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II

등불지기 2012. 11. 8. 23:15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II

 

 

주님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 모든 일이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마음이 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에 온통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마리아는 한가하게 예수님의 발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1,42) 주님을 위한 일과 시간도 의미가 있지만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는 일과 시간은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의미가 있고, 혹은 덜 의미가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주님만이 판단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거리intimacy에 달려 있는 일입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주님을 위한 일보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사역을 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일반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순간마다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목회사역이나 선교사역이 일반 직장생활보다 반드시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에서와 같이 우리는 주방에서 평범한 일, 지루한 일, 반복되는 일을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일, 주님과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이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던 마르다의 시간보다 주님의 발앞에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마리아의 시간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주님을 알아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혹은 아기를 키우면서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의미는 가치에서 나온다

 

우리가 어떤 의미를 느낀다는 말은 가치를 느낀다는 말이고,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말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내가 하는 어떤 일에 의미를 발견하려면 그 일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 이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인가?"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가치를 매겨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매기라고 하면 자신이 받는 월급 정도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자신이 받는 월급보다 자신의 일에 가치를 덜 매기면 직장에 대해 감사할 것이고, 자신의 월급보다 자신의 가치가 더 높다면 불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를 말씀드리지요. 저는 현지인들에게 성경과 신학을 훈련하는 사역을 하는 선교사로서 제가 하는 일에 어떤 가치를 매기고 있냐면 저는 그 어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당당하게 매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가 하는 일에 어떤 가치를 매기는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현지인들이 저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주님이 내게 분부하신 일은 주님과 똑같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어떤 것도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일 무엇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제 스스로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확신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믿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제 주변에 선교사님들이 많지만 제가 하는 일이 희귀하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선교사님들이 더러 있지만 그래도 저는 그분들과 다른 가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강의의 질이나 방식 등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확신하는 것이 지금 제가 반복적으로 하는 강의사역에 의미를 찾는 저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남보다 좀 더 잘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할 때 그런 확신을 가지기가 더 용이합니다. 직장생활이든, 가사일이든,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의 일이든 무슨 일이든 우리는 남보다 좀 더 잘 함으로써가 아니라 남과는 다르게 함으로써 더욱 의미있는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분은 주님이시지만 우리 자신도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일에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이란 믿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삶입니다.

 

 

의미와 재미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재미있게 일합니다. 반면 나는 일을 잘 하는데 별로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반드시 의미있는 일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반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반드시 동시에 재미있는 일이 되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이 되기 시작하면 나중에 금방 재미있는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반면 재미있는 일이라고 반드시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의미는 목적과 가치에서 나온다면 재미는 재능과 은사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미를 먼저 추구하기보다는 의미를 먼저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사역자들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재미로 할 수 있겠습니까? 재미가 있다면 계속하고 재미가 없다면 그만 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도, 한 가지 일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재미있게' 해야 하겠지요. 은사를 따라 섬기는 모든 일은 '재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은사를 따라 섬기되 더욱 중요한 것은 목적과 가치를 따라 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을 읽어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히 가르치고, 기적도 행하고, 선지자 '노릇'을 재미있게 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의미 있는 사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재미있게 사역을 했지만 의미 없이 사역한 그들은 형벌을 피하지 못할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마7:23)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만 그리스도인들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의미를 찾기 위해 무엇이 의미를 창출해내는지 배워야 합니다. 의미는 비전, 목적, 가치에서 나옵니다. 의미는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의미는 좀 더 잘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의미는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의미는 믿음으로 가치value를 부여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우리가 남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는 어떤 의미도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남들과 비교하는comparing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좀 더 잘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보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그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에게 의미 있는 일이 내게도 반드시 의미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각자의 소명과 은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비교와 경쟁은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이 지루하고 보잘 것 없고 가치가 없어 보인다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어떤 일도 의미가 더 있거나 혹은 덜 있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매우 짧고 우리에게 이 일을 하도록 주어진 시간 역시 매우 짧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생활이 재미없고 의미도 없어 보일 때 직장생활 하도록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직장을 그만 둘 때가 곧 올 것입니다. 일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금방 올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직장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만일 가정에서 가사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육아일을 한다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이는 금방 커서 각자의 길을 가기위해 떠나갈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의미는 이렇게 시간의 한계를 깨닫는 데서 출발합니다. 시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함께 있는사람들이 소중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 전에는 일을 위해 사람을 이용했다면 이제는 사람을 위해 일을 이용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을 이용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순서요, 의미 있는 삶의 순서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이것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주인이 자신을 해고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눅16:3,4) 불의한 청지기가 비로소 "할 일" 즉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은 직후였습니다. 의미를 발견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깨달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을 영구적인 가치로 전환하라

 

