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중간상태

등불지기 2024. 8. 29. 16:32

 

중간상태

 

복음을 들을 때 ‘순간적으로’ 거듭남의 사건이 발생한다. 일단 복음을 듣고 영이 살아나게 되어 하나님의 영과 연결이 되고 나면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육신은 ‘죽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더라도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빛이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육신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것은 정해진 것이다. 관성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팽이가 언젠가 멈추어 버리듯이 인간은 육체적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육체는 원래 왔던 곳인 원자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게 된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복음을 듣고 그 영이 되살아난 사람이나 모두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 죽음의 순간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분리된다. 육체는 분해되어 원자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결코 죽을 수 없다. 의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차이점이 있다면 죽기 전 경험했던 육체를 통해서 느끼는 것, 이를테면 육체를 통해 느끼는 고통, 감각, 중력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몸무게를 느끼는 것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육신의 옷을 벗은 영혼은 너무나 홀가분한, 그래서 한없이 가벼운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결코 소멸되지 않으며 양자정보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원자가 소멸되지 않듯이 원자의 특성으로 구성된 의식세계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포함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관될 것이다. 최후의 때, 부활의 때를 기다리면서 지낼 것이다. 이때 인간의 의식에 관한 모든 양자정보가 임시로 저장되는 곳은 두 곳, 낙원과 지옥이다. 낙원은 영광의 부활을 기다리며 기쁨과 평강을 느끼며 기다리는 곳이며, 지옥은 영벌의 부활을 기다리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며 기다리는 곳이다. 낙원과 지옥은 모두 ‘중간상태’이며 마지막 부활의 순간까지만 임시로 저장되고 유지되는 컴퓨터의 램과 같은 곳이다.

 

낙원에 대한 성경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39-43)

 

사도신경에 나오는 대로 예수께서 사흘 동안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그날에 예수님의 영혼은 낙원에 가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실 때와 ‘낙원’이란 단어를 사용하실 때 그 의미가 다르다. 사람들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 나라이며, 자신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무리가 곧 하나님 나라임을 말씀하셨다. 반면 ‘낙원’은 믿는 자들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그 영혼이 부활의 때까지 임시적으로 머무는 장소이다.

 

그러면 낙원은 어떤 곳일까?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낙원에 다녀온 간증을 보도록 하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1-4)

 

사도 바울은 자신이 낙원에 간 경험을 나누고 있다. 굉장한 경험이었지만 14년 동안 비밀로 간직해 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전한 복음보다 이러한 간증이 더 앞설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례적으로 그동안 감추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낙원에 갔을 때의 자신이 정확히 어떤 상태였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몸과 함께 갔는지 몸 밖에서 자신의 영혼만이 갔다 온 것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의 느낌을 잘 표현한 것이다. 낙원은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 찬 곳이다. 죽은 성도들이 죽음의 순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빛일 것이다. 가시광선 밖의 빛을 볼 수 없는 제한을 가진 육체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보는 빛은 더욱 밝게 느껴질 것이다.

 

빛의 세계는 동시에 ‘소리의 세계’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사도 이 빛으로 지어진 존재이다. 이 빛은 모든 만물의 근원인데 이 빛에는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 이 빛은 짧은 파장에서부터 넓은 파장까지 긴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파장은 각각의 주파수를 가지고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이 소리는 인간이 평소 들었던 그런 소리의 스펙트럼을 훨씬 뛰어넘는 그런 소리다.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스펙트럼과 같이 매우 좁은 범위이다. 그런데 그 모든 빛의 스펙트럼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화려하고 또 황홀할 것인가.

 

이것은 중간상태이다. 믿다가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부활의 때까지 임시로 경험하는 의식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무한한 기쁨과 평화, 그리고 화려한 빛과 황홀한 음악 소리로 가득 찬 그런 공간이다. 반면, 지옥은 그 반대로 형벌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그런 공간이다. 믿다가 죽은 그리스도인들을 ‘잠자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은 의식이 없는 현실 세계의 잠자는 것과 달리 분명한 의식이 있다. 그러나 육체가 없으므로 세상을 느끼고 세상에서 일하는 혼의 기능이 일시 중단된 것이므로 ‘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영원하지 않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되어 ‘깨어날 때’가 있다. 낙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고 지옥에서 ‘불 못’(lake of fire)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중간에 ‘연옥’(purgatory)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첫째, 감각기관인 신체로부터 분리되었으므로 의식은 더욱 또렷해지게 될 것이다. 둘째, 즉각적으로 ‘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빛은 물체에 반사되어 시신경으로 되돌아오는 그런 가시광선이 아니라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더욱 밝은 빛일 것이다. 육신이 빛과 소리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었으나 이제 육신의 옷을 벗었으니 감각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셋째, 동시에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사람의 눈이 인지하는 빛의 범위가 좁듯이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러한 신체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육체로 존재했을 때 들었던 소리와 다른, 훨씬 폭넓은 범위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넷째, 중력에 영향을 받는 질량 덩어리인 신체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마치 다이빙 선수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자신의 몸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어떤 공간으로 이동하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여섯째, 어떤 이들은 무한한 평화와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일곱째, 말을 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덟째, 육체로 존재할 때는 시공간의 느낌을 갖게 되는데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의식세계는 그 어떤 공간감이나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홉째, 이러한 상태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상태이다. 열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머무는 영혼들은 무한한 기쁨과 평화를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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