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Faith School II

등불지기 2013. 5. 1. 21:45

 

 

Faith School II

 

믿음의 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서 묵상해보겠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원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격려와 축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골2:5-7절) 

 

믿음의 은사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고전12:9)

구원을 얻는 믿음과 상관없는 또 다른 차원의 믿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gift로서의 믿음입니다. 이것을 산을 옮기는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 믿음은 특별한 믿음이며 특별한 일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 나라 사역자에게 선물로서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사역과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일시적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어떤 사역이 이루어지면 사라지는 믿음이지만 더 큰 사역을 위한 준비와 연습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랄 때 이런 믿음의 역사를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이런 믿음으로 극한 가난과 시련을 견뎌내신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이런 믿음의 무용담을 많이 들었습니다. 곱추의 등을 펴게 한 일, 가뭄에 매마른 시냇물에 물을 흐르게 한 일, 한 겨울에 꽁꽁 언 수도를 믿음으로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한 일, 집을 짓고 길을 내는 일, 사렙다 과부가 한 병 물과 기름 한 병으로 몇 달을 지냈듯이 쌀 한 되로 몇 달을 지냈던 일들..믿음의 무용담은 어린 제게 무한한 믿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물론 많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경험하여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 은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할 때, 기도와 무릎으로 헌신하며 전진할 때 성령께서 필요한 때에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부어주시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일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건 산을 옮기려는 무모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할 때에는 이미 산을 옮긴그림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확신 속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성령이 주시는 믿음의 은사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림이다

 

이제부터는 믿음의 매카니즘에 관해 말하려고 합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는 말은 어떤 그림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내가 가진 그림이 명확하고 구체적이란 뜻이고, 헛된 믿음이란 내가 가진 그림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란 그런 뜻입니다. 이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우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에 의존하는 것부터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지 않고 또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확률을 강조합니다. 가능성이 7-80% 되어야 행동에 옮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일의 가능성이 그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내가 하려고 나서면 이미 그 일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란 확률이나 가능성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생활을 성실히 하고 봉사도 잘 하는 분들 중에서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확률이나 가능성에 따라 일을 하면 안전한 일이 되겠지만 결코 산을 옮기는 일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을 배우려면 확률과 가능성을 따지는 인간의 이성reason에 의존하는 경향에서부터 벗어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믿음이란 그림이다 II

 

저는 믿음이란 그림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그림을 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확률이나 합리주의, 효율, 가능성을 따지고 계산하는 이성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면의 상상에서 만들어내는 환상이 아니라 위에서 주어지는 생생한 그림이어야 합니다. 하늘이 내려주는 그림을 받기 위해서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항상 첫 단추는 나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내가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았으며, 무엇을 이루라고 부탁을 받았는지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25:14) 하늘로부터 그림을 받기 위해서는 하늘과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친밀하심을 위해 금식도 하며 때로는 부르짖기도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2,3) 하나님의 친밀하심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위해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소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어떤 깊은 확신같은 것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 확신이란 하나님께서 이 일”this work을 하실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큰 소리로 믿습니다소리 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것을 잠잠히 아는 그런 단계를 말합니다. 저는 이 단계의 믿음을 겨자씨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큰 나무를 이루고, 반드시 산을 옮기게 되는 그런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I tell you the truth, if you have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can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t will move.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문맥을 보면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제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명령하기도 하고 또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에게 겨자씨 같은 믿음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기도와 많은 봉사가 사실 믿음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기도를 많이 하는데 사실은 믿음이 하나도 없이 할 수 있고, 봉사도 많이 하는데 사실 믿음이 하나도 없이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믿음을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큰 산을 옮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확신은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작은 산 조차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림을 내려주실 때까지 하나님의 친밀하심 가운데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을 옮기는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putting faith in God입니다.

 

두려움과 싸워 이겨라

 

믿음은 두려움을 끝내고 두려움은 믿음을 끝냅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상극관계입니다. 앞에서 산을 옮기는 믿음의 메카니즘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겨자씨 믿음이 어느 순간 생기는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믿음의 네 번째 단계에 대해 배워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겨자씨 믿음이 생길 때 원수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이 믿음을 빼앗아가려고 악착같이 애를 쓰게 됩니다. 원수 마귀가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앗아가고 혹은 겨자씨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걱정 근심을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시시때때로 던지는 두려움의 화살에 대해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싸워야 합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시험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거짓 믿음은 시험test과 시련trial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언제나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난관을 뚫고 나가기 위해 인내도 필요하며 때로는 모험의 순종도 필요합니다.

 

 

 

믿음의 모험

 

Take the adventure of faith!!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참 믿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짜릿한 모험으로 비쳐집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네 번째 단계가 두려움과 맞서 싸우는 단계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섯째 단계는 믿음의 모험을 하는 단계입니다. 두려움과 싸워 승리하려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해나갈 때 우리의 대장되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우리가 담대히 순종하여 나갈 때 이 싸움은 비로소 끝이 납니다. 이것이 믿음의 모험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다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하고 순종하라 그러면 산을 옮길 것입니다.”Pray and obey, and you can move the mountain.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공식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기도하고 순종하는 것”pray and obey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산을 옮기실 것입니다.

