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똑똑함과 지혜로움에 관하여 II

등불지기 2013. 6. 28. 22:09

 

 

똑똑함과 지혜로움에 관하여 II

 

계속해서 똑똑함과 지혜로움의 차이에 대해서 묵상해보겠습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 I am sending you out like sheep among wolves. Therefore be as shrewd as snakes and as innocent as doves. 뱀과 비둘기는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동물입니다. 지혜로움과 순결함도 서로 함께 하기 힘든 상극의 성품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양 극단의 성품을 함께 지닐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정말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똑똑해 보이면 반대로 순결함에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기서 순결함착함혹은 순진함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뱀같이 like snakes

 

뱀과 비둘기라는 두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뱀이 지혜로운 동물로서 소개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여러 짐승을 지으셨을 때 뱀이 가장 간교’crafty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 간교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능력, 눈치를 잘 채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뱀은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파악할 줄 아는, 눈치가 가장 빠른 짐승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에 뱀은 사람, 특히 여자에게 친구였습니다. 요즘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사람에게 친구노릇을 하지만 타락하기 이전에는 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뱀같이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신 것은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 사람들의 말이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내면에 감추어진 것을 파악할 줄 아는 눈치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겉만 보고, 말만 듣고 쉽게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면 복음의 원수는 속이는데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지에서 살다보면 이같은 성품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사람들의 말만 듣고 결정했다고 큰 코 다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선교지에서 오래 있다보면, 너무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이 이용당하고 상처를 많이 받게 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치만 늘고 때로는 독사처럼 사나워질 수도 있습니다. ‘너무 지혜로운’ too crafty 사람을 보면 가까이 하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비둘기같이 like doves

 

종종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 눈치가 빠른 사람,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눈치가 굉장히 느린 편입니다. 사실 맏이로 태어나 자란 사람치고 눈치가 빠른 사람 별로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기르면서 보면 맏이는 항상 눈치가 없습니다. 첫째보다는 둘째가, 둘째보다는 셋째가 더 눈치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눈치는 성장과정에서 훈련받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전방에서 군복무할 때 눈치가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상황판단을 빨리 하고 재빠르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항상 고생만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눈치가 빨라도 실수를 합니다. 오히려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상황판단력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너무 쉽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비둘기 같은 순진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비둘기는 새 중에서도 정말 머리가 나쁜 동물입니다. 까마귀나 까치 그리고 앵무새는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모릅니다. 사람의 말을 따라할 정도니 말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새들 중에서 지능이 가장 떨어지는 동물입니다. (순진하다, 순결하다는 말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인 innocent는 사실 좋은 어감을 갖고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미련한, 어리숙한stupid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둘기처럼 순진할 것을 그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보여준 모습 속에서 그러한 순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로마시민권자임을 밝히기만 해도 무서운 태형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바울 사도는 매를 맞고 나서야 그 사실을 털어놓습니다.(16:37절 참조)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찾으시는 모습입니다. 비둘기같이 순진함innocent은 알고도 당하고,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모습이고,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 모습은 우리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은 묵묵히 걸어가셨고 자신을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성전의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어버리셨습니다. 만일 내가 비둘기같이 순진하다면innocent like doves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이용당하고, 사람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는 줄을 알면서도 기꺼이 상처를 받으며, 고통을 받을 줄 알면서도 고통을 피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제 모습은 아주 어리석고 미련한 모습입니다. 

 

                           

 

뱀과 비둘기를 함께 살게 하라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이 두 가지 성품은 함께 가야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너무 눈치가 빨라서 상황판단력을 가지고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만 있어도 안 되고, 너무 순진해서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고 상처를 받아도 안 됩니다. 때로는 뱀같이 사람들의 의도를 꿰뚫어볼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줄 알면서도 기꺼이 상처를 받아들일 줄도, 고통을 당할 줄 알면서도 즐거이 고통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뱀과 비둘기가 공존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혜는 내 안에서 뱀과 비둘기가 서로 함께 사이좋게 살도록 만드는 능력입니다.

 

                

 

똑똑함과 지혜로움의 또 다른 기준

 

제가 뱀과 비둘기를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두 성품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로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너무 똑똑하기만 하고 순결함과 순진함이 부족한 것은 사실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똑똑함clever과 지혜로움wise의 기준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재정’finance에 관한 것입니다. 지혜는 재정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입니다. -8:18

 

 

 

 

재정을 다스리는 능력

 

