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Faith School I

등불지기 2013. 5. 1. 21:18

 

 

Faith School

 

제가 오래 전부터 꼭 써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글 중에 하나가 믿음에 관한 글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요? 참된 믿음과 거짓 믿음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믿음이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산을 옮기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학교faith school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믿음이란 보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1:1)

성경은 믿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저는 믿음을 보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내립니다. Believing is Seeing!! 그러나 보는 것이 곧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믿음이란 오감five senses으로 파악되지 않는 또 다른 감각으로 파악되는 것입니다. 이 기관(器官)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죄가 들어온 이후부터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죽은 기관dead organ이 되었습니다. 이 기관은 영혼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감각기관sensing organ인데, 이 기관의 역할은 일종의 눈eyes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인식하는 눈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망원경과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망원경telescope과도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11:1에서 말하는 실상증거입니다. 이것은 자기 최면에 의한 어떤 심리적 확신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어떤 그림picture인 것입니다. 여기서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거짓 믿음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망상과 공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명확한 반면, 거짓 믿음은 항상 모호하고 추상적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참 선지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갈등과 대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 선지자들의 예언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명확한 반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언제나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사람의 감정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것이었습니다.

 

 

 

와 보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2:11)

요즘 저는 주일마다 요한복음을 강해설교하고 있습니다. 1장과 2장을 잠시만 읽어보더라도 '본다'see라는 동사가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 나오는지 찾아보십시오. 요한복음의 의도는 우리를 생명을 얻는 참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거듭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요?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세히 주목하여 관찰하여 보면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을 볼 때에 우리는 생명을 얻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그 첫 표적을 통해 자신의 육신에 감추어진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영광을 태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요,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이의 영광이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신 분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 잔치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기적을 보았고, 맛보았고, 그 기적을 즐겼지만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직 그 기적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영광을 본 자들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를 믿으니라" and his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Him. 그 영광을 나타내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영광을 보지 못하고 단지 그 기적만을 보고, 맛보며, 즐겼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영광을 보고서 자신들의 믿음을 그분께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와 보라"고 도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시는 당신의 영광을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그분께 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믿음입니다. 구원을 얻기 전에 우리 안에 이미 믿음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구원을 얻기까지 아직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구원을 얻는 완전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 할 그분께로 가야 하고, 그분을 보아야 하고, 그분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고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려고 하거나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모두 다 사이비요 거짓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 할 유일한 대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떤 교리나 신조에 대한 것도,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에 기록된 것과 같이 오직 그분을 바라볼 때만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

 

저는 믿음에도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우리의 죄가 되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행위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어떤 기독교 교리에 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념conviction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입니다. 그래서 신념이 강하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신념이 약하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실fact에 있는 것이지 어떤 교리적인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으리라.”(10:13)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지려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경청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마음으로 동의agree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지식적인 동의가 아니라 정체성과 관려된 동의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동일시identify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speech와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the effective faith는 언제나 혀끝the tip of the tongue에서 시작됩니다.

 

 

 

은혜와 믿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느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영어성경에는 두 개의 전치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구원을 얻는 믿음이란 마틴 루터가 말한 대로 빈 손을 내미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으로 받는 그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에 있어서 그 은혜가 먼저입니다. 결코 믿음이 먼저가 아닙니다.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단지 그 은혜를 인식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그 은혜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 은혜를 놓치고 믿으라고 강요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손을 들거나, 강단 앞으로 나오는 행위를 강요하게 되고, 그런 행위를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단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행위works로 끌어내리는 것이며, 결코 구원을 얻는 믿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그 은혜는 항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들이 곧 내게 큰 은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구원을 얻는 믿음이 효과적으로 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믿음의 관계를 굳이 비유하자면 은혜는 물과 같고, 믿음은 수도관과 같은 것입니다. 물은 흐르고 있지만 수도관을 통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듯 은혜는 항상 흐르고 있지만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믿음 그 자체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속빈 수도관과 같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수도관은 물의 근원에 올바르게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하는 믿음,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산을 옮기는 믿음mountain moving faith입니다. 이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과는 매우 유사하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비슷하다는 말은 원리에서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by grace 우리의 믿음이란 빈 손을 연결할 때through faith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는 현장divine work에 우리는 믿음으로 초대되어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이 산을 옮기시는 그분의 영광과 능력을 우리는 삶속에 목격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믿음과 산을 옮기는 믿음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구원을 얻는 믿음에서 머물러 있지만 말고 더 나아가 산을 옮기는 믿음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로 기뻐하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 하나님 그분과 친히 동역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을 옮기는 믿음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3,24) Have faith in God.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says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하나님의 일을 위한 믿음

