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재림 (Second Coming of Christ)
창조와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second coming of Christ)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로고스를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고 로고스는 하나님의 원천 파동으로서 모든 만물의 목적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데이비드 봄(David J. Bohm 1917-1992)이라고 하는 물리학자가 주장한 향도파(pilot wave)의 원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러한 로고스가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오셨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초림’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하나님과 협의하신 결정대로 구속의 근거를 성취하고자 오셨고 마침내 십자가로서 다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심으로 모든 우주에 승리를 선포하셨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 교회들 가운데 자신의 영을 보내심으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신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순종해야 하는 줄 알고 있다.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은 복음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로고스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을 하게 된다.
교회가 이 사명을 다 마칠 즈음에 끝이 올 것이다(마24:14).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모든 종족 그룹이 복음에 대해 들어야 한다. 역사의 끝에는 혼란과 무질서의 정도가 최대치에 이르러 사람들은 일대혼란을 겪을 때일 것이다. 지구의 기후와 지질은 극도의 무질서를 나타낼 것이며, 지구 위에 사는 인간들의 사회도 평화로운 곳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국가 간 분쟁이 심화될 것이며, 가용한 에너지 자원의 부족으로 전쟁이 자주 일어날 것이고, 개인들도 점점 신경이 예민해져서 신경쇠약에 걸리거나 이기적인 행동으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들은 핍박과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명목상 신자들이 점점 교회를 비난하며 떠나가게 될 것이다.
혼란과 무질서가 극도에 이르러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우주적 쇼가 펼쳐질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중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천사들, 그리고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한 몸으로 함께 서 있을 것이다. 모든 인류가 그의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할 것이다. 누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할 것이고, 누구는 후회와 한탄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와 구원의 완성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창조의 완성인 까닭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로고스를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는 로고스를 위해서 창조하셨고 로고스를 기쁘게 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며 로고스를 섬기라고 창조하신 것이다. 만물의 창조 마지막에 최고의 피조물인 사람 역시 그러한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반역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목적이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혹과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을 반역하기로 한 인간은 하나님의 빛의 세계를 떠나 추방되었고 자신을 관리해 줄 사람이 없으므로 만물은 고통을 겪으며 ‘허무함’에 복종하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로고스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나타났으니 모든 우주 만물은 기뻐하며 노래 부를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사건이다. 더 이상 눈물 흘리거나 고통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지하 동굴을 헤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죄의 결과로 찾아온 죽음과 죄를 짓게 한 마귀의 세력은 영원히 제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수행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뻐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만물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장래의 소망이다.
여기서 ‘밀레니엄’ 논쟁이 등장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는 신학의 종말론에 있어서 뜨거운 감자였다. 천년왕국 논쟁에서 대표적으로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이 있다. 전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부터 문자적으로 천 년 동안 ‘기독교 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후천년설은 문자적인 천년 동안 ‘기독교 왕국’이 실현된 직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무천년설은 ‘천년’이란 기간이 문자적인 기간이 아니라 상징적인 기간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천년왕국이라는 표현이 요한계시록 20장에만 나오는 표현이고, 요한계시록은 그림언어로 메시지를 전하는 묵시적 예언서임을 볼 때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표현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보아야 한다. 전천년설이든 후천년설이든 천년이란 기간을 문자적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다른 성경 본문과 서로 충돌하는 것이 많은 관점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안에서 ‘왕 노릇 한다’고 했을 때 문자적인 의미의 천년 동안 문자적인 의미에서 왕 노릇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롬5:17,2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안에서 ‘지금 현재’ 왕 노릇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왕 노릇 하는 것이 미래에 정해진 기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또 요한복음에서 ‘살아나다’는 단어가 이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볼 때(요5:25,28;11:25,26) 동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요한계시록에서 ‘살아나서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것을 ‘문자적인 의미’로 국한시켜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안에서조차 ‘문자적 의미’의 천년왕국은 많은 모순을 일으킨다. 건전한 성경해석의 원칙은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을 하며 전체적으로 모순을 줄이는 방향으로 즉, 교리적인 해석이 되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문자적인 천년왕국론은 결코 지지할 수 없다. 천년왕국을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오니즘에 사로잡혔던 유대주의의 망령과 다를 바 없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순간은 모든 ‘잠자는 성도’가 부활의 몸을 덧입는 순간이다. 부활은 거듭남의 사건을 의미하는 첫째 부활이 있고, 새로운 신체를 입게 되는 둘째 부활이 있다. 둘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을 온 우주에 드러내시는 순간에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이 부활이 여러 번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육체적 부활은 역사의 마지막에 한 번 일어날 것이다. 단 시간차는 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순간에 잠자는 성도들이 부활하여 함께 할 것이다. 죽은 성도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곁에 서 있는 부활한 성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지상의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낡은 신체가 새로운 신체로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천사의 손에 이끌려 공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재림의 순간에 일어날 부활의 시나리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지상에는 큰 재앙이 임할 것이고 그 재앙 직후 역사상 살았던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을 지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를 지나 좌우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한쪽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갈 것이고 다른 한쪽은 꺼지지 않는 불 못으로 나아갈 것이다.