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의 세계
초기 양자역학은 빛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성경은 빛이 모든 만물의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물은 첫째 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의 세계를 창조하심으로 시작되었다. 이 빛은 넷째 날 창조하신 ‘광명체’가 내는 빛보다 더 근원적인 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빛은 원자의 세계를 구성하는 힘이다. 즉, 하나님은 양자세계(quantum world)를 창조하셨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두 쿼크와 힉스 같은 더 작은 소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날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은 그 소립자 속에 감추어 놓으신 에너지의 세계이다. 원자 내부의 각 입자(아원자)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면서 전자기파라는 형태의 빛을 방출한다. 넷째 날 창조하신 광명체들은 빛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빛을 실어 나르는 운반체(deliverer)인 것이다.
21세기 현대문명(라디오, 컴퓨터,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은 모두 양자역학과 함께 발달한 것이다. 양자역학은 앞으로 초현대문명을 만들어 낼 열쇠가 되고 있다. 점점 양자역학은 우리 모두 알아야 하는 상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양자역학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을 잘 설명하는 원리이므로 크리스천이라면 꼭 공부해야 하는 물리적 상식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보이는 물질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자를 구성하는 핵과 전자는 파동(정확히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임이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즉 보이는 이 세상이 입자처럼 보이나 사실은 파동인 셈이다. 그러한 파동의 원천은 첫째 날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이라는 파동인 것이고, 그 빛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파동(wave)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original wave)이 모든 만물을 지탱하는 힘인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게 하시며, 내 육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인 햇볕을 내려 주신다.
창세기 1장에서 첫째 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을 만드셨다. 그리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그리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그런데 넷째 날 해달별이란 ‘광명체’를 만들어 낮과 밤을 나누게 하셨다. 그러면 첫째 날의 빛은 무엇이며 첫째 날의 낮과 밤은 넷째 날의 낮과 밤과 어떻게 다를까? 하나님께서 첫째 날의 빛을 만드실 때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서 본문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자. 해달별은 성경에서 ‘광명체’(lights)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광명체란 빛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 아니라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intermediary)란 점이다! 따라서 첫째 날 만드신 빛은 해달별이 존재하기 이전에 해달별을 구성하는 원자, 원소, 분자를 구성하는 최소 에너지 파동(energy wave)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그 음성은 공기를 매개체를 진동시켜 들리는 그런 소리가 아닌 형태의 진동(wave)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wave)은 세상과 우주의 양자세계와 메커니즘을 만든 원천적인 파동(original wave)이었다. 즉, 양자의 세계, 원자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파동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에너지 파동(=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최소 단위의 에너지 파동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의 본질이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 바로 양자세계를 만드셨다. 즉, 보이는 물질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양자의 세계에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강력(=핵력)과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이 감추어져 있다. 온 우주에는 기본적인 네 가지 힘이 작용하는데 강력, 약력, 전자기력, 그리고 중력이다. 이 네 가지 힘 중에 세 가지가 양자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양자가 주변 상황과 미세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입자가 되면서 질량을 갖게 되는데 질량이 점점 커지게 되면서 중력 또한 커지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일반상대성의 원리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물체는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데 그 휘어짐의 정도가 중력의 크기를 만들어 내고 중력에 따라 빛과 시공간이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도 중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는 것이고, ‘무게감’ 혹은 ‘공간감’ 역시 중력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첫째 날 하나님께서 음성(wave)을 발하심으로써 최초의 에너지 파동인 빛이 폭발하게 되었다. 대부분 천체 물리학자들은 138억 년 전에 한 점에서 온 우주가 폭발하게 되었다는 빅뱅이론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빅뱅의 원인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립된 이론이 없다. 나는 빅뱅의 원인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 빛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빛이 작용하지 않는 세계를 분리하셔서 밤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양자의 세계가 작동하지 않는 암흑물질(dark matter)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 파동이 양성자, 중성자, 음전하를 각각 구성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wave)이 각각의 양자 입자들을 통제(control)하고 있다.
양자역학으로 모든 물질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몸이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몸과 의자가 서로 음전하끼리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 몸이 의자를 순식간에 통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악수를 할 때 서로의 음전하가 밀어 내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촉감의 형태로 느끼는 것이지 사실은 몸과 몸이 서로 밀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빛은 벽을 통과하기도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저녁 만찬을 드시고 순간적으로 사라지셨다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순간적으로 나타나신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새로운 양자체계를 가진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고,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가 입게 될 새로운 신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사람이 빛처럼 빨라지면 시간이 느려져서 멈추게 된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그 빛 자체이므로 시공간에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원자와 전자기력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기적은 일상이 되며 시공간은 더 이상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모든 제한이 사라진 예수님의 몸을 제자들은 만져 보았고, 도마는 그 옆구리에 손을 넣기도 했다. 예수님은 자유자재로 양자역학을 사용하는 초신체를 가지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를 양자역학 원리로 풀어 보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을 때 그 발이 물에 젖었을까, 아니면 젖지 않았을까? 우리가 양자세계를 이해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데 물 위를 걸으실 때 예수님의 발은 조금도 물에 젖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물 분자의 음전하와 예수님 발의 음전하가 서로 밀어 내면 물 위를 걷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시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양자역학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내 감정이나 감각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신 빛은 우리가 태양에서 오는 그런 가시광선이 아니다. 사람의 눈으로 인식하는 그런 가시광선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의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모든 우주 만물의 기본이 되는 양자세계를 건설하신 것이다. 모든 양자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에너지 파동으로 만들어진 원자의 세계를 만드신 것이다. 이 빛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다.
