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구원이란 무엇인가?

등불지기 2024. 8. 29. 16:19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양자역학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히브리어 ‘루아흐’는 ‘영’ 또는 ‘바람’(wave)을 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양자세계와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람’이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또 다른 ‘바람’이다. 인간세계에서 ‘말씀’은 ‘바람’과 같이 어떤 형태나 질량을 갖지 않지만 공기를 진동시켜서 전달되는 어떤 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에너지의 차원이 아니라 인격으로서의 ‘로고스’이시다. 그 말씀을 통하지 않고 만들어진 물질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임하실 때의 모습을 개역개정판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눌 때 성령으로 거듭남에 관하여 ‘바람’으로 설명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즉, 하나님의 ‘진동’ 혹은 ‘바람’(wave)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모든 물질세계를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하셨다. 인간은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같이 살아 있는 영, 인격을 가진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바람이 사람의 바람(wave)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원초적 힘이었고 참 생명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스스로 하나님의 바람으로부터 단절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최초의 인간은 범죄하는 그 순간 하나님과 단절되는 ‘죽음’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육신 또한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세계를 통제할 인간이 스스로 그 지위와 권능을 포기함으로써 모든 물질세계는 혼돈(카오스)에 빠지고 말았다.

 

구원이란 이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이다. 이 구원은 결코 자연에게서나 혹은 범죄한 인간 스스로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구원은 반드시 외부에서 와야만 한다.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나는 법을 알 수도 행할 수도 없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구원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들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것을 예고했고, 예고한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 그리고 참 하나님과 참사람이 되심을 증명해 보이셨다. 그 말씀을 영접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 기록하고 전파하는 ‘복된 말씀’을 영접하는 것이 곧 ‘그 말씀’ 즉 하나님의 로고스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 전체를 진동시키는 말씀으로 경험되어야 한다. 단지 경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래야 한다. 기독교에서의 진리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실험으로 증명된 어떤 이론이나 법칙이 아니라 세상 모든 물질세계를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로고스(LOGOS)이다. 과학자들이 가설을 만들고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려고 하고 실험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가설을 ‘진리’라고 믿는 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우주 만물, 모든 물질세계를 가능하게 한 인격체로서의 ‘진리’인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의 빛 가운데 노출시켜야 한다. 그것을 ‘자백’(confession)이라고 한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빛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 그 빛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며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한다면 그러한 빛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두려움과 수치는 능히 이길 것이다. 먼저 죄와 죄의 방식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버려야 한다. 이것이 회개이다. 그리고 빛으로 오신 ‘그 말씀’을 영접해야 한다. 그 영접의 순간은 하나님의 영이 내 영혼을 진동시키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이나 아직 구원의 완성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작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구원의 전부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사람이 보기에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 시간은 육체가 다시 원자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새로운 육체를 덧입게 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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