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Faith School III

등불지기 2013. 5. 1. 22:48

 

 

Faith School III

 

믿음학교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믿음학교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학교에서 잘 배우고 배운대로 잘 연습하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경험한 믿음

 

30여년 전인가요, 아주 오래전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그 시절에는 대학부 회장이 교회의 모든 학생(중고대)들 수련회를 예산부터 집행까지 다 책임지고 진행하였습니다. 여름수련회를 책임진 저는 예산, 준비물, 버스대절, 장소답사와 계약, 선발대, 행사 진행, 준비기도회,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다 감당해야 했습니다. 백 수 십 명의 학생들을 인솔하고 수련회 장소에 도착했는데 보니 한 여름 가뭄에 수도에 물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첫날 저녁은 올챙이가 헤엄치는 개울물을 끓여서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때는 개울물도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너무나 아픈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로 준비해온 수련회인데 이대로 수련회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수도꼭지를 바라보는 제게 한 가지 믿음이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물을 주실 것이라는 어떤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도꼭지에 손을 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단하게 기도했습니다. 저녁집회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수련회는 제 기억 속에 정말 은혜로운 수련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 그런 일을 가지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또 한 번 경험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늘상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할 때 종종 일어납니다. 종종 상황과 이성을 뛰어넘는 어떤 확신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속으로 '아,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겠구나'라는 어떤 직관적인 확신이 옵니다. 제 주변 상황은 도저히 말도 안 되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조차 코웃음칠만한 일인데 저는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애써 웃음을 참으려고 하지요.^^ 주변 상황과 사람들의 반응에 저는 도리어 웃으면서 단지 두고 보라Wait and you'll see.라고 간단히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산이 움직이고 바다가 갈라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의구심의 눈총을 날렸던 사람들은 다들 침묵모드로 바뀌게 됩니다. 저를 제일 잘 아는 제 아내가 제 증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지 않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일에 나 같은 하찮은 인생을 불러 동참하게 하시는 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믿음이 커서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제가 은혜로 부름받았을 뿐이고 은혜로 초대되었을 뿐입니다.

 

믿음의 연습

 

이 믿음은 처음에는 겨자씨만한 크기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부어주신다고 할 때 태산과 같은 믿음을 부어주시는 일은 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믿음은 '세미한 음성' 혹은 '겨자씨'같은 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주시는 겨자씨 확신이라도 받게 되면 반드시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직감할 수 있습니다. 작은 믿음에서 연단이 되면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을 연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믿음은 연습할수록 커지고 견고해집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믿음은 시험과 시련을 통과함으로써 그 결실을 보게 되는데, 작은 믿음은 작은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큰 시험을 통과하는 믿음으로 성장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영하는 것에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수영을 배우려는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선 물에 몸을 맡기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작은 물에서 헤엄치다가 나중에는 큰 물에서 헤엄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믿음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큰 믿음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며 그가 가진 믿음의 크기를 가지고 연습을 도전합니다.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반드시 실패와 좌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도전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되면 믿음의 연습 자체를 중단하거나 혹은 혐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은 믿음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마라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in accordance with the measure of faith 지혜롭게 생각하라.”(12:3) 기억하십시오. 산을 옮기는 믿음은 산 같은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 같은 믿음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듣고 순종하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10:17)

 

믿음의 연습을 할 때 꼭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이 이것입니다. ‘기도하고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행동하지 말아야 하고, 듣기 전에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신앙생활에 가장 어려운 주제 중에 하나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1,2) 성경은 또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못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10:3-5) 구약의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이고, 신약의 제자들 역시 성령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떤 사람들에겐 공기의 파동을 이용해서 들리기도 하지만 대게는 내면의 깊은 곳에 어떤 확신이나 깨달음 혹은 질문의 형태로 주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의 성향tendency에 맞추어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연습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아니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작은 믿음의 연습부터 큰 믿음의 연습으로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며 배우되 비교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분량을 알고 거기서부터 믿음을 연습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연습이 완전함을 낳습니다. Practice makes Perfect!!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4:1)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모세를 보내려 하실 때 모세는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지만 믿음이 없을 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의 말씀words concerning faith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 되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산을 옮기는 믿음, 홍해를 가르는 믿음의 첫 단계입니다. 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믿음이 자라나야 하는데 믿음이 자라나가 위해서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친밀함 가운데 계속 머물면서 하나님께 묻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란 곧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대답해주시는데 그 음성에 인격적으로 순종하기 시작하면서 겨자씨 믿음이 산을 옮기는 믿음, 홍해를 가르는 믿음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이것 저것을 하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하시기보다는 우리에게 질문하는 형태로 많이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What is that in your hand?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이같은 하나님의 질문을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은 깨달음으로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반문으로 우리는 우리의 시선과 관점이 바뀌게 되고 우리의 인식이 달라지게 됩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반응하면 어떻하지?에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 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인식의 방향을 전격적으로 전환하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관점의 변화를 불러오는 하나님의 음성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gentle whisper가 있는지라."(왕상19:12)