빛은 모든 만물의 최소 에너지 파동(wave) 혹은 진동(vibration)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파동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결코 ‘왜?’에 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다. 단지 ‘어떻게?’에 관해서 수학적으로 혹은 실험적으로 설명하려고 탐구할 뿐이다. 모든 물질은 근본적으로 파동(wave)인데 그 파동을 일으키는 원천적인 파동이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wave)이다.
빛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사람이 천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은 오직 가시광선뿐이기 때문이다. 변화산에서 빛을 내시며 해같이 변화하신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초의 빛을 잠시 보여 주셨다. 세상의 그 어떤 빛보다 더 찬란한 빛이다. 하나님은 그 빛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 빛 가운데 거하고 계시며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셨다고 말한다(시 104:2, 4).
물질세계의 빛은 가장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빛의 속도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빛이 존재함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빛을 만드신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아무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의지에 따라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이 가능하게 한 비결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알고 계신다. 양자의 움직임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는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다.
변화산에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의 빛은 햇빛과 같은 가시광선의 빛이라기보다 첫째 날의 빛으로서 모든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빛일 것이다. 즉, 첫째 날의 창조를 양자역학적으로 이해하면 지금 물질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발하신 소리(wave)가 모든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양자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는데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로 인해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물질세계는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빛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데, 즉 다시 말하면 다양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진동은 소리(sound)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현악기 연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타 줄을 손가락으로 튕기게 되면 진동이 생겨서 파동을 일으켜 특정 주파수대의 소리를 내는 것처럼 원자도 같은 원리로 특정 주파수대의 진동을 가진 빛을 낸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즉, 낙원)에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음악 같은 신비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고후 12:4). 또 성경은 하나님의 보좌에 무지개가 둘러싸여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겔 1:18; 계 4:3). 빛은 다양한 파동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파동은 각각의 주파수대의 소리를 내고 있다. 빛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고 계시고(시 104:2), 빛 가운데 좌정하시고, 천둥소리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고 계신다(욥 37:4, 5; 40:9). 양자역학에서 우레(thunder)란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방전현상’ 즉, 입자와 반입자의 충돌, 또는 양전하와 음전하가 서로 충돌하는 전자소멸 현상이다.
빛은 파장 수(frequency, 진동수)에 따라서 짧은 진동에서부터 긴 진동수까지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순서로 파장이 다양하다. 각각의 진동수에 따라 색깔도 다르며 소리도 다르다. 낙원에 갔던 바울 사도가 들었던 소리는 양자역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 볼 수 있고 인간의 귀 또한 특정 주파수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낙원에서 들었던 소리가 얼마나 환상적일지 상상 불가인 것은 지상에서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한계가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빛의 다양한 파동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원자로 되어 있다. 보이는 이 세상이 입자처럼 보이나 사실은 파동이다. 그러한 파동의 원천은 첫째 날의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이란 파동인 것이고, 그 빛이 모든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팽창시키고 있는 것인데 그 빛은 하나님의 파동, 즉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파동(wave)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내일 아침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만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세상 만물을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예배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만물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만드신 만물을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양자역학으로써 성경에 기록된 그 많은 기적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나 홍해가 좌우로 갈라진 것,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온 것, 죽은 자가 살아난 것, 저는 자가 걷게 되고 소경이 앞을 보게 된 것 모두 양자역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은 우리가 얻게 될 새로운 신체, 부활의 몸에 대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신체가 왜 필요한지, 그 신체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신체는 지금의 신체와 어떻게 다른지 양자역학은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는 논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계시도 필요 없고, 예수님께서도 직접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오실 필요가 없었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실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하여 드러내 주신 부분에 관해서만 가능하다. 일반계시에 의한 지식은 그 자체로는 완전하지 않으며 기록된 말씀이라는 특별계시를 보조할 따름이다. 그러면 이제 특별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인간과 우주 만물의 기원과 목적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조의 둘째 날: 물과 하늘 (0) | 2024.08.28 |
---|---|
카오스: 창조의 배경 (0) | 2024.08.28 |
기독교 신학을 위해 사용할 양자역학 용어들 (0) | 2024.08.28 |
양자역학의 특징 10가지 (0) | 2024.08.27 |
현대 물리학이 추구하는 것: TOE (0) | 202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