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9가지 열매들 The 9 fruits of the Holy Spirit
지난 번에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우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순종함으로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령의 나타남을 각 사람에게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나타남으로 인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지고 또한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세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성령의 열매는 자신을 쳐서 성령께 복종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게 될 때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는 일시적인 반면 성령의 열매는 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주어지는 방편이자 도구라고 할 수 있다면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흔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때 성령의 은사들을 얼마나 받았느냐, 혹으 얼마나 많이 사용하였는가를 가지고 서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았느냐, 그리스도를 순종했느냐를 가지고 서게 될 것입니다.
은사는 목적을 달성하면 떠나가는 것이지만 열매는 영구적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낫고 우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목적에 따라 쓰이는 은사도 귀한 것이고, 순종에 따라 나타나는 열매 또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 좋지 못하다 라고 비교할 문제가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은사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문제는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흔적인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삶속에 역사하고 성령의 열매는 인격 속에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를 맛보면 우쭐하기 쉽지만 성령의 열매는 그와 반대로 겸손하게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일시적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영구적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성령의 열매는 성품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은사에 열광을 하고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열매는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죽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상교회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성령의 은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천상교회와 천사들이 보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은사는 간절히 사모하여 성령의 나타남을 경험하지만 열매는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내 안에 새기는 것입니다. 은사는 겉으로 나타내는 것이지만 성품은 속으로 감추는 것입니다.
사랑love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에 가장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사랑은 줄 것은 주고 주지 말아야 할 것은 주지 않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즐거워함으로써 생기는 내면의 능력입니다. 모든 관계에는 경계선이 존재하는데 경계선을 잘 파악하고 지킬 줄 아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이 능력은 학교나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오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세상(피조물)을 너무나 사랑하신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만드실 때 말씀으로 만드셨는데 그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속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을 바라보실 때 자신의 영광을 바라보시며 즐거워하시는 데서 기본적으로 사랑의 성품이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행위로서 자신이 만들었거나 소유했거나 혹은 특별하게 여기는 대상을 자신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희락joy
기본적으로 성령의 열매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태도가 인간의 내면에 성품character으로 형상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쁨, 즐거움, 환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즐거워하셨습니다.(창1장) 사랑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에 하나님 자신을 투영하여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희락이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 의미는 장례식에 가서도 항상 웃고 다니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모든 창조물, 창조사역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바라보시며 즐거워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기뻐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은 기본적으로 기쁜 삶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눈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화평peace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요 화목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며 살던 우리를 서로 화해하게 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던 사람과 화해하기를 원하셨고 화목의 길을 먼저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시고 적대관계를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적대관계를 해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화평의 본질입니다.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평peace은 희생sacrifice입니다. 화평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는 용기입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알고 묵상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어느 누구라도 적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적대관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듯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제물로 내어놓으려는 태도인 것입니다. 내게 상처와 고통을 준 사람을 미워하고 계속해서 증오하는 것은 이러한 성품(열매)이 결여된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희생함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경향이 성품으로 나타난 것이 화평입니다.
오래 참음patience
인내란 성품은 불완전한 현실을 넘어 완성의 때를 바라보며 기다릴 줄 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는 완전하였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에 그러한 세상을 일순간에 망쳐버릴 수 있는 자유의지,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 자유의지까지도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때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지 아셨음에도 그리 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상을 맡긴 사람이 타락하여 세상을 다 망쳐놓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참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완전한 세상을 망쳐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완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은 길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인내란 그것입니다. 불완전한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완성의 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완성의 때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자비kindness
성령의 또 다른 열매 중에 하나가 ‘친절함’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피조물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과 태도를 갖게 하시는데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성품은 다른 이들을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선물하는 능력입니다. ‘크리스찬’이란 말은 원래 ‘친절한 사람들’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성품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아끼며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나우면 안 됩니다. 들판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도 함부로 꺽지 말아야 합니다. 못 배운 사람이나 구걸하는 걸인에게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때는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매섭게 꾸짖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 부드러워야 하고 가난한 이에게나 낯선 이에게나 가까운 이에게나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대할 때 부드러워야 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말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나에게 먼저 친절을 베푸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제할 돈이 없다면 친절함이라고 베풀어야 합니다. 무례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깍듯이 지켜주어야 합니다.
