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자유에 관하여(3)

등불지기 2014. 1. 10. 18:21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해 계속 묵상해봅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영역을 가지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재정에서의 자유

freedom in finances

 

전에도 올린 글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재정적인 영역financial affairs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고 잃지 말아야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debt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극적 의미에서 재정적 자유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게borrow 되면 돈을 빌려준lend 사람에게 묶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갚아야만 한다는 부담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 염려함으로 그 심령에 평안이 사라지게 됩니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따라서 재정적으로 빚을 지지 않는 삶은 실제적으로 자유를 누리는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만일 부득이 한 사유로 빚을 지게 되었다면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로 빠른 시일 안에 갚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 한 이 있더라도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빚을 갚는 것이 중요한 우선순위이지만 이 또한 선을 위하여 심는 행위investment보다 더 우선될 수 없습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재정적 자유는 빚을 지지 않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재정적 자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필요가 생겼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채워주실 것을 믿고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필요needs와 나의 소원wants를 잘 구별할 줄 알며, 하나님께만 나의 필요를 겸손히 아뢸 줄 알며, 하나님께서 풍성히 채워주실 것을 신뢰하며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재정적 자유란 인색한 마음이 없는 것, 넓은 마음으로 베풀어 줄 줄 아는 것,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구제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제하고 섬기며 베푸는 것을 일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베풂으로써 자신 안에 있는 인색함과 좁은 마음과 싸워 이기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재정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머리만 아니라 가슴과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행위는 곧 받는 이가 아니라 주는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재정의 결박에서 자유하려면

how to be freed from the bondage of finances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잠11:24,25)

좁은 의미에서 재정적인 속박은 '빚'debt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 재정적인 속박은 모든 결정을 돈의 유무와 가치로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정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근원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그리고 성경적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성경이 가르치는 재정원칙을 따라 농부의 마음을 가지고 '심는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의 영혼만 아니리 우리의 모든 삶의 부분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신실하게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그것은 줌으로써 받는 것입니다. 베풂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섬김으로써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더 가지려고 애쓴다고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줌으로써 자유로워집니다.

 

사람들은 빚을 졌을 때 우선 최대한 아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과도히 아껴도 더욱 가난하게 될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양식과 심을 양식을 함께 내려주시는데(고후9:10), 심을 양식을 심지 않고 아끼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심을 것은 아끼지 말고 심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심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심는 일은 계속 해야 합니다. 구제와 봉사는 순간적인 요령이 아니라 생활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껴야 하는 것은 심을 양식이 아니라 먹을 양식입니다. 재정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고정지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물론 저축도 해야하지만 저축만으로 재정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투자, 저축, 그리고 지출을 두고 때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때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늘이고 줄이면서 균형을 잡아나간다면 반드시 때가 되면 재정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빚탕감과 같은 기적적인 빚상환이나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재정적 결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역시 기본적으로 '말씀경청과 순종'이라는 큰 틀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관계에서의 자유

freedom in relationship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2:18)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는 뜻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으며 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며, 교만한 태도나 말투로 인해 공연하게 미움을 받고 오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을 관계에서의 자유’freedom in relationship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당당하며 숨거나(은폐), 가리거나(엄폐) 할 필요가 없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거나 혹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고 스스로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입혔을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게 만들어야 하고 우리 자신을 숨기거나 포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직장과 학교에서의 자유

freedom in schools and works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3:24)

직장과 학교는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늘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예전에 부목사로 섬겼던 교회가 꿈에 나타납니다. 심한 경우는 전방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이 꿈에 보입니다. 왜 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우리를 지치게weary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유는 우리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하던 일로부터 멀리 벗어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일, 무의미하게 보이는 일, 잡무 속에서 주 그리스도를 발견함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개인적으로 행정업무를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책장을 정리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쓸 데 없는 가십거리를 나누는 대화자리도 싫어합니다. 공무원들이 하는 것같이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일은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왜 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해야만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빨리 해치우고 놀자라고 말합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빨리 해놓고 자기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일을 잘 하면 또 맡기고 또 맡깁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자유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잡무 중에 거절해도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세상에서도 가르쳐주는 요령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바라시는 것은 빨리 해치우고 노는 것이나 거절과 타협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일 가운데서도 주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비록 내 앞에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그리스도 앞에서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할지라도 수도꼭지 앞에서가 아니라 주 그리스도 앞에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미 없는 숙제를 왜 해야 하냐고 허공에다 한숨을 쉬기 전에 주 그리스도 앞에서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 자신 앞에 주 그리스도를 초청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사소한 일들이, 의미없던 어떤 일들이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되고 내게 광채를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굉장한 경험입니다. 아무도 그런 잡무에 열성을 다하는 나를 보고 알아주지 않지만 한 분 그리스도께서 나를 알아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그 일을 하는 기쁨이란!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기시며 상 주실 것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황홀한지! 그래서 월급을 받는 직장이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직이 되고, 내가 받는 월급salary은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보너스bonus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미없는 학교생활, 의미없어 보이는 직장생활도 가장 거룩한 생활로 만들 수 있고, 학교나 직장을 지극히 거룩한 성소most holy place로 만들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믿음으로 주 그리스도를 모셔올 수 있으며 주 그리스도앞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주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우리는 일터를, 학교 교실을 지성소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 그리스도를 섬김으로써 우리는 일터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상처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hurts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상처를 받지 않고 자라는 사람 없고 상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받는 것과 상처를 받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상처는 충분히 극복할 수는 있습니다. 고통을 받지 않는 길은 세상에 아주 없지만 상처를 넘어서는 길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상처를 받는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상처를 받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상처받지 않기로 결심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고통을 받을지언정 상처는 받지 않으며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상처를 받는 것은 나의 자아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신의 미숙함과 약한 부분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상처를 통해 내가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계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받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처를 받는다고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럴 때만 쓰라린 상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상처를 받는 것은 내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가 온전히 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상처를 받는 순간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닫아버리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를 겸손히 구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상처는 우리를 더욱 자라게 할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로 자유에 대한 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요셉은 어릴 적 그 형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버림을 받아 노예로 팔려버리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애굽의 총리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절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형들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이후 한참 세월이 흘러 식량을 구하려 형들이 그에게 찾아왔을 때 그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상처가 분노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은 그에게 한 줄기 진리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한 줄기 빛과 같이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미리 보내셔서 그 가족의 구원을 예비하게 하신 것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주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조차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돋보이게 만드는 작은 그릇에 불과함을 깨닫는 순간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은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했고 그 순간 그 자신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형들은 여전히 요셉에 대해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요셉은 참된 자유를 누리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남은 생애를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고난의 가시밭을 걷게 만든 형들의 자녀들을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요셉은 기꺼이 사랑으로 형들의 자식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보며 양육하는 일을 자처했습니다. 사랑으로 종노릇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섬기는 일을 한 것입니다. 요셉의 삶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감옥에서 풀려나 애굽의 총리가 된 사건이 아니라 그의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한 사건이고 그렇게 용서하기 전에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덮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벗겨버린 사건입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상처의 감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그러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Jn.8:32

 

South Africa,

자유를 누리며 살기 원하는 모든 형제 자매 그리스도인들에게,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제가 묵상한 내용에 따라 제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묵상이란 제 마음에 집어넣고, 제 자신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내일 제 삶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제가 묵상한 것을 제 마음에 가득 채우며 살 것입니다.

다른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제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오늘도 모든 등불가족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과 말씀으로 축복합니다..

Get free in Christ our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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