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함과 지혜로움에 관하여 I
똑똑하다는 것과 지혜로운 것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지난 몇 주 동안 고민하고 생각하고 묵상했던 내용들을 두 번에 걸쳐서 올려봅니다.
저의 고민과 묵상은 완료된 것이 아니고 진행형입니다.
저는 아직도 지혜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물과 기름과 같은 것
똑똑함clever, smart, brite, intelligent과 지혜로움wise은 언뜻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아주 많이 다릅니다. 똑똑한데 지혜롭지 못할 수 있고 똑똑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매우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똑똑함과 지혜는 물과 기름같이 상극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지혜로워지려면 미련해져야 한다고 가르치니 말입니다. 사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 지혜로운 사람 하나도 없고, 자신의 명석함을 자랑하는 사람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똑똑한 척 할 필요도, 똑똑해지려고 애쓸 필요도, 똑똑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도, 그 앞에서 주눅 들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겸손히 조용히 진리를 따라 순종할 뿐입니다.-잠3:5,7;고전3:18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언제나 똑똑한clever 줄로 알고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항상 어리석은ignorant 줄로 알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신의 성공success을 자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자신의 실패failure를 자랑합니다. 지혜로 가는 길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생각부터 버리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잠30:2,3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라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풍부한 지식과 상식을 자랑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자랑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지혜에 이르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이고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지혜를 발견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패를 자랑하라
어리석은 사람은 성공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왜냐면 자신이 실패자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이야기로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실패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왜냐면 자신이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과 아이디어를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전7:2~4
교회 성장학에 심취했던 나의 어린 시절
저도 한 때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성공한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따라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나 내 속에는 화려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시절을 '어린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열정은 있었으나 올바른 방향은 없었던 때, 즉 ‘어렸을 때’ 저는 교회성장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발견한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다닌다고 성공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은 이것입니다. 올라가는 법을 배우려면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주님이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성공을 자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의도와 의지와 달리 점점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저는 자신이 가장 실패한 인생이고 바닥을 치고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인생과 같이 사니까 나도 바닥인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제야 비로소 저는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씩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삶이 성공적인 삶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판단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일입니다.(고전4:4)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공하려고 애쓸수록 더욱 성공에서부터 멀어지는 듯한 괴리감으로 느꼈던 괴로움에서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자유--분명 그것은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얻는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제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은 이러한 자유로움을 확보하지 않고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삶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공이 행복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행복이 성공을 위한 열쇠입니다. (성공보다 행복이 우선이고, 행복보다 자유가 먼저 와야 합니다. 자유에서 행복으로, 행복에서 성공으로 나아갑니다.)
보이는 것에 속지 말라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데 보이는 것과 달리 그 속에는 혼란과 혼동으로 뒤죽박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치고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고 내면에 평화와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속에는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번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공허함과 방황으로 일그러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멋진 매너와 성격 속에 무서운 야수의 폭력성이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 뒤에 상실감과 고통으로 울고 있는 모습이 감추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외면을 보고 내면을 보지 못합니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내면을 추측하려고 하지만 뛰어난 관찰력을 가졌고 대단한 추리력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관찰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해석에 있어 실수를 잘 합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명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실수가 많습니다. 참 놀라운 아이러니입니다. 차라리 스스로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실수가 적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교만은 많은 시행착오를 만들어냅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과신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많은 고통을 자기 인생에 불러들입니다. 소위 똑똑한 사람들이 겪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보는 것에 속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는 것을 가지고 함부로 단정짓지 않습니다. 그 이면의 것을 보려고 합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아름다운 것은 다르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치고 진정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장미꽃은 겉으로는 예뻐 보이지만 속에는 가시를 품고 있습니다. 예쁜 버섯일수록 독을 품고 있고, 예쁜 모양의 파충류일수록 무서운 독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사실 겉보기에는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는 겉보기에 영화배우 같이 고운 모양도, 남자다운 풍채도 없으셨습니다(사53:2). 솔로몬이 사랑한 술람미의 겉모습은 베두인들의 텐트와 같이 칙칙하고 거무스름했습니다(아1:5). 광야의 성막은 수달의 가죽으로 덮어 씌웠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아주 볼품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하게 보일수록 속으로는 화려하지 않고,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을수록 속으로는 화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영광을 피조물 속에 감추어 두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서 성취하시는 일도 그렇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겨자씨처럼 이 땅에 임하였고 씨seed와 같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감추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속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당하지 않습니다.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독을 볼 줄 압니다. 반대로 거무스럼함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볼 줄 압니다.-잠25:2