 

모험을 두려워 말라

 

착하고 봉사도 잘 하고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기질과 관계된 것인데 너무 소심하거나, 혹은 너무 세심하다는 것입니다. 혹은 너무 신중하거나, 너무 계산적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많고, 유난히 걱정 근심이 많고, 이것저것 재보고 세어보고 따져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업을 시작하거나 혹은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은 가능성 혹은 확률이 7, 80%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과 기질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어려운데 왜냐면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확률이나 가능성과는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너무 이성적인 사람, 너무 똑똑한 사람, 너무 잘 계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물 위를 걸어간 베드로를 보십시오. 거친 풍랑이 일 때에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께 대담하게도 물위로 걸어가도 될까요?”라고 감히 물었고, 그래서 걸어오라고 말씀하실 때 과감하게 물위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는 비록 실패와 실수도 많았지만 훗날 제자들 중에 수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너무 이성적이고 너무 계산적이고 너무 따지고 너무 재어보는 사람은 작은 일은 해도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기억해야하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무엇인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말씀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움추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해내지 못합니다. 떨치고 일어나 믿음의 모험으로 발을 내딛는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물위를 걸어간 베드로를 생각해보십시오.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베드로는 대담하게도 예수님, 제가 물위로 걸어가도 될까요?”라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걸어오라라고 말씀이 주어질 때 믿음의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믿음의 은사를 잘 주시는데 그것은 이런 기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주의하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같으니..”(13:33)

민수기를 보면 모세가 12정탐을 가나안땅으로 파송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2정탐이 40일 동안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두 가지 보고로 나뉩니다. 10명의 정탐들은 그땅은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땅에 견고한 요새가 있다고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들과 비교해보면 메뚜기같다고 말합니다. 10명의 정탐이 한 말을 잘 봅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 그들은 그들이 본대로, 느낀 대로, 진실대로 말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과 진리를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과 경험에 의해서 진실을 말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진리를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진실을 말하는 것과 진리를 말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진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의 보고는 진리를 보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이것이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정복하고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견고한 요새들과 장대한 아낙자손들은 모두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감각으로만 바라보면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이 메뚜기같아 보일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않는 모든 말들이, 아무리 진실하고 아무리 정직하고 아무리 꼼꼼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불신앙의 말이요 부정적인 보고negative report이며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40일간의 정탐은 40년의 방황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말의 열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불신의 말을 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말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11:23)

산을 옮기는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에 하나가 바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듯이, 우리도 말로써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 역시 말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떤 문제를 만나거나 혹은 어떤 마음의 소원이 생겨 주님 앞에 계속 머물며 기도할 때에 주님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성을 뛰어넘는 어떤 확신이나 그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삶은 내 말의 열매라는 것을..내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던지 그 말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을..우리는 무심결케 불신의 말을 내뱉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나름 정직하게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거짓말이고,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하는 믿음은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을 가지고 담대하게 선포speak out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는 대로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하는 대로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말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십시오. 내가 보는 대로의 진실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진리를 말하십시오. 참 믿음을 가진 자는 말tongue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싸움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라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믿음의 또 다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갈등, 전투, 씨름, 싸움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싸움battle입니다. 주권을 놓고서 서로 갈등하고 대면하며 씨름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은 재물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흔히들 재물신을 맘몬이라고 합니다. 돈에 무슨 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가치와 신념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정면 배치되는 점에서 재물은 하나님과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다루시려고 할 때에 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점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재물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은 곧 이 재물신과의 싸움에 경험이 있다거나 혹은 자신이 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즉, 믿음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선택할 줄 알고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재물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아는 능력까지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돈이 없어서..."라는 말을 너무 쉽게 했지만 믿음이 생긴 후부터는 돈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고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재물과 하나님..누가 나의 주인이냐, 그리고 누가 나의 삶에 결정권을 행사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결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치열한 싸움과 갈등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 "재정싸움"financial battle이라고 하는데, 이 재정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곧 믿음이요, 믿음은 이 재정싸움을 싸울 줄 아는 능력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진정 자신의 주인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돈과 재물을 향해 이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돈아, 너는 나의 종이다. 너는 나를 섬겨야 한다. 너는 나에게 아무런 결정권도 영향력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돈!! 너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나를 섬길 것을 명한다." 이 재정싸움에서 이길 줄 아는 능력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성품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인색하지 않음, 관대함, 후함, 너그러이 베풂, 주기를 좋아함, 등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요 주권자로 모시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모든 필요에 대한 공급자가 하나님이시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한 공급자로 여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너그러운 마음, 후한 마음generous mind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정싸움을 할 때에 주님께서 종종 "네가 먼저 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도 그런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너그러이, 후하게 줌으로써 재정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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