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교회를 다닐 기회가 있는데 특이한 현상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찬양팀이 사용하는 곡과 악기 구성이 거의 비슷하더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리드싱어와 보조싱어들이 있고 전자기타 드럼 전자피아노 등 사용하는 악기들도 비슷합니다. 찬양팀이 부르는 복음송은 힐송, 어노인팅, 예수전도단 등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서울의 어느 큰 교회에서든 지방 어느 작은 시골교회에서든 찬양팀의 구성과 노래는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예수 전도단에서 3년간 있어보았고 아이들 데리고 화요모임에 자주 참석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찬양을 교회들 안에서 즐겨 부르는지 관심이 있어 찾아서 듣곤 합니다.
아내가 피아노 반주를 즐겨하고 피아노를 치면서 찬양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내 역시 최신 복음송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찬양은 교회의 모든 모임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비중이 높은 부분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도 찬양은 선지자들의 예언사역이나 신약 교회들의 예배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찬양팀과 찬양팀의 찬양 스타일에 관해 지적하고자 함이 결코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똑 같은 악기 구성, 똑 같은 노래, 똑 같은 스타일로 찬양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원래 찬양과 경배 사역의 시작은 미국 갈보리 채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갈보리 채플은 초창기부터 마약과 술에 중독된 히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부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회심한 히피들이 교회안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교회 앞에서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커져가서 한국에 건너와서 찬양과 경배 사역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찬양이 너무 좋아서 내가 따라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쯤 진지하게 자문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60년대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회심한 이후 그들이 잡았던 악기를 가지고 이제는 자신을 구원하신 구주를 높이는 찬양을 부르기 시작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들은 자신을 구원하신 구주를 자신들이 만든 시와 찬미로 높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도시든 도서이든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천편일률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고 악기를 능숙하게 다룬다면 자신만의 곡을 만들어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 구주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런 찬양을 적극 권장해야 합니다. 교회마다 있는 찬양에 은사가 있는 찬양팀은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도록 격려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만의 고유한 찬양이 나타나야 합니다.
2023.7.7
김광락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