그런 다음에 불의한 청지기는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시간의 한계를 깨닫기 전에는 자기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즉, 자신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비로소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 일이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결심한 일은 다름 아니라 재물을 위해 살지 말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재물을 위해 사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친구로 삼는 일이야 말로 자신의 삶에 진정 의미가 있는 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렇습니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준 사람이 곧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나서 결국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없지만 한 가지 사람은 예외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이 사람은 우리를 도와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우리를 위해 변호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고 의미 없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직장을 다닌다면, 내가 지금 힘이 있어 일할 수 있다면, 내가 지금 비록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에 지쳐 있다면...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사람이 남아야 하는데 조만간 다 빼앗기고 다 잃어버리고 다 없어지고 다 사라지게 될 때 남아야 할 사람을 얻는 일을 위해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만약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지쳐있다면 직접적으로 주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그 일(직장, 가정, 등)을 하도록 인도하셨다면 더욱 더 확실히 주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주님께 나아가서 푸념을 늘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겸손히 자신은 의미를 발견할만한 지혜가 없음을 인정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간청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 제가 왜 이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이 과목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 과목을 통해 주님의 성품과 원칙을 닮아가도록 인도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공부하기 전에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주님께서 어떻게 그 과목을 주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통로로 사용하시는지 경험해야 합니다. 만약 직장인이라면 매일 출근하기 전에 "오늘 직장생활을 통해 주님을 알기 원하고, 주님을 경험하기 원하고, 주님의 경영원칙을 배우기 원합니다. 오늘의 직장에서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지혜의 영역입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주님이 지혜를 주시면, 주님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시면, 주님이 주님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의 통로로 사용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5-7)

 

 

하나님의 파도를 타라

 

제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 늘 자주 사용하는 그림이 '서핑'surfing입니다. 한국에서는 서핑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서핑을 쉽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밀려오는 파도를 이용하여 짜릿하게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늘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도에 맞서 헤엄치기도 하지만 그들은 금방 지치고 금방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파도를 타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나고 즐겁게 그 일을 합니다. 우리 삶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파도를 향해 힘들게 헤엄치다가 금세 지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파도를 이용해서 스릴넘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파도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파도 때문에 자신의 삶이 의미와 재미로 가득 차 있다고 즐거워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파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의미

 

우리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존 스토트가 말한 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선교missions란 단어는 성경에는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심장박동소리와 같습니다. 선교missions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려오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잃어버린 자들과 집나간 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향해 있기 때문에 선교는 하나님의 심장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의 심장박동이며 모든 교회의 심장박동입니다. Missions is the heartbeat of both God and the local church!! 만약 우리의 심장이 잃어버린 족속과 영혼들을 향해 뛰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미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파도를 탈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심장박동소리가 내 가슴에 들리지 않는다면, 만일 잃어버린 영혼들과 족속들을 향해 내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내 삶은 하나님의 파도를 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심장은 무엇에 반응하고 있고 무엇에 뛰고 있습니까? 만약 잃어버린 영혼들과 족속들을 바라보고 내 심장소리가 쿵쾅거리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의 파도를 향해 힘들게 헤엄치면서 힘들어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먼저 심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내 심장을 하나님의 심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장박동소리가 내 가슴에서 들리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파도를 탔던 윌리엄 캐리를 본받아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었던 윌리엄 캐리는 원래 구두를 수선하는 수선공cobbler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두를 수선하는 그의 방에는 세계 지도가 한 장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구두를 수선할 때마다 그 지도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족속들과 나라와 방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면 하나님이 친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대부분 설교자들이 설교했던 그 시대에 캐리는 하나님의 파도를 바라보며 그 파도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들어 인도를 변화시키고 세계선교의 큰 획을 긋는 인물로 사용하셨습니다. 캐리가 캐리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파도를 바라보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지루한 공부를 한다고 푸념하지 말고 자신이 공부하는 것이 세계선교에 어떻게 쓰일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책상에는 세계지도가 붙여져 있어야 합니다. 세계복음화를 꿈꾸며 공부해야 하고,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자신이 배우는 것을 사용되는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만일 지루한 직장생활이라고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아야 할까 고민한다면 자신의 책상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으십시오. 그리고 비록 답답한 사무실에서 다람쥐 쳇바퀴sieve-frame 돌듯이 같은 업무가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마음은 세계를 품으십시오. 몸은 사무실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세상을 다니십시오.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잃어버린 족속과 영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선교에 자신의 일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주님께 여쭈어보십시오. 만약 반복되는 가사일과 육아일에 지친 가정주부라면 주방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으십시오.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아이를 위해 축복하십시오. 자신의 아이가 세계를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지루하고, 아무리 답답한 일이라도 베풀며, 섬기며, 배우는 현장이 되게 하십시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믿음으로 큰 가치를 매기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심장소리가 내 가슴에서 들리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파도에 저항하여 힘들게 헤엄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그 파도를 즐기도록 하십시오.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그리 하십시오.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제가 두 번에 걸쳐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글을 통해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말을 했는데..

다음 인용구quotes가 제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잘 요약해주고 있네요..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의미를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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