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화평케 하는 사람들

등불지기 2013. 8. 26. 02:21

 

 

화평케 하는 사람들

 

그러면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을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선 팔복의 문맥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산상수훈 전체뿐만 아니라 팔복을 꿰고 있는 맥은 ''righteousness입니다. 의를 중심으로 팔복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각각 논리적인 순서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팔복에 관한 말씀을 제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소개하겠습니다.

 

[구원의 복]

A:심령이 가난한 자=자신에게 ''가 없음을 깨닫는 자

   B:애통하는 자=''가 없음을 슬퍼하는 자

      C;온유한 자=''가 없다고 비방하는 자 앞에서 분노하지 않는 자

         D: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자신에게 없는 그 ''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

 

[성화의 복]

A':긍휼히 여기는 자=''가 없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자

   B':마음이 청결한 자=''를 위하여 죄를 버리는 자

      C':화평케 하는 자=''를 가진 자로서 죄인의 편에 서는 자

         D':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주어진 ''를 위하여 기꺼이 값을 지불함

 

이상 본문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화평케 하는 자""온유한 자"와 연결이 되고, "마음이 청결한 자""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 온유한 자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또한 화평케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며, 화평케 하는 일의 결과로서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 자신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 앞에서도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비난 받아 마땅한 사람의 편에 서서 방패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습니다. 그 결과 핍박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5:3~10

 

화평케 하는 자를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의 유다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문맥에서 창 38장은 유다의 이야기가 갑자기 끼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는 일에 유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37:27참조)

 

그 일로 인해 유다는 그 형제들과 자신에게 깊이 실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공동체에서부터 떨어져 나옵니다.(38:1,2참조) 신앙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그의 삶에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그의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다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각성하게 하십니다..(요셉의 이야기에 유다의 이야기가 끼어드는 중요한 이유는 요셉의 마음을 돌리는데 유다의 역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세월이 흘러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을 방문할 때 요셉은 형들 중에 시므온을 감옥에 가두면서 동생 베냐민을 요구합니다. 다시 양식을 사러 가야 할 순간에 이스라엘 앞에서 유다는 직접 나서서 담보를 약속합니다.(43: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애굽에 형들이 도착하여 요셉을 만날 때 요셉은 술수를 써서 베냐민을 빼앗게 될 때에도 유다는 나서서 스스로 인질을 자청합니다.(44:32,33참조) 자신을 노예로 삼는 대신 베냐민은 그 형제와 함께 아버지께로 돌려보낼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돌려 보내소서.."

 

유다가 요셉에게 보여준 행동, 그리고 상처와 분노로 가득한 요셉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의 모습, 즉 자신을 종으로 내어주는 대신 묶여 있는 다른 이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의 모습을 본 요셉은 결국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성대곡합니다.(45:1,2) 이처럼 화평케 하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녹일 수 없을 것 같은, 상처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마음을 녹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서 보여준 유다의 용기와 헌신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는 예전에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주도했지만 역설적으로 요셉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야곱이 임종하기 전에 아들들을 축복할 때 특히 유다에게 내린 축복 역시 매우 특별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서 본을 보여준 유다에게서 통치권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그 예언은 실제 유다의 족보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리더와 통치자의 최고 덕목은 다름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로서 자신을 담보로 내어놓는 것입니다.(49:10)

 

예수 그리스도 역시 화평케 하는 자로서 유다지파에서 나신 것은 구속역사의 정점이었습니다. 죄 없는 분이 죄인들의 편에 서서 자신의 몸과 목숨을 담보물로 내어놓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 할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담보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화평케 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면 화평케 하는 자에게 주어질 축복을 생각해볼까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워질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s가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이 그에게로 향한다는 뜻이고, 화평케 하는 자에게 임할 축복으로 하나님의 아들’sons of God이란 칭호가 주어질 것이라고 한 것은 귀족이나 통치자와 같은 존귀함과 영예가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서 다윗을 한 번 볼까요?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사울을 놓아주었습니다. 복수를 실행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다윗은 복수의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즉시 죽임으로써 손쉽게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도리어 사울을 풀어줌으로써 계속 도망 다녀야 하는 고난이 연장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울을 풀어줌으로써 다윗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권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삶의 고난과 고통은 그대로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은 화평케 하는 자의 몫입니다. 사울을 풀어준 일만 아니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들의 반열에 넣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울의 후손들을 다 끊어버리는 것이 상식일텐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임하여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다윗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서 중보의 간구를 올립니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하늘로부터 내리는 재앙으로부터 그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것입니다.-삼하24:17,25

 

우리는 또한 야베스의 기도에서 화평케 하는 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존귀함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존귀가 주어진 것은 그의 소유나 지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난 받는 백성들 편에 서서 자신의 삶을 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모세는 태어날 때 그의 부모가 화평케 하는 자로서 그의 인생이 살아가게 될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2:2) 실제로 모세는 애굽의 모든 부귀 영화를 뒤로 하고 고난 받는 백성 편에 서기로, 노예로 신음하는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기로 결단하고 애굽의 왕궁을 뛰쳐나왔습니다.(11:25)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어도 될 정도의 존귀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소유와 높은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존귀honor는 낮은 자와 고난 받는 자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을 줄 아는 용기와 헌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란 칭호를 얻는 것은 가장 크고 존귀한 칭호를 얻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가장 존귀하고 고귀한 자로서 인식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혜와 평강이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내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찬송의 능력  (0) 2013.09.01
자족  (0) 2013.08.27
평화에 관하여  (0) 2013.08.26
믿음의 3단계  (0) 2013.08.20
축복에 관하여 V  (0) 201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