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믿음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파수에 나의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같은 주파수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른 종교나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믿음’과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주파수를 알아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결코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하여 정확한 주파수를 인간에게 알려 주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그냥 듣는다고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도와주셔야 한다. 이것을 기독교 신학의 용어로 말하면 ‘조명하시는 은혜’(illuminating grace)이다. 아무리 들어도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시지 않는다면 어두워 캄캄한 운동장에 떨어진 바늘 한 개를 찾는 것보다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중에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이때 인간은 전율(tremble)하게 된다. 인간의 몸과 영혼은 진동을 하게 된다. 이것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사건이다. 이때부터 ‘믿음’이 시작된다(골1:6). 이때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또 다른 진동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공기라는 매질을 진동시키는 소리, 즉 ‘고백’ 혹은 ‘시인함’인 것이다. 내 영혼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진동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시작하는데 이 순간 ‘칭의’(justification)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영혼의 진동이 입으로 만들어 내는 소리는 내 영혼을 하나님께 연결시키는데 이것이 구원(salvation)이다. 그 소리의 내용은 참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고백이다.
믿음과 동시에 ‘자백과 회개’의 행동이 일어난다. 이는 자신에게 있는 어둠을 하나님의 빛에 계속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이것은 빛을 사랑하고 어둠을 미워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진리’에 대한 고백과 ‘어둠을 빛에 노출시키는 자백’의 결과 하나님의 의롭다고 하시는 선언이 뒤따르며 하나님의 빛이 통치하는 삶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빛이 다스리게 될 때 사람은 점진적으로 어둠과 싸우는 법을 배워 가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조금씩 다가가는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 혹은 거듭남은 언제 발생하는가? 그것은 말씀을 들을 때 내 온 영혼이 진동하는 그 순간에 발생한다. 거듭남의 사건은 “물은 곧 성령”(요 3:5), 즉 “중생의 씻음은 곧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 3:5)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우리가 “살아나는”(요 5:25) “첫째 부활”(계 20:5, 6)의 사건이다. 이 첫째 부활(거듭남)에 참여한 자들은 둘째 사망(불 못에 들어감, 계 20:6, 14)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자라도 썩을 육체의 관성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 내내 “영의 열망”과 “육의 열망” 사이에 갈등과 방황을 겪게 될 것이다. 거듭난 사람도 육신은 죽은 것이지만 영은 살아 있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10) 하지만 일단 하나님의 영에 의해 하나님과 연결된 이상 육신의 본성은 결국 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그 안에서 쉬지 않고 일하시기 때문이다(롬 8:28). 구원을 시작하신 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구원)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을 기독교 신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구원의 확신’ 혹은 ‘성도의 견인과 성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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