양선goodness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향해 우리를 잠잠히 이끄시는 성령께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내면에 형상화되는 하나님의 관점과 태도 중의 하나는 ‘착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그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잘 되기를 바라는 창조주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품이 결여되면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거나 시기하게 되고 경쟁하려 들고 혹은 다른 사람이 잘못 될 때 속으로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착한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이나 생각에 있어서 못되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함께 기뻐해주고 잘못 될 때 함께 슬퍼해주어야 합니다. 나의 본성은 원래 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 나의 못된 성품이 착한 성품으로 변화하여갑니다. 내 말이 너무 가시돋힌 말이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내 행동이 너무 잔인하지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심지어 내가 잔인한 상상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보십시오. 얼핏 말은 부드럽게 하는데 그 속에 뼈가 있고 가시가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생각조차 끔찍한 상상을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못된bad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착하지 않는 것이 원래 정상입니다. 착한 성품이 세상에서는 비정상입니다. 그런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원칙과 성품에 복종하기 시작할 때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원칙과 성품인 ‘착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조차 잘 되기를 바라고 잘 될 때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충성faithfulness
충성忠誠이란 말 그대로 ‘마음의 중심에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드리려고 하는 삶의 태도와 삶의 방향, 이것이 충성이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을 묵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요4:34참조)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충성된 증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계3:14) 충성이란 성품은 그 마음에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한다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하여 집중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충성이란 성품이 결여되었다면 내 삶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나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지 않고,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 예민해지고 사람들의 평가에 상처를 받게 될 것이고, 어떨 때는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면서 스스로 우울해질 것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열렬하게 비판하고 판단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거나 남들과 항상 비교하고 경쟁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충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고전4:1-5 참조)
온유gentleness
온유란 성품은 겸손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성품입니다. 겸손이 모든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better 여기고 자신의 스승으로 간주하여 모든 사람에게서 심지어 악한 사람에게서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내려는 태도와 경향을 의미한다면, 온유란 모든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에게서라도 상처받지 않는 능력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유란 하나님 한 분만을 잠잠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하기 때문에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에게서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는 데서 이런 능력이 나옵니다. 평소에 점잖고 부드러운 사람도 혈기를 내기도 하고, 사람들의 비난에 쉽게 상처를 받고, 사람들의 말에 쉽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하고, 혹은 다른 이들의 평가에 자주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를 과도히 받게 된다면 이 성품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절제self-control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지으실 때 절제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살아있는 영을 부어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천사와 같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실 때에도 곧바로 영화의 단계로 이끌지 않으시고 절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계시지만 절제하십니다.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부어주실 때도 있지만 종종 절제하십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이 내게 너무 인색한 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절제하십니다. 이러한 절제는 사랑과도 연관이 있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절제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절제는 인내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내가 나쁜 것을 참을 줄 아는 능력이라면 절제는 좋은 것을 참을 줄 아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만나면 중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을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가운데 우리는 나쁜 것만 아니라 좋은 것도 참을 줄 아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절제는 내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있기 때문에 맺을 수 있는 성품입니다.
요컨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겠습니다.
정의-성령의 열매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관점과 태도가 그 내면에서 아로 새겨지고 형상화되는 것features or character을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삶속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성령의 열매는 인격속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일시적인 반면 성령의 열매는 영구적인 것입니다. 은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역과 교회 공동체를 섬김에 있어 필수적이며, 열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의 구원에 있어 필수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흔적을 내 몸과 마음에 많이 새겨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보여드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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