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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샤론의 꽃

by 등불지기 2014. 3. 9.

 

[남부 아프리카에서 8월말에서 9월에 피는 수생식물인 칼라릴리calla lily입니다]

 

I am a rose of Sharon..

 

예루살렘 미인들 앞에서 "이래뵈도 난 아름답다"며 그렇게 당당했던 술람미 여인도 정작 결혼식 첫 날 밤 솔로몬 앞에서는 자신을 샤론 평원에 무수히 피어있는 이름없는 들꽃 중의 하나로 고백합니다. 술람미가 고백한 '샤론의 꽃'은 어떤 꽃일까요? 샤론평원Plain of Sharon은 이스라엘의 3대 평원 중에 하나로서 지중해 연안 욥바에서 갈멜산 까지 이어지는 넓은 평야로서 원래는 늪지대가 많아서 사람들이 살지 않고 양이나 소를 키우는 목축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옥한 땅으로 개간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입니다.

 

솔로몬의 포도원이 갈멜산 기슭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갈멜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샤론평원이 내려다보입니다. 갈멜산 기슭에서 포도원지기로 일했던 술람미 가족들은 샤론 평원에 피어있는 들꽃들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샤론평원은 지금과 달리 원래 늪지대와 목축지였습니다. 미국식 단어 rose of Sharon은 한국에서 늘 보는 무궁화이지만 무궁화는 관목식물이고, 늪지대에서 잘 자라는 수선화narcissus나 수생식물인 칼라 릴리calla rily나 튤립의 일종일 것입니다.

 

찬송가에서는 샤론의 꽃을 예수님께 비유하지만 성경본문에서는 술람미 자신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면 아무리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자신을 샤론의 수선화로 고백하는 술람미에게 솔로몬은 "당신은 "가시나무중에 백합화"a lily among thorns라고 화답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에 비하면 다른 사람은 모두 가시나무thorns와 같소"란 뜻인데요..술람미를 띄워주는 솔로몬의 재치와 유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눈이 멀게 됩니다. 오글오글..ㅎㅎ

 

참고로 수선화를 가리켜 나르키소스라고 부르는데요..그 이유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건데 나르키소스란 청년이 물이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흠모하다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에 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꽃말은 신비한 고결이라고 합니디ㅏ. 요즘 셀카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것을 가리켜 나르시즘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저는 셀카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요..일단 자신이 아름답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하지만 나르키소스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샤론의 이름없는 들꽃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며 비난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자시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면서..그렇게 비난하는 이단은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면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을 죄인이라 부르며 자학하거나 무조건 자기비하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릇된 자기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임재 안에 깊이 들어갈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수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라고 탄식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샤론의 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알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입니다. 이것은 그릇된 자격지심과 다른 것입니다. 사랑받는 자로서 갖는 거룩한 수치심divine shame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겸손의 미덕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샤론의 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겸손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 첫 주일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흠모하며 살기를 소망하며...

 

김광락 선교사 올림..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수선화narcissu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