재정과 관련하여 지혜를 정의내리자면 '재정나무finance tree를 가꾸는 능력'입니다. 재정나무를 심고 가꾸고 자라게 하는 능력은 지혜에 속한 능력입니다. 똑똑하다고 다 재정을 잘 다스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똑똑한 척 하면서도 재정에 관해서는 무기력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언뜻 보기엔 어리숙하게 보이는데 그 삶속에는 재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충만한 사람도 보았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어느 친척은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항상 말을 잘 하고 자신의 지식과 상식을 자랑합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적이고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많은 빚을 지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는 일이나 사업마다 실패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운이나 환경 탓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말도 어눌합니다. 아는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학식도 배경도 없습니다. 내놓을만한 학위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석에 철이 붙듯이 그에게 재물이 몰려듭니다. 사람도 몰려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며 구제하며 선한 일에 열심을 냅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지식과 학위를 자랑하고 자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판단력을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인데 재물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두뇌와 판단력에 혀를 내두르며 그의 총명함’brightness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많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의 어눌한 말과 외모 때문에 무시당하기 쉬운 것 같은데 사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는 재물이 풍부하든 풍부하지 않든 상관없이 베푸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똑똑한데 재물에 대해 힘들어할까? 왜 어리숙하게 보이는데 재물이 그를 따르며 사람들은 그의 너그러움과 인자함에 대해 감동하고 존경하는 걸까?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은 지혜의 영역에 속했다는 사실입니다.-8:21 참조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2)

 

그러면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재물을 많이 모으는 그런 능력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만일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단지 재물을 많이 모을 줄 아는 능력이라면 세상의 모든 부자들이 존경받는 스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이란 무엇일까요? 소극적인 의미는 빚지지 않는 능력입니다. 빚을 지게 되면 마음이 채권자에게 종속이 되어버립니다. 마음이 묶이게 되면 영혼의 자유를 상실하게 되고 번민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고 한 길을 가지 못하고 한 우물을 파지 못하며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게 됩니다. 적극적인 의미는 재정을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똑똑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재정이 생기면 우선 필요한 곳부터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한 곳이라 할지라도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중요한 곳급한 곳을 잘 구분할 줄 알고 쓰기 전에 먼저 예산과 결산을 세우고 집행할 줄 압니다. 우선순위와 원칙과 방향을 가지고 재정을 다룰 줄 압니다. 재정을 사용하는 데 있어 똑똑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사이에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종종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혹은 해야 하는데 "재정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재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재정탓을 하지만 후자는 재정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자에게 중요한 것은 재정이 아니라 재정원칙입니다. 그래서 재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구제하는 것입니다. 도와줄 능력이 있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원칙과 방향이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입니다. 종종 재정이 궁핍할지라도 자신의 재정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래서 재정이 궁핍함을 느낄 때 결코 위축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어떻게 재정을 부릴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돈을 가지지 못해도 돈을 만들어내는 램프의 거인 지니를 가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돈이 없기 때문에'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wisdom를 가졌다는 것은 램프의 거인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재정을 부릴 줄 아는 능력(3)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재정에 관해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재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자신이 하고 싶은, 혹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두고 재정이 없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재정이 없어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선교단체에 있으면서 단기선교를 다녀보았고 청년부 사역을 오래 하면서 청년들과 세계 여러 나라로 단기선교를 다녀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고 싶은데 재정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재정이 없어도..’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단기선교를 다닐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그러나 단기선교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일상생활에 있어 어떤 일을 결정하려고 할 때 하나님과 상의하기 보다는 재물과 상의하려고 합니다. 재물과 상의하는 것은 재물을 섬기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특징은 재물이 없어도 재물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재정이 궁핍할 때 어떻게 재정을 불러올지에 관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의 지혜를 응답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같이 재정을 임의대로 불러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이 많기 때문에 구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없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의 재정원칙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나요?” 라고 물으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가진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찾아낼 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심을 줄 압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 30, 60, 100배의 결실을 거둘 줄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핍할지라도 궁핍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궁핍을 어떻게 다룰 줄 아는 것입니다.-빌4:11~13

 

                                           

 

똑똑함과 지혜로움의 차이에 관하여

 

따라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명석함에 비해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비해 자신의 삶은 너무 큰 축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실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고 있으며 세상은 자신의 미련함을 처벌하지 않는 곳이고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데 불공평한 곳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은 나를 공정하게 접대하지 않는 그런 곳입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운lucky이라고 여기는 그런 곳입니까? 내 생각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내 생각의 방향을 잘 읽어보면 내 생활의 방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나의 생활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나의 사고가 빚어내는 열매인 것입니다.

나의 미래는 오늘 나의 생각이 결정짓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어디 가야 좋을지 늘 방황합니다..

       저는 아주 미련하고 어리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지혜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만이 저의 지혜요 모사이십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성경은 지혜의 가치는 정금과 진주보다 더 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잠3;13-16)

        지혜가 제일이므로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지혜를 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잠4:7)

         지혜를 얻는 것은 마치 알라딘의 램프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지혜를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입니다.(전9:13-16)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지혜의 가치를 알고 지혜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지혜인 줄 알고 있으나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라 사이비 지혜요 헛된 똑똑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 지혜를 알지 못하고 또 줄 수도 없습니다.(고전1:19,20)

          참 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골2:3)

          성경은 우리가 지혜를 얻으려면 세상 속에서 미련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3:18-20)

          우리는 참 지혜를 얻기 위하여 스스로 똑똑하다는 생각과 자기 두뇌와 명석함 의지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해야 합니다.

          지혜자가 스스로에 관해 고백했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해 그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입니다."

          "나는 배우지 못했고 아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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