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시기심에 관하여 I

등불지기 2012. 11. 13. 06:05

 

 

시기심envy에 관하여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겪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그러나 너무 평범하고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홀히 대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러워하는 감정, 시기심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묵상해보았습니다.

편의상 두 번에 나누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차이

 

시기와 질투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시기envy란 어떤 상이나 다른 사람이 성취한 것을 소유하려는 열망을 뜻하며, 질투jealousy란 어떤 사람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어떤 것을 얻었을 때에 갖게 되는 분노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면 부러운 것이고, 비겁한 사람이 승진하면 질투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러움은 소유하려는 열망이고, 질투는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분노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일."(수24:19)

Joshua said to the people, Yyou are not able to serve the LORD. He is a holy God; he is a jealous God. He will not forgive your rebellion and your sins.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수24:10)

If you forsakethe LORD and serve foreign gods, he will turn and bring disaster on you and make an end of you, after he has been good to you.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부러워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에 대하여 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질투는 거룩과 정의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분노심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더 나은 상을 받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 갖게 되는 그런 '분노심'을 갖게 되는 것이 반드시 정당한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나 정당한 반면, 사람의 질투는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사람은 심판의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러워하면 실족하는 것이다

 

시편 73편의 저자는 자신이 실족하는 순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73:3)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향해 '분노'하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길에서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늘 도성을 향하여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을 미끄러지게 만듭니까? 그것은 '질투심'이라는 분노의 감정입니다. 경건한 선지자도 실족하였으니 오늘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 잘 되고 형통하게 사는 것을 볼 때 우리 안에는 분노심이 생기는데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넘어진 것입니다.

 

부러워하는 것은 지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내가 이미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남을 부러워하면서 살고 있다면 나는 부르심에 집중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는 뜻이며,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미 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며, 실패자의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러움이란 감정은 실패자의 감정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결혼했는데 아기가 없는 사람은 아이를 여럿 낳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학생은 자기보다 공부를 더 잘 하는 다른 학생을 부러워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집 없는 사람은 자기 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중소기업사장은 대기업 사장을부러워하고, 시골교회 목사는 도시교회 목사를 부러워하고, 작은 개척 교회 목사는 대형교회 목사를 부러워하고...이렇듯 무엇인가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부러워하는 것은 이미 유혹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최초의 사람을 타락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선악을 구분하는 지식을 소유하려는 열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러움'envy이란 감정이었습니다. 또한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렇게 신속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기 시작한 이유 역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보니 가나안 신들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신앙보다 바알과 아세라 신앙이 훨씬 더 세련되어 보였고,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방신들에 대한 '부러움'이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을 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유혹에 반쯤 넘어간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방신을 부러워하는 이상 결코 이방신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왜 시기하면서 사는가?

 

그러면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며 살까요? "부러워한다"feel envy는 말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며, 자신이 간절히 가지려고 열망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며, 자신에게 없는 그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간절한 열망이 더 이상 숨은 감정이 아니라 두드러지는 감정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기심'을 잘 들여다보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인식하고 있는 지식의 영역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단, 무엇인가 결핍하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 결핍된 것을 소유하려는 간절한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이 다른 사람을 통해 거울과 같이 투영되는 것이 바로 '시기심'envy인 것입니다.

 

시기심의 파괴력

 

어쩌면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며 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이러한 감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러움'envy라는 감정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러움이란 감정은 우리를 트랙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둘째, 부러움이란 감정은 우리를 유혹에 넘어지게 만듭니다. 셋째, 부러움envy이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약화시킵니다. 넷째, 부러움이란 감정은 신앙생활에 회의를 갖게 만듭니다. 다섯째, 부러움은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여섯째, 부러움은 낙오자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일곱째,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부러움이란 감정은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창조성을 마비시켜버립니다. 여덟째, 시기심이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그러면 우리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우리 삶을 진짜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부러움envy이란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며, 어떻게 대처하며,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적시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3:17,18)

Don't for a minute envy careless rebles; soak youself in the Fear-of-God. That's where your future lies. Then you won't be left with an armload of nothing

 

단 한 순간도 부러운 감정이 내 마음에 스며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비단 악인의 형통만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도, 같은 학교 안에서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안에 누군가에 대한 부러운 감정이 있다면 내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자신을 완전히 적셔야 합니다. 부러움이란 감정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감정으로 대체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밝은 미래가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러움의 감정에 붙들려 있는 한 우리는 결코 밝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없습니다. 만일 개척교회 목사로서 큰 교회 목사를 부러워한다면 미래가 없습니다. 만일 공부를 잘 하는 학생에 대해 늘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미래는 부러움을 극복하는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러움을 갖게 하는 사람에게서 떨어지라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Do not envy bad people; don't even want to be around them.

 

사람은 자신에게 부러움이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주변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러움을 갖게 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자신에게 있는 열등감과 패배의식과 수치심은 점점 커져갈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제 주변에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늘 부러운 마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저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저의 대학시절보다 제 영어가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 주변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 주변에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는 것보다 아프리카로 오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내 안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면 거리를 두십시오. 그러면 훨씬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정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 나만의 게임의 룰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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