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카오스: 창조의 배경

등불지기 2024. 8. 28. 10:34

 

혼돈: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그러면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세계는 어떠했는가? 창조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첫째 날 창조의 배경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1:2) 여기서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 있었다고? 그리고 이 있었다고? 이게 말이 되는가? 성경은 스스로 모순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바다는 둘째 날과 셋째 날에 등장한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우리는 성경이 철학서도 과학서도 아니라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광야 이스라엘 백성에게 창세기의 말씀을 주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말씀하고 계신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 내린 일련의 재앙들로 인해 쫓겨나다시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에 와 있다. 그들에게 최대 관심은 자신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이 왜 거기 있게 되었는가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먼저 세상의 기원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세상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때 오늘날 현대 과학자들의 용어로 설명하지 않으신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하나님은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창세기 12절을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오늘날의 과학이론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양자역학을 스스로 공부하기 전부터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천문 관련 서적을 보았다. 내가 이해한 창세기 12절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지만 무()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칭성의 원리에 따라 양자역학이 설명되는 유니버스가 있으면 양자역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 빛은 어둠 속에서 창조된 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여기서 말하는 땅은 지구를 말하는 것이 분명 아닐 것이다. 이것은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태의 어떤 물질세계를 말함이 틀림없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여기서 말하는 흑암은 첫째 날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신 다음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을 때 그 밤일 것이다. , 창세기 12절의 흑암은 첫째 날 창조하신 빛, 즉 양자세계의 배경이 되는 암흑물질암흑에너지일 것이다. 우주에서 약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 물리학계에서 최대의 화두가 된 암흑물질의 정체에 관하여서는 여전히 연구 중에 있으며 양자역학이 작용하지 않는 소립자 덩어리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면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약 70%를 차지하는 힘으로써 입자와 반입자가 지속적으로 생성 소멸을 반복하는 진공에너지, 혹은 우주팽창을 가속시키는 힘 또는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 등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우주에서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양자역학이 작용하는 물질세계(코스모스)는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 , 인간은 우주의 96%에 관해서는 어떤 물리적인 특성조차 모르고 있다.

 

창조의 배경에 관하여 계속 살펴보자. 히브리어 문법의 특성 중 하나가 대구법(對句法)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혼돈공허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혼돈무질서와 약간 다르다. 무질서(disorder)란 뒤죽박죽 섞여 있는, 무작위성(randomness)이라고 한다면 혼돈(chaos)’은 얼핏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질서가 있는 그런 상태이다. 앞서 말했듯이 물리학자에게 완전한 무로서의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텅 빈 공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천문학자들의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공허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니다. , 원자로 구성된 물질세계로서 존재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질량을 가진 입자도 있고 에너지도 있으며 생성과 쌍소멸과 같이 서로 밀고 당기는 일종의 법칙 같은 것도 있어서 2절에 말한 대로 파도가 치는 수면과 같이 보인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빛이라고 하는 만물의 에너지는 사실 어둠이라는 에너지가 먼저 전제되어야 성립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라면 는 진공을 말하는가? 물리학자들에게 완전한 무로서의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 양자 물리학자들에게 진공은 에너지 0”(제로)의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플러스 에너지와 마이너스 에너지의 합으로서 0(제로)이다. 우주에서 별과 별, 은하와 은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관측할 수 없는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은하의 가장자리가 흩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진공에서의 양자 요동은 입자/반입자 쌍의 자발적 생성의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공은 물질-반물질의 무궁무진한 저장고로 볼 수 있습니다. 불확정성 원리로 인한 불확실성을 이용하여 진공에서 전자를 추출할 수 있죠. 진공은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이며, 잠재력이 가득하고, 반대되는 것들을 잉태하고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진공은 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과 반물질이 무제한으로 넘쳐나는 체계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인도 수학자들이 생각했던 수 ‘0’(제로)과 정말 닮았습니다. ‘0’은 수가 아니기는커녕, 양수들과 음수들의 무한집합을 포함하며, 반대 부호의 대칭적인 제로섬 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자면, 위상이 반대인 모든 소리가 중첩할 때 서로 상쇄되어 정적이 생겨나거나, 광파의 파괴적인 간섭으로 인해 어둠이 생겨나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얼핏 텅 빈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 암흑물질(dark matter)과 암흑에너지(dark energy)로 가득하여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적 수면이라고 부르고 싶다. ‘수면밀고 당기는 요동이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양자역학이 작용하는 코스모스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카오스를 배경으로 코스모스를 창조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카오스는 무질서와 다른 것이다. 카오스로서의 혼돈과 공허로 가득한 땅, 그리고 수면은 완전한 무로서의 공간, 또는 무질서로서의 공간이 아닌 인간이 관측할 수 없는 에너지의 장(energy field)이다.

 

, 우리 앞에는 진공이라는 매우 독특한 물리 시스템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실 이 시스템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름과는 달리, 텅 비어 있지 않습니다. 물리법칙에 따라 엄청난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상 입자로 채워져 있으며, 0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동하는 에너지 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공이라는 이 거대한 은행에서는 누구나 에너지를 빌릴 수 있으며, 빛이 많을수록 더 짧은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진공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가 0인 특정한 물리적체계입니다. 그것은 제로 에너지 상태이지만 다른 모든 물리계와 마찬가지로 조사, 측정, 특성화할 수 있는 물리계입니다.

 

창조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혼돈과 공허가 있었다.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가 아니라 극도의 무질서로 충만한 상태이다.

 

유니버스라는 단어는 하나라는 뜻의 라틴어 어근인 우누스(unus)’회전하다는 뜻의 베르테레(vertere)’의 과거분사 베르수스(versus)’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세상만물의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질서 있게 회전하는 물체들의 세계와 관계되어 있다는 고대 신념의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다. “창조란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무작위로 흘러가는 힘을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힘으로 질서 있는 무엇인가가 만들어졌다. 강성열 교수는 그의 저서 기독교 신앙과 카오스 이론에서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이 혼돈 세력에 대하여 승리하심으로 그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은 혼돈 세력에 대한 승리와 해방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인간의 삶과 역사 가운데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섭리로 해석했다. 그리고 혼돈의 절정으로서 인간의 죽음을 대비시켜 생명의 결정체인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은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와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 창조는 곧 구원인 것이다.

 

창세기 1장에 기술된 태초의 창조 역시 하나님께서 혼돈을 제압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카오스의 위협은 창조 이후에도 계속되지만, 카오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곧 혼돈과 공허로부터의 구원의 시작을 뜻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6일을 차근차근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출처: [퀀텀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