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pain에 관하여 생각해봅시다.
고통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현상일까요? 아니면 단지 감정일 뿐일까요?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적(정서적) 고통일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고통이 제일 큰 고통일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지만
거부당하고 버림받고 정죄당하셨던 예수님은 과연 어떤 고통을 느끼셨을까요?
육체적인 고통보다, 그 사랑했던 백성들로부터, 제자들로부터 받는 고통보다 더욱 큰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그 얼굴을 돌리실 때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받는 정서적인 고통은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의 속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요2:24,25; 마27:46
예수님께서 고통을 기쁨으로 참으셨던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고통 그 이후에 찾아오는 기쁨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히12:2; 롬5:3; 8:3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왜? 라고 묻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지? 누구 때문에 이 고생하는 거지?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가르쳐주는 것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때 우리에게 그 이유를 가르쳐주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을 이해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고통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지혜를 내려주실 수 있습니다.-약1:5
우리는 다른 사람이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너무 쉽게 조언하려는 경향을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의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고통을 당할 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말해주었으나
오히려 욥의 고통을 더욱 심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재난을 주는 위로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욥16:2
많은 사람들이 관계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 관계문제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문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계속 죽이려고 시도합니다. 그럴 때 다윗이 하프를 연주하여 달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기로 결심합니다. 만일 관계문제에서 겪는 고통이 내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의 고통이라면 피해서 도망가야 합니다. 만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부모나 남편과 사는데 도저히 상대방의 변화가 없고 내 목숨까지 위험해진다면..그런 경우는 무조건 도망가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도 핍박하는 마을에서는 오래 머물지 말고 도망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대부분의 관계문제에서 겪는 고통의 문제는 나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만일 내 육체에 찾아온 질병이 현대의학으로 극복할 수 없는 암이라면? 현대의학의 도움을 최대한 받아야 하지만 한게가 있다면?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요. 고통 중에서도 감사했던 사도바울처럼 약한 데서 강함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구해야 하겠지요.-고후12:7~10참조
육체적 고통 중에 해산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그 고통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그 어떤 여성보다 아름다우며 존경받을만 합니다.
어머니가 해산의 고통을 기꺼이 견디는 것은 품고 있는 생명 때문입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깊은 사랑이 고통을 견디게 만들어주는 힘의 원천입니다.
고통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자아상을 일그러지게 만들 것인지는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고통을 통해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고 나름대로 깨닫고 배운 바를 정리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통해 굳은 맹새와 다짐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일그러지게 하며
어떤 사람은 고통을 통해 원숙한 인격체로 다듬어지기도 합니다.
고통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되는가?
그것은 그가 어떤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자신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쪽으로 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큰 상처를 받았지만 형들을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형들을 용서하였고 형들의 자녀들까지도 품안에 안고 양육하였습니다.
상처와 고통이 우리 삶을 일그러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해 책임있는 청지기입니다.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고통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스승과 같습니다.
-시119:67,71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통과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그곳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고통을 받은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고통의 깊이는 곧 섬김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고후1:6
제가 예전에 올린 글입니다.
Happiness comes from pain..
누구나 무지개에 둘러싸이길 원하지만 비rain맞는 것은 싫어합니다. 하지만 빗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 무지개를 볼 수 없습니다. 참 행복을 맛보려면 오히려 행복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하고 고난pain의 바다에 자신을 집어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형제님이 '그러면 관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참아야 합니까?'라고 질문하길래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육체에 질병이 찾아왔는데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마찬가지로 관계에서 겪는 고통은 참고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고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의를 위해 살려면 핍박이나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무지개를 가까이서 볼려면 비를 감내해야 하지요..의를 위해 살려면 핍박을 감내해야 하고요..참된 축복을 받아 누리려면 또한 필연적으로 고난도 감내해야 하고요..성공과 행복을 원하지만 그에 따르는 고난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과 행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하지만 관계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찾아온 스승과 같아요..내가 어떤 면에서 변화되어야 하는지 배워야 하는데요..배울 것을 배우고 변화될 것이 변화되면 관계문제는 극복되고 고통은 물러갑니다..아프면 진단과 처방을 받고 약을 먹어야 하듯이..
차이점이 있다면 하나는 비자발적으로 겪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자발적으로 겪는 고통입니다..전자는 풀어서 극복해내어야 할 숙제이고 후자는 감사함으로 받는 훈장이지요..제가 말한 고통은 후자입니다..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을 잃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실제로 숲속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절대로 등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왜냐면 호랑이는 반드시 등 뒤에서 공격해서 목을 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를 만나면 반드시 그 눈을 쳐다보면서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합니다.
상처나 고통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아껴야 합니다.
고통과 상처는 같은 듯하지만 다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셨지만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을 통해 내가 더욱 강해지도록 하십시오.
고통 때문에 내가 약해진다고,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내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고후12:9,10
오래 참는 자를 성경은 복되다고 말합니다.
참으십시오.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끝이 있으니까요.
영원한 고통은 지옥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겪는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터널의 반대편을 바라보면서 참으십시오.
-약5:11
고통 중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고통은 삶의 일부분입니다. 피할 수 없는 '친구'입니다.
삶의 여정길 가운데 고통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이봐 너 고통~~
또 찾아왔네 그려~
그래 삶이 힘들다는 것 알았어!!
하지만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강하다구!!
알았어?
Hey, you PAIN~
Look who's here~
Yes, I've learned indeed
that LIFE is tough,
but I'm tougher.
Is that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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