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관하여
평화peace에 관하여 묵상해보았습니다. 평화란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평화peace에 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평화는 안정감이다
평화는 소음이나 문제가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평화 혹은 평강이란 삶의 조건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평화는 마음의 평화이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누리는 상태, 즉 안정감sense of security입니다.- 시91:1,2,4; 27:1,3
평화에 대한 여러 관점들
문제는 이런 상태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물질이 전부인 세상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힘과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평화는 힘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반면, 불교나 힌두교나 뉴에이지 종교에서는 평화를 얻기 위해 내면에 집중하여 분노 고민 염려를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평화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반전주의자 혹은 평화주의자들은 사랑과 용서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힘의 균형은 언제나 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평화peace 역시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마음의 평정심을 의식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죽음이나 사후의 문제에 있어 보장해줄 수 없다는 일시적인 평화일 뿐이며, 사랑과 용서 역시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적인 평화는 무엇일까요?
평화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27:1,3)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91:1~6) 시편 기자는 자신의 안정감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인생만이 참된 평화를 맛볼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얼굴빛에서 온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6)
하나님의 얼굴이 나를 향하여 있을 때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내면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떠는 이유는 하나님의 얼굴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말할 때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시는 것, 외면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하늘 아버지께서 고개를 돌리실 때야 말로 최고의 고통을 맛보신 순간이었습니다.
여호와 샬롬 The Lord is Peace
누구든지 하나님을 본 자마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을 뵈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자신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삿6:23)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다니! 그때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 The Lord is Peac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기쁨과 감사가 평강의 원천이 되었고, 이러한 평화의 체험은 훗날 강력한 적군을 만날 때에도 두려움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체험하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삿6:23,24
젖 뗀 아이의 평화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3)
젖을 떼지 못한 아이는 오직 자신의 배가 부를 때만이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젖을 뗀 아이는 배가 고플지라도 어머니의 품에 있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의 소원이 성취되기 때문에 갖는 안정감은 참된 평화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나의 문제가 여전히 그대로 있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가시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품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말씀은 평강peace의 원천이 의righteousness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평화는 의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희락은 평화의 열매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니며 외적인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오는 것도 아니라 의righteousness를 이해하고 의를 소유하고 의를 즐거워할 때 오는 것입니다.-롬14:17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다윗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두 가지를 힘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눈이 높지 않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과 높은 눈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 공간이 없습니다. 둘째,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잘 간수해야 합니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131:1
평화는 목표가 아니다
평화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는 평화에 관해 유명한 격언을 남겼습니다. “Peace is not merely a distant goal that we seek, but a means by which we arrive at that goal.” 우리의 삶은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반드시 실망과 낙담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평화는 우리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것, 우리가 애쓰는 것을 성취하게 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용서와 평화의 관계
용서forgiveness는 용서받음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평강으로 가는 중요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용서란 내가 묶어놓은 사람을 은혜로이 풀어주는 행위give freedom인데..우리가 아무게를 용서하는 이유는 그가 자유로워질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하는 우리가 자유로워질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줌으로써 자유를 얻습니다.-마6:14,15
풍랑 가운데 주무셨던 예수님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마8:24)
큰 파도가 일어나 타고 가던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곧 침몰할 것 같은 순간에 제자들은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외부의 그 어떤 상황에도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마음이 항상 잔잔하며 고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품 안에 항상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평강이 그 마음을 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황변화보다 마음지킴이 우선이다
사람의 마음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우리 삶에 예상치 못한 파도가 일어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도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외부의 파도 때문에 죽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면의 파도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를 질식시키는 것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파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도입니다. 일단 세상이란 바다를 항해할 때 파도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일단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 가운데 기도와 간구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평강이 내 생각과 마음을 덮을 때까지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는다는 것은 비록 내 상황이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내 상황을 접수하셨고 그 권능의 손으로 통제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빌4:6,7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죄의 세력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요일3:21,22)
그러나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살의 파도가 아니라 죄입니다. 죄는 우리 마음에 견고한 진을 짓는 일종의 세력power과 같아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맹렬하게 저항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을 충만하게 덮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숨은 죄를 찾아내어야 하고 죄와 싸워야 합니다. 특히 미움, 증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정죄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평화를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자신에게 먼저 당당해져야 합니다. 죄를 버리고 의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평화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사는 인생의 행복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시91:4)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인생을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숨는 인생을 누가 당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지하 벙커도 은행 금고도 아니라 하나님의 날개 아래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자,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와 거처라고 믿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까 내가 너를 건질 것이다. 네가 내 이름을 알기 때문에 내가 너를 높일 것이다."(시91:14) 하나님의 날개 아래 사는 인생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날개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안정감이 보장되지 않으면 행복 역시 보장될 수 없습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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