외모를 자랑하는 세상 속에서
한국은 성형천국이라고 합니다. 외신기자들은 한국에서 개최하는 미인대회를 보고서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너무 예민한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 가에 대해 과도히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큰 차를 타고 다니는 것과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큰 차를 타고 다니면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짙습니다. 한국에서 살 떼 제가 그렇게 느꼈으니까요. 또 큰 집에서 사느냐 작은 집에서 사느냐도 다릅니다. 큰 집을 다니는 아이는 작은 집을 다니는 다른 아이를 무시하는 경향을 배우게 됩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큰 교회를 시무하느냐 작은 교회를 시무하느냐도 다릅니다. 큰 교회를 시무하면 자신이 마치 큰 목회자가 된 듯이 생각합니다. 주님의 눈에는 큰 교회를 시무한다고 큰 목사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 시골교회, 개척교회를 시무한다고 작은 목사가 아닙니다. 한국사회가 체면문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합리주의문화인 서양문화에서는 좀 덜 합니다. 작은 차를 몰고 다닌다고 무시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한국의 호텔에서는 소형차를 몰고 들어가면 무시를 당하기 쉽습니다. 주차장에 파킹 서비스도 받기 힘듭니다. 반대로 큰 차를 몰고 가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서양사회나 이곳 아프리카에서는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있어서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큰 차를 몰고 다닌다고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아프리카의 백인과 흑인도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백인보다는 흑인이 좀 더 보이는 것에 민감한 편입니다. 그래서 백인보다는 흑인들이 좀 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서양이든 동양이든, 백인문화든 흑인문화든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 세상에 속한 사고방식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눈여겨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보이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누가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누가 더 멋지고 럭셔리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등등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것에 별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큰 집에서 살아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큰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왜냐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지혜는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예쁜 사람 vs. 아름다운 사람
나이가 어리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외모를 신경씁니다. 예쁜 사람,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인생의 굴곡을 여러번 겪어보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날 아내가 제게 ‘남자로서 어떤 남자를 멋있게 보는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초콜릿 복근을 한 남자나 TV나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는 그런 남자보다는 자신의 일에 비전과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 힘도 있고 속이 꽉 차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 없이 약해지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 그런 남자가 정말 멋있습니다. 여자가 보는 남자는 어떨까요? 결혼할 때만 해도 자기를 사랑해주고 배려해주고 잘 대해주는 그런 남자가 좋을 것 같고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혼하고 20년 이상을 살아보면 자신에게 잘 해주는 그런 남자보다는 물론 그것도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일에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프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아는 그런 남자가 더 멋있고 그런 남자와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사람을 보는 눈도 이와 같이 바뀌게 됩니다. 아니 바뀌어야 합니다.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성인아이’adult-child로 남아 있게 될 것이고 ‘성인아이’는 또 다른 상처와 고통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배워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예쁜 사람과 아름다운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과 존경할만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잘 생긴 사람과 멋진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생의 굴곡을 거치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격 vs. 성품
똑똑하다는 것은 성격이고, 지혜로운 것은 성품입니다. 성격personality은 가면이란 뜻의 persona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학습에 의해서 가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서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배우들과 같습니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남의 인생일뿐 자신의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 성품character는 가면 뒤에 감쳐진 나의 진면목입니다. 나의 참된 모습입니다. 성격은 내 힘과 노력과 학습행위로 변화될 수 있지만 성품은 내 힘과 노력으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나를 만드신 창조주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은 모든 참된 성품의 근원이요 뿌리인 것입니다. 원래 나의 참 모습은 ‘미련함’ignorant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의 참 모습을 가리며 살고 있습니다. 지혜로움wise이란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갈망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저는 링컨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똑똑하거나 잘 생겨서 아니라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음 글로 넘어가기 전에
링컨이 남긴 명언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그가 왜 지혜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지혜는 스스로 노력하거나 공부를 많이 한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고,
이 보배중의 보배는 풀무불을 통과하면서 정련되면서,
실패와 좌절을 통해 단련되는 과정 속에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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