어제 저는 강의를 마치고 제가 사역하는 흑인 목사님 한 분으로부터 그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헌신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하여주지 않으시는지 따지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심령 깊은 곳에 네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무엇이냐?”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자로 부름을 받기 전에 집을 건축하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술을 이미 주었고 그것을 활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 이후에 건축과 복음전도를 같이 하기 시작했는데 건축일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제는 건축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음껏 복음전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간증입니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 할 수 없다라고 푸념만 늘어놓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What is that in your hand?라고 반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오래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지금 그것을 주목하지 않을 뿐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하찮은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음성voice of the Lord은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을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이미 허락하여주신 그것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모세는 대답합니다. “지팡이니이다.”A staff 하나님의 음성에 질문하던 모세가 대답하는 모세가 됩니다. 바로 그 때부터 모세의 지팡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지팡이가 되었고,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었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해 하나님께 따지던 우리가 잠잠히 답할 때가 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해 우리는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shift of viewpoint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무엇도 없고 저것도 없고 무엇도 부족하고..이런 변명을 멈추고, 할 수 없다는 생각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여주신 것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믿음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 내게 이미 있는 그것은 사실 오래 전에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이란 그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우리 역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역사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For we are God’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봉사와 헌신과 섬김도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믿음으로 일하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 말씀으로 새창조의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직 말씀 하나면 충분하다고 전적으로 말씀에 자신의 전 생애를 던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늘 보고 계시며, 나의 생각과 계획을 알고 계심을 진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상주심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상주심을 바라본다는 말은 최선을 위해 차선을 거절할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목숨을 걸고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소돔왕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소돔왕이 제공해주는 금액은 족장의 반열에서 왕들의 반열로 급상승하게 만드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제안을 차선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이 최선으로 생각하는 그것을 차선으로 여길 줄 아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을 위해 세상이 제공하는 차선을 뿌리칠 줄 아는 용기가 곧 하나님을 믿는 행위입니다. 이 믿음에 대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선의 상급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보다 더 큰 상급은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상급이 되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방패가 되신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가장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차선을 거부하라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고, 세상의 차선과 타협하기를 끊임없이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 하나님의 상주심을 바라보며 세상의 차선을 거절하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끊임없이 유혹을 받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이 제공하는 달콤한 유혹을 차선으로 치부하며 거절하는 결단이 매순간 필요한 것입니다. 포기하거나 타협하면 믿음의 열매를 온전히 맺을 수 없습니다.

 

손님을 잘 대접하라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저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우스개소리로 30살 될 때까지 30번 이사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집이 없이 월세를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남의 집에서 눈치를 보며 달마다 세rent를 내며 사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이사할 때면 더욱 절감하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사할 때가 되면 괜히 우울해질 정도입니다. 아마 어릴적 수없이 이사할 때마다 서러이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님을 보면서 자란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단칸 방에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살던 때도 많았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저는 그런 삶이 너무 싫어서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독립했으면 하고 간절히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 가운데서도 제가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심방을 오면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섬기고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냥 들렀다가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국수라고 정성껏 말아서 대접하기를 원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명절이나 새해가 되면 목사님께 과일바구니를 전달하는 심부름은 항상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50이 다 된 지금 저는 깨닫습니다. 손님을 정성스럽게, 그리고 편안히 잘 대접하는 것은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행위인 것을..아프리카에 와서 살면서 더욱 보고 깨닫고 있습니다. 흑인 목회자들에게 제가 말씀도 주지만 때로는 밥도 사주고 이것 저것 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흑인 목회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저의 어릴적 국수 한 그릇이라고 꼭 먹고 가라고 소매를 끌어당기는 그런 흑인 목회자 가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지금 아프리카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힘들었는데..그래도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여유와 품위와 자존심만큼은 잃지 않았었는데 하고 말입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대접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대접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잘 대접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믿음으로 산을 옮기기 원합니까?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믿음으로 씨를 뿌리기 원합니까? 믿는 가정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십시오.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그리하십시오. 변방에서 복음 전하는 무명의 전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10)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6)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삼5) 여기서 나그네는 변방에서 이름없이 복음전하는 전도자들을 말하고, 이런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증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요삼8절 참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5:6)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3)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부름calling을 받은 사람에게 한시적으로temporarily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이나 산을 옮기는 믿음이나 모두 같은 한 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전자는 영구적인데 반해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의 믿음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우리가 믿음으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게 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믿음의 수고를 이끌고 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일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상주심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거저 베푸는 사랑, 믿는 가정을 물질적으로 돕는 사랑, 장애인들에 대한 사랑, 복음을 들어야 할 족속에 대한 사랑, 세계복음화에 대한 사랑과 섬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긍휼..이런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구제와 봉사와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요일2:4,9) 성경은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약2:26) Faith without deeds is dead.

