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자존감에 대해서

등불지기 2012. 2. 28. 21:06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자녀 삼으신 그분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한 사람..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존감이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묵상해보았습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

저는 굳이 자존심과 자존감을 구분합니다. 자존심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매기는 평가점수라면,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하나님의 관점으로 매기는 평가점수입니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평가에 관심이 많으며 쉽게 분노하거나 변명하려고 골몰하게 됩니다. 반면 자존심이 낮은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낙심하거나 우울해지게 되지요. 그러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경우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에 그리 큰 영향력을 받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평가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보면 나의 자존심 점수와 자존감 점수를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은 "은혜를 입은 죄인" 즉, 유동적인 자존심과 높은 자존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평가에 얼마나 민감합니까? 혹은 하나님이 자신을 바라보시는 평가가 너무 중요한 나머지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하여 매기는 점수에 초연할 정도입니까?

 

능동적인 자존심

여기서 '유동적인 자존심'이란 때와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행적을 보면 사도의 자아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구절이 많은데요..그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매질을 당하기도 하고 여러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가 보여준 자아상은 "나는 교회를 핍박한 자로서 이러한 고난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으로 간주하기도 했지만 자신은 교회를 핍박한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빌립보 감옥에서 풀려날 때(매를 맞고 감옥에 갖힐 때는 침묵하다가도) 그는 자신을 로마시민권자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때 언제나 똑같은 점수를 매긴 것이 아니라 때와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자아상을 '능동적인 자존심' 혹은 '유동적인 자존심'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의 가치에 대해 능동적으로 평가를 매길 줄 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계시는가에 대한 그의 믿음은 때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준 자아상은 '능동적인 자존심'과 '건강하고 높은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기도하라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엡1:18)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보배로운 소유로 인정해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보배롭게 여기시는지, 그 보배로움의 깊이와 높이를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가장 긴 시간(3년) 동안 헌신하며 개척한 교회,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에베소 교회를 위해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까닭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 주에서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때 그들의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은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순간부터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시작하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성장과 성숙에 속한 문제입니다. 자존감이 건강해지려면 은혜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 은혜가 특별히 선행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아빠되심을 깊이 경험해야 하고, 둘째는 죄사함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은혜가 지속적으로 더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수 십 년 신앙생활을 하여도 여전히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며 자존심 문제로 상처받고 상처주는 일들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기도

사도 바울이 개척하고 세운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는 매우 특별한 교회였습니다(행19). 그들을 위해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간절히 기도한 것은 네 가지 앎의 은혜였습니다. 첫째, 친밀감(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둘째, 소명감(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시고), 셋째, 자존감(기업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넷째, 안정감(그 능력의 크심을 알게하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가정예배 때 이 네 가지 "감"을 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감이 이렇게도 많냐면서 감을 먹고 싶다고 하네요..ㅎㅎ오늘도 하늘의 아빠께 풍성한 '감' 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엡1:17-19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부터 시작하자

에베소서 1:3-14은 위대한 프롤로그, 웅장한 유롤러지입니다. 고대 헬라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긴 문장, 그것도 한 문장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고 감사가 터져나왔길래 옥중에서조차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을까요..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복을 몽땅 다 부어주셨고 또 부어주고 계신다고 하면서 네 가지 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상속자로 삼아주신 것(5), 둘째, 우리를 속량해주신 것(7), 셋째, 우리를 기업으로 삼아주신 것(11), 넷째, 자신의 소유이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건드리면 혼낼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시면서 우리를 인쳐주신 것(13)입니다. 이 네 가지 신령한 복을 근거로 사도 바울은 네 가지 앎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부터 한 가지씩 적용하고 있지요. 우리가 어떻게 자녀가 되었는가(2:1-10), 우리가 어떻게 속량을 받았는가(2:11-22),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4:1-32), 건강한 자존감이란 무엇인가(5:1-6:9), 안정감이란 무엇인가(6:10-20)

 

건강한 자존감이 빚어내는 자아상self-images

에베소서의 구조 속에서 5장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은 "사랑을 받는 자녀" "빛의 자녀"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이미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의 문제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 문제(15-33), 부모와 자녀의 관계문제(6:1-4),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문제(6:5-9) 이렇게 세 가지 큰 관계의 영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낮은 자존감,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은 이러한 관계의 영역에서 트러블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자존감의 문제를 적용할 때 가장 먼저 부부의 문제부터, 그것도 아내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의 증거proof of self-esteem

사도 바울의 글에 의하면 건강한 자존감이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을 이렇게 여기면서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다" 둘째, "나는 빛의 자녀이다." 셋째, "나는 지혜로운 자녀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첫째, 정결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3-7), 둘째, 정직성과 투명성(9-14), 셋째, 분별력(16-21)입니다.

 

"나는 너무나 넘치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존감이 낮은 경우는 대게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말은 자녀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줍니다. 물론 부모와 친밀한 관계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친구의 말이나 매스컴 등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성장기만이 아니라 다 컸어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인데..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길 때는 그 욕구불만으로 인해 언어적인 파괴력(폭언, 불평, 원망, 비난, 수군거림, 희롱, 비꼼, 음담패설, 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존감이 건강해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열매가 '정결한 언어'입니다.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은 거울을 쳐다볼 기회가 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본 멋진 남녀 배우의 모습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거울을 바라보기가 두려워질 것입니다. 그들의 멋진 모습에 비해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까? 저는 요즘 거울을 바라보는 것이 싫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 선교지에서의 언어, 치안, 음식, 환경 등으로 인한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증상^^, 키가 큰 백인이나 멋진 피부를 자랑하는 흑인에 비해 별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외모를 쳐다보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솔직히^^ 하지만 거울 보기 싫을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을 말씀으로 축복해야 할 때임을 압니다. "너는 과분하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빛의 자녀다!" "너는 하나님의 보배다!" "외모는 이렇게 보여도 속사람은 점점 멋져가고 있군!" 거울에 비친 나를 말씀으로 격려하고 축복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거울에 여러분의 모습이 비칠 때 어떻게 하나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 중에 어느 것이 여러분의 자아상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사역보다 더 중요한 자존감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할 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사역의 열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목사나 교사 혹은 선교사로서 '건강한 자존감'을 갖는 일은 사역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언제나 비교당하고 평가되고 비교되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낮은 자존감의 문제로 고통 당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습니다. 반면 쓸데없는 자존심 문제로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상처를 주면서까지 사역을 잘 한다고 평가를 듣기보다는 건강한 자존감으로 만나는 모든 이들을 감싸주고 축복하는 그런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한 '감'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감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함에서 뿌리를 둔 자존감으로 항상 충만하셨으나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에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던 분..사람들의 말과 평가가 기준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오는 영광이 모든 기준이 되셨던 분..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맏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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