 

이런 믿음은 이미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앉아 계시거나 쉬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일하실 때는 반드시 계획하시고 계획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고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실행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 산을 옮기는 믿음은 사실 하나님의 믿음이고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예고없이, 약속없이, 말씀없이, 비전없이 실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종들에게 당신의 비전과 계획을 일러주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우리를 초청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산을 옮기시는 그 놀라운 장관을 목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헌신하는 당신의 종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비전과 비밀을 나누어주십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임받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곧 [산을 옮기는 믿음]mountain moving faith인 것입니다.

 

어떻게 산을 옮길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믿음에 관해 배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속에 있는 거대한 문제mountain-like problem를 해결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믿음을 어설프게 실습하다 좌절하고 또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하고 시험depression과 침체slackness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종류의 믿음이란 하루아침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 믿음은 구원과 상관없이 다가오는 은사gift로서의 믿음인데, 이 믿음은 배움과 실습learning and practice을 통해 조금씩 자라나는 믿음입니다. 또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믿음을 가지려고 열망하기 전에 먼저 내가 누구인가identity, 내가 어떤 부르심calling을 받았으며, 내가 어떤 사명mission을 받았는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disciple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내가 이루어야 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서 분명히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지식은 한 마디로 말해 자기정체성에 관한 지식knowledge of self-identity입니다. 이 지식이 확고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산을 옮기려고 하면 반드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자체에 회의doubt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산을 옮길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누가 산을 옮길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그 산을 옮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사현장에 뛰어들라

 

산을 옮기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공사현장에 투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에 내 인생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우리를 초대하셔서 당신이 친히 하시는 그 놀라운 광경--말씀으로 산을 옮기시는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에 있는 산을 옮기려고 무진장 애쓰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보십시오. 자신의 삶에 있는 산을 옮기려거든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산을 옮기시는 현장에 자신이 뛰어들면 됩니다. 저는 선교지에 나와서 선교지에서 살면서 이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도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한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지에 있어도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지신의 일을 할 수 있고, 비록 고국과 고향땅에서 살아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그럴듯한 논리를 갖다대며 자신의 일이 하나님의 일인양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진지하게 성경을 통해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아주 간단하게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탕자가 돌아오기만 바라며 집밖에 나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고 계시며, 잃어버린 족속들을 찾고 계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며, 잃어버린 종족과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종종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혹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두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그리고 정직하게 따져 물어보십시오. 내가 하려는 그 일이 과연 하나님이 하려는 그 일입니까? 산을 옮기는 믿음을 얻기 위한 아주 간단한 조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이 어디인지 조사해보고 그 현장에 투신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내 일을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만용과 믿음의 차이

 

큰 소리로 믿습니다!!”라고 외치면서 강물위로 뛰어내리거나 뱀을 만지거나 독을 마시는 것이 과연 믿음일까요? 어떤 극단주의자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믿는 것일뿐 이것은 전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행위는 일종의 만용’blind daring 혹은 객기부리기’ill-advised bravery입니다. 사람들이 만용을 부리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구는 자신이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일종의 열등감과 애정결핍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용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고 유혹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흔들리셨다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뛰어내림으로써 자신을 사람들에게 입증하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잘 아셨고 따라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입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의 표지

 

그러면 참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무엇으로 참 믿음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지금 만용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참 믿음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반드시 분별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마태복음 4장을 깊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3가지 기본적인 욕구basic desire에 관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배고픔, 인정받기 원함, 부귀영화...이 세 가지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만일 우리가 산을 옮기는 믿음을 갖기 원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욕구들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참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의 부르심은 무엇이며, 나의 사명은 무엇이며, 내가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루어야 하는 주의 명령은 무엇인지..에 관해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십시오.

 

(계속)

 

p.s. 위에 올린 사진 중에 뛰어내리는 사진이 있는데요..^^

지붕위에서 사람이 뛰어내리는 것과 줄을 믿고 뛰어내리는 것의 차이가 만용과 믿음의 차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일 뛰어내리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새나 펭귄이라면?

bonus로 펭귄이 믿음으로 뛰어내리는 사진을 올려봅니다.ㅎㅎ

믿음학교는 다음편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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