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기독교 신학을 위해 사용할 양자역학 용어들

등불지기 2024. 8. 28. 10:17

 

기독교 신학의 재구성을 위한 양자역학 용어들 소개

 

이제 양자역학과 신학의 관계를 어떻게 진술할 것인지에 관하여 생각해 볼 차례다. 우선 폴킹혼이 제안한 양자역학과 신학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자는 제안은 매우 흥미롭다. 위에서 언급한 양자세계의 특성이 신학에서 말하는 교리적 특성과 매우 유사한 면이 분명히 있다. 사실 고전물리학과 신학보다는 양자역학과 신학이 훨씬 더 많은 유사성을 공유한다. 양자역학이 그만큼 ‘영적’인 면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중첩되어 있다는 신학적 교리와 빛과 물질이 입자와 파동이 서로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의 중첩현상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나는 양자역학과 신학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양자역학적 원리와 용어로 신학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단지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조금 아쉽다. 왜냐면 최근에는 주역, 성리학과 같은 동양철학과 양자역학, 불교와 양자역학, 심리학과 양자역학, 정신분석학과 양자역학 등 여러 방면에서 비슷한 방법론으로 서술한 책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신학을 진술하기 위해 사용하려는 양자역학 용어는 무엇인가? 나는 기독교 신학체계를 기술하는 데 사용되는 열 가지 기본적인 틀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은 영이시다. 이때 ‘영’은 히브리어 ‘루아흐’ 즉, 바람(wind)이다. 기압차이로 생기는 공기의 흐름인 바람은 질량이나 형체가 없다. 이 단어는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일컫는 말로서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파동’이나 ‘진동’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바람’이라고 직역하여 표현해도 교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실제를 더 잘 느끼게 해 준다.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모든 만물은 진동하고 있으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로서 만물과 본질적으로 구별되어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동’(wave)이다. 이러한 파동은 모든 양자세계의 파동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파동’이라고 할 때 또한 양자세계에서 빛이나 원자 혹은 아원자(sub-atomic particle, 원자 및 원자 내 소립자들)의 파동과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말씀으로서의 파동은 모든 양자세계의 원인자가 된다. 또한 이 ‘말씀’은 ‘로고스’로서 인격체이다. 이 ‘말씀’이 성육신하였는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즉, 모든 만물의 존재 목적이 되신다.

 

셋째,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원천적 파동으로 모든 물질의 근본이 되는 양자세계를 창조하셨다. ‘로고스’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요 1:3 참조) 로고스는 모든 만물의 근본이며 양자의 목적파(pilot-wave)를 만들어⋁낸다. 양자세계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넷째, 하나님께서 최초 만드신 빛은 양자세계이며, 양자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이러한 양자세계는 ‘파동’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양자세계에 있는 초끈(super-string)을 진동시키며 파동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원천적인 파동이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건설하신 양자세계에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양자세계인 빛을 만드셨고, 이 빛으로 모든 형태의 물질이 만들어지며, 이 빛으로부터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의 에너지가 되기 위하여 다양한 파동의 형태로 나온다. 육신을 가진 인간의 눈은 이 분출되는 빛의 극히 일부 구간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 빛으로 생성되는 우주적 소리의 일부분만 들을 수 있다.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에 같은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가 믿음이다. 믿음은 그 자체도 또 하나의 진동(vibe)이다. 영혼의 진동을 일으키는 데에 하나님의 영이 개입하시는데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조명하심’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공진’(resonance)이라는 물리현상으로 설명된다.

 

일곱째, 죄는 하나님과 단절시키고,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케 하는 것이며, 구원이란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대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임 받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빛 되심)에 도전하고 대항하는 반역이며, 이 죄에 대해 하나님은 얼굴을 돌리신다. 죄인을 외면하시던 하나님께서 다시 죄인을 대면하시는 것이 ‘은혜’이며 그 혜택을 받는 것을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한 은혜는 인간에게서 시작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방법을 인간이 순순히 따라야 한다. 그 방법이란 생명이 있는 ‘피’로서 죄를 덮고 씻는 것이다. 이것이 속죄의 원리이다. 속죄교리를 파동의 중첩원리(principle of superposition)로 설명할 것이다.

 

여덟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얼굴빛 아래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은 모든 생명체의 생육 번성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활발한 생명력을 가져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빛을 비추시는 것을 구약의 제사장들은 ‘복 주심’으로 이해했다. 이것은 물리학에서 증폭(amplification), 또는 파동의 보강간섭(constructive interference)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홉째, 부활체는 첫째 날 창조하신 그 빛으로 만든 초신체(超身體, super-body)이다. 첫 아담의 신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체와 동일한 구조였을 것이다. 이 신체의 특성과 기능 또한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것이다. 첫 아담은 모든 죄인의 머리가 되었고, 둘째 아담은 모든 의인의 머리가 되셨다.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조(contrast)는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개념이다.

 

열째, 마지막 심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윤회하지 않으며 ‘탄생-죽음-심판’이란 일직선의 역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죽은 자가 다른 산 자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 마지막 심판은 생명의 빛으로 모든 인간을 감별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심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생명책’과 ‘행위의 책들’은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으로만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