의 사무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의 책상에는 전 세계 어린아이들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단번에 그분이 그 모든 어린아이들의 후견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사진들은 그냥 장식용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매달마다 후원하는 아이들 사진이었습니다. 비록 매일 지루하고 반복되는 병원업무가 이루어지는 병원이었지만 그 곳은 전 세계를 품는 큰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분은 참 의미 있게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분은 장로님이시면서 치과의사이신데 이분은 매년마다 단기의료선교를 다른 의사분들과 함께 떠나는 것을 낙으로 삼고 계셨습니다. 매일 만나는 환자들의 치아를 치료해주면서도 그분의 마음에는 세계를 품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저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분이라고 여기며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직장과 일상이 남들에게 베푸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매일의 삶이 단조롭고 지루한 것 같은데 사실은 의미 있고 보람찬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단조로운 직업, 지루한 일상을 의미로 가득 찬 삶으로 바꾸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섬김의 수단만이 아니라 배움의 통로가 되게 하라
앞에서 언급한 분들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섬김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 자신의 일이 지루하지 않고 보람으로 충만한 삶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지 베풂의 수단, 섬김의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계시의 통로가 되게 함으로써 우리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 전에 저의 가족이 제주 열방대학에서 DTS 훈련을 받을 때였습니다. 오전에 강의가 있고 오후에는 2시간씩 노동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노동을 YWAM에서는 Work-duty라고 부르는데 저는 쓰레기처리장을 맡았습니다. 여러 가지 Work-duty가 있었는데 쓰레기장은 힘도 많이 들고 지저분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나머지는 소각로에서 태우면서 연기도 마셔야 하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그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주님, 제 마음을 이렇게 정리를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소각로에서 태우면서 "주님, 제 속에 있는 불순물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셔서 정결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힘들고 지저분한 일들이 갑자기 의미 있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을 관찰하면서 꽤 재미있는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배운 것이 이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고, 아무리 지루한 일이라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묵상일지를 작성해보라
이렇게 삶의 일상이 아무리 지루하고 단조로울지라도 자세히 관찰하면서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에 대해 배울 수 있는데 그때마다 깨닫고 배운 것을 기록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묵상일지를 기록하게 되면 점점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로 충만해져 있음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서 어느 날 아주 재미있는 일상이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자신이 배우는 과목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영적관찰"을 하며 깨달은 것에 대해 기록해나간다면 그 수업시간은 그야말로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물리, 과학, 경영...그 어떤 과목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생활묵상"으로서의 공부입니다. 만일 직장인이라면 오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내가 배운 하나님의 경영원칙은 무엇인지, 오늘 경험한 일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오늘의 묵상일지를 계속 작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가정주부라면 아이를 키우는 과정, 가사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갈 수 있고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기록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됨으로써 또한 남에게 선한 것을 베푸는 삶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제 막 가정을 이룬 젊은이라면 신혼과 육아에 관한 묵상일지를 기록해나가도록 해보십시오. 혹은 육아 블로그를 만들어보십시오. 평범한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이 진짜 영성입니다.
자연 속에서 의미 찾기
우리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계시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연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단조로운 직장일이나 학교일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집중적인 '관찰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이 자연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관찰훈련을 스스로 해보십시오. 특히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치기 쉬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연은 특히 가까이 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을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할 수만 있으면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은 더 유익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모든 것을 관찰하려고 하기보다 특정 대상을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살아생전에 새들을 관찰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곤충을 관찰하면서 관찰일지를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꽃을, 어떤 사람은 나무를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혹은 구름, 비, 번개와 같은 기상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관찰할 때는 세부적으로 특징을 나열하면서 기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성장과정에 대해서 다른 자료를 참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예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미나 메뚜기라는 곤충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려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수많은 예화를 보면서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그냥 대충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매우 세밀하게 관찰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중의 새를 보라" "여우를 보라" "들의 야생화를 보라"고 하시면서 각각의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고난 속에서 의미 찾기
일상생활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을 영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또한 '의미'를 찾을 수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이나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고난은 우리에게 스승과 같습니다. 의미가 없는 고난은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은 고난이 반복된다면 똑같은 메시지가 반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고난은 내 안에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보게 하고 깨닫게 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어떤 아픔과 고난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나를 견고하게 하고 강하게 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나를 사용하시려는 하늘의 의도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을 대하고 섬기며 여러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강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재정적인 결핍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참된 공급자요 후원자이심을 신뢰하는 믿음이 강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관계에서 어떤 아픔을 겪는다면 나를 정결케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상실감으로 힘들어한다면 하나님이 나이 보배가 되시고 전부가 되심을 알게 하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가난의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한 이웃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섬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그 어떤 고난도 의미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시119:71)
의미는 비전과 목적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특정한 일이 다른 일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회사역이 직장일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서로 비교해서 어느 일이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목회도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고, 직장도 주를 위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그 일을 하느냐가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니까 목적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두 의사는 자신이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특정한 어떤 일이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비전과 목적에 따라 그 일이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만 저는 중학교 때 제일 싫어한 과목이 영어과목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관계대명사, 가정법, 이런 것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나의 삶에 비전이 되어주시고, 주님의 복음이 내 삶의 목적이 되고나서는 그렇게도 싫어하던 과목이 그렇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과목으로 변했습니다. 내가 배우는 이 단어를 가지고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상상하면서 공부하니까 그렇게 지루하던 단어공부도, 문법 공부도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 삶의 비전과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처음 은혜를 체험하던 중2학년 때는 곧 예수님께서 재림하실텐데 이렇게 공부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저를 설득시키지 못했는데 제 안에 계신 주님이 제게 공부할 이유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공부할 수 없겠니?"라고 말입니다. 주님을 위해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있어졌고 그러니까 또 점점 공부하는 재미도 있어졌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내가 목적을 어떻게 설정set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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