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최초 인간의 생명과 신체의 본질

등불지기 2024. 8. 29. 16:06

 

최초 인간의 생명과 신체의 본질

 

전통적인 신학체계에서는 인간에 관하여 다룰 때, 원인(original man), 죄인(man as sinner), 언약인(man under covenant), 보통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다룬다. 인간에 관해 이해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1-5)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가장 나중에 창조하신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그것은 사람이 창조의 최종 목표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왜 빛을 만드시고, 땅과 하늘과 물과 수많은 별들과 천체, 그리고 각종 동식물들을 만드셨는가? 그것은 사람 때문이다. 그 모든 것들은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만드신 것이기도 하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만물의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그 영광을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사람에게 보여 주시고자 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의 정점이자 최종 목적지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의 장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인간 창조의 기록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다른 존재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이다. 인간은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창조와 파괴의 힘이 있는 파동(wave)이다. 인간이 어떻게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가? 그것은 언어의 힘이다. 사람에게 언어는 단지 소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과 파괴의 힘이 있다. 둘째, 인간은 여러 창조들 중에 단지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존재이다. 특히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세를 부여받았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음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스려야 할 어떤 피조물을 자신을 위해 형상화하거나 혹은 신격화하여 그 앞에 엎드려 절하지 말아야 한다. 다스리는 자가 섬기는 자 앞에 엎드려 절하다니!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처럼 매우 특별하게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맡기고자 하셨다. 그것은 만물에 내재된 잠재력을 끌어내어 하나님의 영광이 최대치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개발’하고 ‘경작’하는 일이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만물을 축복하는 영적 대리자로, 즉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기를 원하셨다. 만물을 경작하며, 모든 생명체를 위해 하나님의 빛을 전달해 주는 ‘빛 전달자’(light deliverer)로 삼고자 하셨다. 마치 태양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빛을 전달하는 운반체인 것처럼 말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가 특별하게 묘사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창 2:7, 8)

 

하나님은 인간을 땅의 흙으로 만드셨다. 사람의 몸은 흙으로 되어 있다. 즉, 사람이 몸 역시 다른 만물이나 별과 같은 우주 천체들과 같이 원자로 되어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주된 원자는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칼슘, 인 이렇게 6가지가 신체의 98%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에 약 30여⋁종의 미량의 금속 및 비금속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 내부의 모든 공간을 제거해 버리면 실제적으로 먼지 한 톨보다 작다.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라고 하셨다(마 3:9). 이 말씀은 매우 놀라운데,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루고 분자가 모여 사람의 세포를 구성하는데 모든 세포에는 하나씩 인간의 정보를 담은 DNA를 가지고 있다. 원자는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입자이며 인간의 정보들은 양자정보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블랙홀 안에서도 양자정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 창조에는 매우 특이한 점이 또 하나 있다. 하나님께서 그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셨고, 그 결과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이것은 인간 창조와 동물 창조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것 중 하나이다. 양자역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영(루아흐=바람)이신 하나님께서 원자로 구성된 사람의 신체에 입김, 즉 진동을 불어넣으셨고 그 결과 사람은 살아 있는 영이 되었다. 이것을 또다시 이렇게 직역해 볼 수 있겠다. “바람(wave)이신 하나님께서 원자로 구성된 사람의 신체에 바람(wave)을 불어넣으셨는데 그 결과 사람은 살아 있는 바람(wave)이 되었다.” 최초 창조된 사람의 신체는 매우 특별한 신체가 되었는데 입자(particle)와 파동(wave)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몸은 다른 동식물과 만물과 같은 원자로 구성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시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파동 그 자체로서의 신체가 되었다. 즉, 원래의 사람의 몸은 자유자재로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오갈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신체가 되었다. 범죄하기 이전의 사람의 신체는 초신체(super-body)로서 생식기능을 제외하고 미래에 부활하게 될 그리스도인의 몸과 거의 동일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이라고 하였을 때 그것은 실제로 첫 아담의 신체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체는 같은 성질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복된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가 이를 질투하게 되어 자기 자리를 떠나 인간에게 접근하였으며 인간을 거짓말로 속여서 범죄하게 만들어 그 능력을 상실하게 하였다. 실제 인간은 범죄하는 순간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에게 있는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린 것을 즉시 안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공간에 아무 제약도 받지 않듯이 엠마오에 나타났다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 다시 나타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부활한 자신의 몸과 손을 만져 보라고 하셨듯이, 최초 인간의 신체는 어떨 때는 입자로, 어떨 때는 파동으로 존재하는 양자(quantum)의 독특한 방식처럼 작동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특별한 신체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바람(wave) 때문이었다. 인간의 신체는 동물의 신체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숨결(영)과 인간의 의식(혼)이 결합된 ‘살아 있는 바람(wave)’이었다. 입자와 파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의 특성처럼 자유자재로 신체의 특성을 입자에서 파동으로, 파동에서 입자로 변환할 수 있는 그런 초물질(transcendental matter)이었다. 그런데 범죄하는 순간 하나님의 바람(wave)으로부터 인간은 단절되고 말았고, 인간의 신체는 그 특수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동식물과 같이 시공간에 제약을 받으며 스스로 돌고 있는 팽이와 같이 당분간은 회전력을 유지한 채 돌아가지만 필연적으로 멈추어 버리게 되는 즉, 육체적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빛에 다시 연결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오는가? 그것은 창조의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다(시107:20).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 또한 영(wave)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 죽었던 우리의 영이 되살아나게 된다. 하나님의 바람이 죽은 영에 불어야 한다. 바람, 즉 생기(breath of life)는 사람의 영을 부활시킨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아직 구원의 완성은 아니다. 비록 영이 살아나는 첫째 부활이지만, 죄악 가운데 형성된 인간의 육체는 원자로 분해되어 다시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보관되어 있던 영혼에 대한 양자정보는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주시는 새로운 육체의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이것이 둘째 부활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렇다면 동물의 신체와 사람의 신체가 어떻게 다를까? 동물에는 혼이 있으나 영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영과 혼을 모두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람과 동물 모두 신체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뇌세포가 작용하는 정신세계가 양자정보의 형태로 남아 있다. 동물은 죽으면 그 혼이 땅으로 내려간다. 동물의 육신과 의식은 원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의 영혼은 영과 혼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동물의 죽음과 사람의 죽음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전도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19-21)