 

세상을 이기는 믿음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16:33)

우리의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온갖 환난과 역경을 당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비록 잠시 실망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자빠질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께 우리 모든 것을 내어맡기었다면 잠시 실패할지라도 영원히 패배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에 동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믿음만이 세상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놀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현지인들을 위해 살고 있지만 결코 현지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아무리 현지인들과 가까이 지낸다고 해도 현지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인과 나그네이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은 당연한 것입니다. 선교사는 그런 어려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찾아오지? 라고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연한 일로 여겨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졌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하실 일에 우리의 할 일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업적을 나의 업적으로, 그분의 분부를 내가 받들어 이루어야 할 유언으로, 그분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감정과 상황과 상관없이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14:30)

물위를 걸어간 베드로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풍랑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물위를 걸어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제자들이 유령이라 하며 두려워떨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안 베드로는 놀랍게도 주님께 이렇게 제안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예수님은 오라고 짧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물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를 바라볼 때에는 물위를 걸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믿음과 두려움은 상극인데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덮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그때 베드로는 다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즉시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그리고 베드로를 부축하여 배에 함께 오르셨습니다. 배에 함께 오르자마자 즉시 바람이 그치고 사나운 물결은 잠잠해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순간에만 유효하며 지속합니다. 만일 우리의 눈을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상황으로 돌리게 되면 즉시 믿음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이전까지만 해도 물위를 잘 걸었던 발걸음이 천길 낭떠러지같은 심연abyss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고, 우리가 다시 눈을 돌려 내 감정과 환경에서부터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당황하지 말고 즉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주실 것이고 우리를 깊은 수렁에서 끌어올리실 것이고 함께 배로 오르실 것이고 가려는 목적지로 함께 여정을 갈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서서히 믿음에 대해 배우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견고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진다는 말의 의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급박한 상황속에서 상황만을 바라보지 않고 함께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센 바람과 사나운 파도 속에서도 주님의 얼굴을 계속적으로 주시할 수 있는 그런 믿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단련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맡기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이들을 불러 동참하게 하시는 것이고,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즐거움에 그들도 함께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큰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은 서로 비례합니다. 왜냐면..

믿음이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것을 내가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Faith is not hoping God can. It is knowing He will.

 

하나님이 그 일을 하려는 의지를 갖고 계시는 것을 알기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또한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시는 의지에 대한 지식knowledge of His will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믿음도 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알수록 믿음도 커져 갑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제게 큰 믿음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예..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날 갑자기 큰 믿음을 쑤욱 넣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이 자라도록 말씀하시고 믿음이 견고해지도록 환경과 상황에 개입하시고 믿음이 자라나도록 인도해가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치뤄야 할 대가도 크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긴 하지만 오직 말씀에만 순종하기로 전폭적으로 자신을 내어드린 자가 순종의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난과 역경과 실패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은 믿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아픔도 겪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믿음의 성장과정 속에 겪는 진통을 기꺼이 무시할 수만 있다면..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게 큰 믿음을 더하여주십시오."

"그래서 주님 위해 큰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는 다음과 같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믿음은 하나님께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시도하게 만드는 능력인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동역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오직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진동시키고, 이 믿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The righteous will live not by sight but by faith.

 

남아프리카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어거스틴이 전해준 믿음의 정의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상급은 우리가 믿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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