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양자론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도 양자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의 유명한 양자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라고 했다. 원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한 것들이 많다. 고전역학에서 다뤄 왔던 익숙한 물리법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원자의 세계는 100년이 넘게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그 대표적이다. 양자도약현상이나 양자중첩 그리고 양자얽힘의 현상이 고전 물리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너무나 신비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입자가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하는 순간 입자로 행동하다니…. 모든 입자는 마치 의식을 갖고 있는 듯이 행동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양자세계는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이 될 수 없는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공간이다.
물리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은 이것이다. 양자의 세계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 아름다운 질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의 세계만이 아니다. 분자, 생명체, 혹성들, 은하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칭원리’를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원자를 생각해 보자. 원자의 핵에는 양성자가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음전하를 띠고 있는 전자가 있다. 양성자 내부의 세 개의 쿼크들이 글루온에 의해서 서로 결합되어 있는데 서로의 공간을 유지하는 힘이 왜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과학자들은 단지 현상을 설명할 뿐 그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물리학자들은 “닥치고 계산이나 하라”고 말한다. 단지 우연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통제하고 있다고 할 것인가, 어느 쪽을 주장해도 증명할 길은 없다.
열역학 제2 법칙으로 설명하면 현재 우주는 전체적으로 무질서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애초에 고도의 질서 있는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이다. 원숭이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능가하는 곡을 연주하는 것을 우리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듯이 무질서 속에서 저절로 질서가 창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물리학자들이 만물을 관찰하면서 우주 전역에 똑같은 법칙이 작용하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근본상수’라고 불렀다. 약간의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매우 정밀하게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정말 저절로 만들어진 것일까? 최신 물리학이나 신학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증명되는 분이 아니다. 수학에서 무한(∞)을 증명할 수 없듯이 신학에서도 하나님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물리학적으로도 낮은 차원의 존재가 높은 차원의 존재를 인식할 수는 있어도 증명할 수는 없다.
과학은 관찰되지 않는 대상은 일단 제외한다. 이론을 만들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려고 할 뿐이다. 관찰의 범위를 넘어선 문제는 결국 ‘철학’이나 ‘신념’의 영역으로 넘겨 버린다. 과학은 스스로 차원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있긴 하다. 대표적인 것이 우주론적 증명, 존재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 도덕론적 증명 등이 그것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바로 신의 존재에 대한 수학론적 증명이다. 현대 들어와서 제시된 신의 존재증명 이론에 관하여 매우 강력한 이론이 등장했는데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의 학자이자 미국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쿠르트 프리드리히 괴델(Kurt Friedrich Gödel, 1906-1978)의 수학적 증명이다. 괴델은 모든 긍정성을 가진 존재를 신으로 정의했는데 안셀무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의 존재론적 증명과 비슷하지만 존재론적 증명은 논리적 전제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과 달리 괴델은 신의 존재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수학계에 있어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이론이다. 모순을 허용하지 않는 형식 시스템은 그 자체의 무소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과 천체 물리학에서 볼 때 원자와 우주의 세계에서 관찰되는 “미세조정”(fine tuning)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우주론적 증명이 가장 영향력이 있을 것 같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마치 정교한 태엽 시계를 보는 것과 같이 더욱 뛰어난 지적 설계자가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연료를 다 소진하고 결국 초신성 폭발에 의해 우주에 흩뿌려진 원자와 원소들이 저절로 모여서 또 다른 항성이 되고 스스로 진화하여 지적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열역학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로 널리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 반증은 증거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 같은 물리학자는 단지 물리학 법칙에 불과하다고 신의 존재를 일축해 버리지 않았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증명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지, 증거를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하나님은 증명이나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은 제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이론과 관측 장비를 만들어도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것이고 또한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축복은 과학의 영역에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셨다.
출처: [퀀텀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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