 

인간의 몸이나 동물의 몸이나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결국이나 동물의 결국이 같다. 그러나 양자정보로 되어 있는 짐승의 의식은 땅, 즉 원래 원자의 세계로 되돌아가지만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히브리 성경에서 ‘위’로 간다는 말은 ‘하나님’께로 간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보관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동물과 달리 결코 소멸되지 않으며 양자정보의 형태로 보관되어 최후 심판의 때를 기다리는 중간상태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묘사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있다. 하나님의 영을 가리킬 때는 ‘루아흐’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인간의 혼을 가리킬 때는 히브리어 ‘네페쉬’(그리스어로는 ‘프쉬케’)란 단어가 쓰인다.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인간을 ‘영혼’이라고도 했다가 어떤 경우에는 ‘혼’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인간에게는 영과 혼과 육이라는 세 가지 기능적 요소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영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인간에게만 있는 기관이며, 혼은 육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기관이며,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은 기관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세계와 접촉하는 도구이다. 기능적으로는 3분설을, 존재론적으로는 2분설이 전통적인 입장이다. 즉, 인간의 영혼은 서로 기능적으로는 구분될 수 있으나 존재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영혼과 신체는 존재적으로 분리될 수 있으나(육체적 죽음) 그러한 분리는 일시적인 기간만 허락된다.

 

1세기 교회들을 괴롭혔던 이단들 중에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원론자들로서 영혼은 거룩하고 물질인 육신은 사악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정신세계만 중요하고 실제적인 삶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게 하므로 도덕적인 타락을 용인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사도들은 이들을 ‘적그리스도’로 정죄하였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의하면 육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경작하고 관리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일을 수행하기 적합하도록 최초 사람의 신체를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매우 특별하게 창조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도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부활하게 되어야 하는 이유도 신체도 영혼과 더불어 거룩하기 때문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초 인간에게 있어 생명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간의 영혼과 신체가 하나님의 빛에 연결된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인간의 영혼과 신체를 비추고 있었다.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 사람에게는 생명 그 자체였다. 모든 생명체에는 피(blood)가 있다. 피가 온몸을 휘감고 순환하면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에너지를 실어 나른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듯이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빛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피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이듯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끈’이었다. 하나님의 빛이 신체의 피가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피가 신체의 곳곳을 순환하며 생명을 유지하듯 빛이 영혼을 휘감으며 사람의 신체를 매우 특별한 신체, 즉 ‘살아 있는 영’으로 계속 살게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를 에덴동산에 두셨다. 에덴동산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만나는 최초의 성소였는데 그곳에 두 나무가 있었다.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셨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생명나무는 영생하게 하는 힘을 가진 열매를 맺고 있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 선과 악을 임의대로 규정지을 수 있는 판단 능력을 갖게 하는 열매를 맺는 나무였다. 최초 사람은 생명나무가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선택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즉시 단절되고 말았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거절하고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선과 악을 임의로 단정할 수 있는 자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결코 자신들이 신이 될 수 없음에도 신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보는 것이 항상 옳으며 자신의 말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단절된 채 죽은 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원죄이다.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스스로 끊어져 버리기를 선택한 인간은 다시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빛에 다시 연결될 수가 없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반역한 인간의 죄를 보시고 얼굴을 돌려 버리셨고 그 순간 인간의 영은 즉시 죽고 말았다. 하나님과 같은 독립적 인식능력을 갖게 된 인간이 영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에서부터 추방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2-24)

'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의 결과: 죽음  (0) 2024.08.29
죄: 반역  (0) 2024.08.29
양자역학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0) 2024.08.29
삼위일체  (0) 2024.08.29
LOGOS  (0) 2024.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