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관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에 관하여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묵상해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신앙생활 혹은 교회생활을 위한 헌법 1조 1항에는 '자유'란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자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할 수 없고 또 누구에게도 강요당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이나 신념체계는 강요할 성질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어떤 믿음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택과 의지를 존중하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을 주는 그런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갈5:1
강요에 못이기는 삶에서 탈출하라
따라서 무슨 일이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거나 혹은 강요에 못이겨 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모습도 아니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환경이나 조건도 나에게 강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 그래서 언제나 주도적으로proactive 사는 것이 일차적인 구원의 목적입니다. 혹시 부득불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의미없이 보이는 일, 사소한 일 가운데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군대 가는 것을 너무 싫어했습니다.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고,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부리는 그런 군대문화가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엔 더 이상 미루지 못해 27살의 나이에 군 입대를 했습니다. 그것도 최전방 부대에 입대해서 온갖 고생을 다 해보았습니다. 제 동생보다 더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온갖 욕바가지를 다 뒤집어써보았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훈련 다 받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미워하시는 줄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다고 탈영할 수는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훈련과 행군의 연속적인 삶속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전역할 날만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역을 8개월 정도 남겨두었을 때 그토록 멀리 있고 저의 고통에 대해 무심하신 것 같은 하나님께서 직접 제 곁에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분의 손이 차가운 제 가슴을 따뜻이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싫었던 군대생활이 갑자기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역하기 몇 달 전에 군종병으로 임명이 되었고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초소를 돌면서 추위에 떨며 경계근무를 하던 병사들을 심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곤하게 잠든 신우들을 깨워서 새벽기도회에 데리고 가서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부대에 전입하는 어린 사병들과 면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부대에 탈영사고, 총기사고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던 군 생활이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의미있어지고 보람이 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외출이나 휴가후에 복귀할 때 그토록 싫던 곳이 어느새 편안하고 자유로운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해야만 하는 일들에서 자유하는 법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괴로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계속 그 일을 합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삶에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많은 ‘의무들’responsibilities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 많은 ‘해야만 하는 일들’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디 있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주도성proactivity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Are you now trying to attain your goal by human effort?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대적하는 원수는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란 행위를 은혜 앞에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는 항상 행위를 조건으로 내세웁니다. “만일 이와같이 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내세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으니 우리도 이렇게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면 율법주의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으니 십일조를 드린다”고 한다면 은혜주의인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너무나 부패하고 타락하기 쉬워서 처음 신앙생활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내세우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더 내세우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패성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Serve one another in love..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은 우리의 자유freedom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자유’는 우리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라 ‘섬기는 자유’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왜냐면 섬김serving과 자유freedom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이전에는 억지로 섬겼다면 구원이후에는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섬김으로 자신의 자유가 속박됨을 느꼈다면 이제는 섬김으로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입니다.-갈5:13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Live by the Spirit..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도성’을 회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삶은 오직 성령을 따를 때 주어지는 삶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르는 삶이란 어떤 삶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 의지와 생각과 상관없이 어떤 신비한 힘에 이끌리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한, 혹은 잠든 채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몽류병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십자가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하고 또렷한 의식과 자아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삶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자신의 이성과 의지가 배제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자신의 이성과 의지가 더욱 선명해지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기꺼이 순종하려는 자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선명하게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음성에 관하여 오해를 하는 것은 성령의 음성이 마치 우리를 로봇이나 커피머신과 같이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성령님, 오늘 아침 무엇을 먹을까요?’라고 하거나 혹은 출근하면서 ‘성령님, 오늘 택시를 탈까요, 아니면 버스를 탈까요?’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샤마니즘적으로 대하는 태도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은 결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파라클레토스’로서 곁에서 돕는 분이시며 상담하시며 깨우치시는 분이십니다. 즉, 성령은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배제하고 우리를 억압하거나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스스로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기를 기다리십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If you are led by the Spirit, you are not under law.
내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며,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과 원칙과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어떤 은혜로우신 일을 행하셨는지, 앞으로 또한 행하실 것인지에 대해 항상 생각합니다. 행위를 앞세워서 은혜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은혜를 앞세워서 생각하며 행위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항상 먼저 생각하고 앞세우므로 무슨 일을 하든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며 강요당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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